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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알렉산더 대왕
글쓴이
피에르 브리앙 저/홍혜리나 역
시공사
평균
별점8.5 (4)
minch21
Alexander, the Great, became the fever into heart of man...
80년대 아이언 메이든(?)이라는 메틀그룹이 불렀던 노래의 한 대목...왠지 '알렉산더 대왕' 하면 늘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원전 4세기 후반 당시의 문명세계를 사실상 완전정복했다는 알렉산더 대왕,과연 그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후진문명이었던 서양문명, 그것도 변방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가 어떻게 선진문명인 페르시아의 압도적 우세를 잠재우고,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나아가 인도북부까지 하나로 통합해 세계보편문명...헬레니즘의 새 장을 열 수 있었을까?

이 책은, 기원전 334년 봄,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더 3세가 스물두살의 나이로 5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소아시아의 연안을 향해 출항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의 제국을 정복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북부 인더스강 유역에까지 이르는 원정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제국의 아름다운 수도 바빌로니아에서 죽는 날까지 10 여 년간을 풍부한 사진설명을 곁들여 시간순으로 서술한 대서사시다. 고대의 전설적인 그러나 엄연히 실존했던 영웅, 그가 누렸던 30여년의 짧은 삶에 비추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군사적 업적과 세계사에 남긴 발자취...한치 앞을 내다보기에도 팍팍한 사람살이에, 짬을 내서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로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두 왕실 군대간의 첫번째 교전은 BC 333년 11월 실리시아의 이수스 부근에서 벌어졌다.

다리우스 3세로서는 너무도 불행한 선택이었다. 페르시아군과 기마대는 산과 바다로 가로막힌 좁은 평원에서 공격다운 공격 한번 제대로 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왕실 소속 군대의 정예군이자 자랑거리인 기마대가 용맹스럽게 싸웠지만 마케도니아군의 전술이 한수 위라는 사실이 또다시 입증되었다. 다리우스 3세는 패색이 완연해지자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페르시아군이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그렇다고 저항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리우스 3세에게는 아직도 막대한 재물과 군대가 남아있었다. 거기서 살아남은 몇몇 장군들은 소아시아에서 반격을 펴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수스 전투의 승리로 페니키아로 가는 길이 알렉산더 앞에 활짝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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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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