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리뷰

민휴
- 작성일
- 2022.10.9
빈틈의 온기
- 글쓴이
- 윤고은 저
흐름출판
맑고 상쾌한 웃음을 따라
― 윤고은 산문집 『빈틈의 온기』 (흐름출판, 2021)를 읽고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라는 부재를 달고 『빈틈의 온기』는 세상에 온기를 퍼트리러 나왔다. 「윤고은의 EBS 북카페」의는 “좋은 책을 소개합니다”를 테마로 하는 방송이다.
『빈틈의 온기』는 북카페 진행자인 윤고은 소설가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금요일 프로그램인 “시 큐레이션/책 큐레이션”이다. 김상혁, 김소연 시인이 책에서 한 문장을 골라와서 두 편씩 시집이나 소설, 산문집 등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를 듣고, 사유를 나누는 두 시인의 안목을 배우고 책을 소개받는 시간이라 행복하게 들었다. 두 시인이 골라 온 시들과 문장들은 삶에서 배울 수 있는 한 줄이었으며, 나의 삶과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고 이 시대의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토요일 프로그램인 김찬용 도슨트의 “미술애호가를 위한 최소한의 미술사” 시간에 푹 빠져 그림을 검색하며 그림을 배워나갔고, 미술관을 찾아 여행도 다녀왔다.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이라는 책도 구입해 읽게 되었다. 목요일의 염승숙 소설가와 최동민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럽”은 소설을 읽어주는데 염승숙 소설가님의 입담에 홀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화요일의 전병근 작가의 “지식 큐레이션”은 깊이 있는 책을 가져와 소개하며 사유를 나눈다. 수요일은 오영진 과학자의 “테크노컬쳐”, 월요일은 “일간 카페인”은 책을 쓴 작가가 출연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북카페 최애 청취자인 나는 정규방송 시간인 정오부터 2시까지는 일정상 들을 수 없어서 운전하는 시간과 가정을 벗어난 시간에 다시 듣기로 무조건 듣고 있다. 지난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간 되는대로 찾아서 듣고 있다.
이 모든 요일의 프로그램에 능수능란하게 진행하는, 내가 아는 최고의 라디오 DJ 윤고은 님이 있다. 시인과의 시집 이야기, 소설가와의 소설 이야기, 과학자와의 과학 이야기, 지식전문가와의 깊은 사유, 미술 전문가와의 미술 이야기 등 어떤 분야의 이야기에도 깊이 빠져서 알고 싶어 하고, 알려주고 싶어 하며 초대 손님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게 만드는 덕분에 애청자들이 아주 행복해하는 문자들이 많이 올라온다. 스스로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에 책에 대한 해박한 배경지식과 적절한 질문과 대답으로 매시간을 흥미롭고 깊이 있는 시간이 되도록 이끌어 준다. 늘 미리 진행할 프로그램을 학습하고 와서 내용을 숙지하고 있고, 궁금증도 준비해와서 수준높은 질문으로 방송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런 그가 산문집이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책을 구입했다. 물론, 그의 소설들도 어서 빨리 읽어 달라고 줄을 서 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그의 지하철 속 이야기와 생활, 일상, 독서, 영화 등이 경쾌한 문제로 펼쳐져 있다. 라디오의 애청자인 나는 그가 웃음을 머금고 신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즐겁고 행복한 책 읽기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도 같고, 내가 아는 사람들 이야기인 것도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에서 위로받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책 읽기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 어린 아이같은 순박함과 호기심, 장난기 등이 엿보이는 맑고 고운 심성의 소유자다. 여행을 좋아하며 매 순간 소설을 생각한다는 그. 라디오를 진행할 때 초대 손님들을 최선을 다해 응대하며 밝고 편안한 목소리로 청취자와 만나려는 노력이 돋보여서 나는 오늘도 윤고은을 읽고 또 듣는다.
「선로를 타고 오는」에서 “우리가 엉뚱한 지점에 떨어뜨린 말과 표정도 어느 밤에 주워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노련하고 야무진 집게가 있다고 해도 그걸 건져 올리긴 어려울 것이다. 잃어버린 지점이 어디인지도 몰라서 서성이는 사람들로 어지럽겠지”라고 썼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그가 선로 위에 떨어진 물건들을 보면서 우리의 말과 표정도 함부로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어 놓았다. 나도 늘 말과 표정, 행동을 조심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말에 크게 공감이 갔다.
「구명튜브」에서 “세상의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책과의 만남도 시기를 탄다. 그 책을 만날 때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인생의 어떤 계절을 통과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책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거나 도발하거나 위로했다는 말을 들으면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이 만났던 어느 시점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책은 우리 산책의 가로등 같은 것, 가로등이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지만 있으면 덜 외롭겠지”라고 적었다. 자신의 생애 주기마다 찾아왔던 책, 읽었던 책과 일상의 상황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 시절의 가로등 같았던, 몇 겹의 사연을 입으면서 더 공고해진 책들”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이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책도 찾아오는 것 같다. 읽었던 책들을 다시 만나 읽으면 또 다른 사유와 깨달음도 다르게 다가온다. 외로움의 순간마다 책은 나의 친구였고, 내 삶이 복잡할수록 책 속으로 도망가곤 했다.
「작가의 말」에서는 “마주치는 모두에게 내일의 산책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밤이기도 하다. 산책을 권할 때 그 안에 담고 싶은 건 산들거리는 바람, 따갑지 않은 햇볕, 적당히 편안한 신발 같은 것이지만, 모든 산책로가 나긋하지만은 않다. 그걸 기대하는 순진한 산책자도 아니다. 다만 내일 산책로에서 가장 나긋하고 살랑한 존재가 되어보리라는 호기는 좀 부리고 싶은 밤이다”라고 끝을 맺는다. 그의 말들이 너무 좋아서 내가 덧붙일 말은 없다. 그냥 다 함께 감상하고 생각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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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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