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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
- 작성일
- 2022.7.29
[eBook]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글쓴이
- 정명원 저
한겨레출판
절대 영화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 흔한 검사 영화에서 나오는 스펙터클한 일화들을 기대한다면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극적이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극적인 사건들보다 법률 노동자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낸다. 검사도 직장인이구나! 사람이었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검사도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하고 외치는듯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도 ‘새파랗게 젊은 년’으로 불린 후배는 이제부터 자신을 ‘딥 블루 레이디’로 불러달라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 더더더 많은 딥 블루 레이디들이 법정에서 사무실에서 종횡무진하며 유쾌해할 날들을, 기대해본다.
딥 블루 레이디!! 새파랗게 젊은 우리끼리 잘 살아서 더 이상은 욕이 아니게 되었으면 좋겠다. 책 읽다가 광대가 뻐근할 정도로 웃었다. 세상에, 그 누가 이런 생각을 한 건지. 후배 검사분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할 때면 혼자서 생각하고 넘겨야지. 나는 딥 블루 레이디니까?? 수많은 편견 앞에서 견디고 살아가는 모든 딥 블루 레이들이 행복하기를 감히 바라본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한순간 타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만 범죄의 대상물로 그 공간에 놓여 있었던 여성들이다. 사람이, 여성이 대상화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여성학 책을 들여다보아도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개념이 마침내 이해되는 순간이다. (...) 범죄가 평준화된다는 것은 범죄 피해 역시 평준화된다는 말이다.
제일 화가 많이 났던 "범죄의 평준화". 공중밀집장소 추행 즉, 지하철 성추행 사건에 대해 다루는 장이다. 예민한 여성들에게 오해를 살까 봐 힘들다는 하소연을 나조차 수없이 들어왔지만 실제로 무고의 남성이 그로 인해 재판에 서게 되는 것은 절대 흔치 않고, 무죄판결도 참 많이 난다고 한다. 유죄 판정이 나도 벌금만 선고될 뿐이니.. 피해자에게 참 가혹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피해자가 대상화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한 문장이 하나의 문단 역할을 능히 해낼 만큼 문장들이 대체적으로 긴 편이다. 나는 호흡이 긴 문장들을 대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문장의 흐름에 이끌리어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나를 본다. 아마 한 문장 안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 콤마(,)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량보다는 부정량의 무언가를 선호하는 편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하거나 평가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책 후기에 평점을 남기지 않는 이유도 그러하다. 내가 감히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이야기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는가에 대한 부담감을 크게 가지고 있어서. 이 책은 무엇보다 정량으로 평가되는 범죄 너머 부정량의 것을 담고 있다.
검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견고한 편견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에게 검찰의 이미지는 개혁이 필요한 집단이라던가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이 존재한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사실상 집단 내 모든 사람들이 같을 수는 없지. 검사도 결국 직업 중 하나이고,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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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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