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단

강림
- 작성일
- 2022.9.12
돌봄이 돌보는 세계
- 글쓴이
- 김창엽 외 10명
동아시아

돌봄이 돌보는 세계, 조한진희X다른몸들 기획 (동아시아)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돌봄이 돌보는 세계」는 2021년 3월 다른몸들에서 주최한 연속 강좌 <교차하는 현실 속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돌봄>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강좌에서 이어진 책이라 더 다양한 사람의 입으로 다양한 키워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질병, 정신장애, 장애 등 총 11개의 키워드와 여러 명의 발화자를 통해 돌봄을 논의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 많이 반성했고 사실 부끄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돌봄’이 이렇게나 편협한 것이었다니. 성인이 된 후로는 내가 돌봄과 먼 존재라고 생각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내 할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돌봄’은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땐 누구나 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챕터는 권리를 키워드로 한 의존과 질병의 ‘정상성’, 이주를 키워드로 한 국경을 넘는 여자들이다. 의존과 질병의 ‘정상성’ 파트에선 ‘질병권’에 대한 논의가 인상깊었다. “무엇이 우리를 돌봄 불안에 떨게 하는지, 누가 어떤 식으로 돌봄 불평등에 놓여 있는지, 어떤 조건과 문화가 특정 존재를 약자화하고 있는지 무심히 흘러가는 듯한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보자. 그런 장면과 문제를 포착하는 것 자체가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수하다(p.129).”고 말한 조한진희 활동가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또한 이 책에서는 돌봄의 외주화와 시장화에 대한 문제점을 자주 짚는데, 국경을 넘는 여자들은 돌봄의 여성화, 계층화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특히 더 기억에 남는 챕터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공부하는 자세로 읽지 않으면 머리에 남는 게 많이 없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각 챕터 안에서 소제목을 굉장히 잘 활용하였다. 소제목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에 대해 한번 더 짚어주고 요약해주어, 내 사고가 다른 길로 빠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잘 잡아준다. 결국 이 책은 11개의 키워드를 통해 몸에서부터 제도, 제도에서부터 가치로서의 돌봄까지 개념을 확장해가며 모두가 돌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 돌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적인 제시도 잘 되어 있어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한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었다.
▶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적’은 일회성 이벤트이다. 나에게 기적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수가 내가 생을 ‘지속’하며 살아가야 할, 같은 인간임을 고려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 사회는 내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병-나의 장애는 몇 점인가요? 中)
▶ 돌봄에 의존하는 것이 강한 남성성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주장도 사실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혼자서는 넥타이도 제대로 못 매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주고, 아내가 건네주는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고, 집을 나설 때는 아내가 신기 편한 방향으로 놓아준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모습. 이는 남성성 훼손이 아니라, 남성 혹은 남편으로 ‘대우’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특정 의존만이 문제가 된다. 문제는 의존하고 돌봄받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돌봄을 둘러싼 권력과 통제권이 그 핵심이다. (권리-의존과 질병의 ‘정상성’ 中)
▶ 돌봄을 받기만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이로 자랄 수 있겠는가? 돌봄을 하찮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곳에서 교육을 받은 이가 어떻게 돌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참된 배움은 책에 적혀 있는 진리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의와 평등, 공존과 공생의 기술을 삶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 돌봄인지도 모른다. 이제 교육과 돌봄을 분리하고 위계화했던 오랜 역사를 철폐하고, 교육과 돌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성찰하면서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성해보자. 그 길을 먼저 갔던 수많은 발자국들이 우리 앞에 있다. (교육-돌봄 없이는 교육도 없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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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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