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2.7.29
경찰관속으로
- 글쓴이
- 원도 저
이후진프레스
어느 경찰관의 신고(辛苦/申告)
<경찰관속으로>를 읽고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다보면 종종 순찰차(에 탄 경찰관)를 만난다. 이때 우리 두 사람의 시선에서 확연한 온도 차를 느낄 수 있다. 그림책 속 정의를 지키는 경찰차의 늠름하고 멋진 자태에 눈길을 떼지 못한 채 연신 탄성을 지르는 아이의 옆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괜스레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경찰은 가깝고도 먼 당신이기에 '그 곁으로' 스쳐 지나간 게 전부였다. 최근 현직 경찰인 원도(필명) 작가가 쓴 <아무튼, 언니>를 읽자마자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인 <경찰관속으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파출소 문을 열듯 앞표지를 넘기면 <경찰관속으로>라는 책제목이 "경찰, 관 속으로"라고 쓰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자가 독자에게 제3의 관찰자 시점을 부여하는 의미라면, 후자는 '관(棺)'에 비유할 만큼 경찰(혹은 저자) 스스로가 직접 보고 느낀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경찰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저자는 경찰을 이렇게 정의하며 이상과 실제 사이의 좁지 않은 간극을 보여준다.
어제 사람이 죽어서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순찰해야 하는 직업,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나온 탓에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 그게 경찰관이더라.(12쪽)
파출소는 주야간으로 교대 근무를 하는 경찰의 일터이자 스물네 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민원인을 마주하는 곳이다. 경찰이 되기 전까지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금껏 112에 신고를 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를테면, '전봇대에 앉아있는 새가 너무 큰데 홍학인지 뭔지 모르겠으니 확인을 해달라거나, 다짜고짜 차가 너무 밀린다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서 추워죽겠다든가, 자주 가는 술집이 문을 안 열었는데 사장을 좀 불러달라(26~27쪽)'는 식의 별의별 신고 내용을 보면서 설마설마하다가 이러한 민원들을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은지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다.
특히 다양한 민원인 가운데 술에 취한 상태의 사람을 가르켜 점잖은 말(혹은 행정용어)로 '주취자(酒醉者)'라 부른다는 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밤중에 택시기사와 벌이는 소소한 시비에서부터 상습적이거나 악의적인 행위까지 파출소는 한시도 평화로울 틈이 없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계속 읽다보니 어쩌면 주취자는 밤에만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주취자(晝醉者)'라 부르면 어떨까)도 아닌데 민원인이 파출소에 나타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생떼를 쓰며 무자비한 말을 내던져도 '세금을 먹고 사는' 경찰은 아파도 내색할 수 없는 직장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득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사람들은 경찰이 지팡이로 마법을 부린듯이 자신의 민원을 해결해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경찰도 무수한 직업 부류 중 하나이고, 그들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조직의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만일 마법의 효력이 신통치 않더라도 지팡이를 집어던지거나 부러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절실한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그 지팡이가 온전히 가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체감 경기를 알고 싶으면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말처럼 사회 구성원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알기 위해서는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될 정도로 우리는 사회의 명과 암을 생생히 지켜보는 입장이거든.(120쪽)
<경찰관속으로>를 쓰면서 저자는 경찰관 개인의 위법 행위에 관한 보도가 잇따르는 요즘 시기에 책속 이야기들이 오히려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다고 한다. 책의 부제를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라고 달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경찰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잘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 즉 경찰 동기 언니들에게 부치는 서간체 형식의 글을 빌어 독자들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를 풀고 파출소 안에서 일하는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힐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경찰과 민원인의 사연을 읽는 내내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아무튼, 언니>에서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과는 사뭇 다른, 시종일관 불편한 진실 앞에서 착잡하고 때때로 고통스럽기까지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날마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목격하고 듣고 기록한 업무일지와도 같은 글들이 우리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가려진(어쩌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 이를테면 죄를 짓고도 여전히 잘 사는 사람들, 사회적 타살로 읽히는 자살한 시민과 경찰들, 가정폭력 사건 속에 남겨진 아이들과 결혼이주여성 등에 관한 여러 문제들에 새삼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줘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경찰관들이 개인과 사회를 위한 정의와 진실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길 응원하며,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를 읽고 어느 한 언니가 보낸 답장을 대신 전하고 싶다.
품고 있는 과거가 너무 많으면 현재를 기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저자에게 그렇다고 해서 선택한 것들만 기억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다. 비합리적인 제도와 한정된 예산은 공무원들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공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 못하지만 어떤 것만을 선택해 기억한다면, 혹은 무엇도 남기지 않고 텅하니 비워놓는다면 우리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기록한 이 글처럼, 우리 스스로 택한 이 公의 세계에 실금이라도 내기 위해서 우리 지치지 말고 생생히 감각하자고, 썩은 어금니 밀어내듯 계속 흔들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네, 면서기입니다(이우주 지음)》, 「면서기가 경찰관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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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