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소설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22.8.15
인내상자
-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말은 퍽 오묘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해야 할 때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 판단과 선택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혜가 필요한 일이라는 말을 더러 듣는데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기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런가, 소심한 나는 말해야 할 때 말하기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을 안 하는 것에 더 유의하며 사는 편이다. 덜 위험하니까.
8편의 단편집. 하나하나 재미있게 읽힌다. 이 작가의 글이 늘 그러했듯이. 에도 시대의 서민들 생활 모습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의 먼 이야기로 여겨져 흥미롭다. 그때 그곳에서는 이렇게 살았더란 말이지, 하는. 우리네 생활 풍경과 차이가 느껴지는 외면의 풍습과는 달리 사람 마음 속이나 사람들 간에 이어지는 관계의 사정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이 이 소설을 읽는 크나큰 재미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일 테고.
말을 하고 싶으나 하지 않는 것, 비밀이라는 것. 비밀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무엇이었나. 누군가는 알고 있는데 누군가는 알면 안 되는 것이 비밀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비밀의 속성은 끝내 드러나고 만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드러내는 쪽에 어떤 의도가 있어서, 이를테면 드러냄으로써 누군가를 위하거나 누군가를 해치거나 하려는. 그게 또 드러내고자 하는 이의 성격이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어서.
인간사, 비밀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런데 비밀을 밝히는 이를 쉽게 나무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말해서 안 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또 생기니까. 다시 선택으로 돌아온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말하고 또는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찮은 삶은 없다. 인간 개개인의 삶은 모두 소중하니까. 내로남불, 비밀을 터뜨리는 일에도 이 말이 적용된다는 게 그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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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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