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사회

앤디
- 작성일
- 2022.10.16
전쟁일기
- 글쓴이
- 올가 그레벤니크 저/정소은 역
이야기장수
올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은 장기화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이야기장수 이연실 편집자의 SNS로부터였다. 전쟁 상황과 함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스타에 시시각각 공유해 주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안타까웠다. 책이 나오자마자 주문해 읽었다.
올가 그레벤니크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딸, 화가이자 작가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
그림책 작가로 호평받으며 살아가던 그녀가 다음 책 작업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전쟁 일기를 쓰게 되었다. 일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필 전쟁 일기라니.
프롤로그 중에서.
전쟁 전 우리 삶은 마치 작은 정원과 같았다.
그 정원에서 자라는 모든 꽃들은 각자의 자리가 있었고, 꽃 피우는 정확한 계절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했던 우리 정원은 날이 가면 갈수록 풍성하게 자랐다. 아이들은 음악, 미술, 무용 등 예술을 배웠으며, 남편과 나는 차례대로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며 뒷받침을 했다.
전쟁 일기의 시작은 2월 24일 1인칭 지하 시점, 그 뒤로 20여일간의 기록이 담겨있다. 사랑으로 가득한 잔잔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사람들, 의지와 상관없이 맞이하게 된 전쟁이라는 상황.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일상의 조각들을 담은 스케치와 메모를 들여다보며 많이도 울었다. 슬프고 속상하다는 말도, 안타깝고 먹먹하다는 말도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무엇으로 도와야 하는가,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과 무력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기를 선택했다. 큰 힘은 없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뉴스 이면에 있는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실제 이 책의 번역료와 인세는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기부한다.)
나는 폭탄으로부터 도망친다
내 인생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바로 곁에 내 아이들이 있었다.
두 번 세 번 책을 읽으며, 이웃들과 낭독을 하면서 실제 기록이 주는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잘 쓰지 않아도,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삶의 증언만으로도 독자들의 마음 깊이 들어가기 충분했다.
늘 함께하던 남편과 엄마를 두고 온 날들, 초콜릿을 아껴서 오래오래 녹여먹고,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이 귀한 순간, 지하실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전쟁 중에서도 내 생일은 올까', 하는 아이의 마음, 곁에 있는 두 아이를 안심시키려 불안감을 누르고 애써 감정을 절제하는 엄마의 먹먹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읽는 내내 아팠고, 아팠고, 또 아팠다.
삶의 큰 사건이 온다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전쟁 전날 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작가의 말, 천 개의 계획들과 꿈이 있었고 배부르고 행복한 채로 잠들었던 평범한 날의 풍경. 담담하게 서술된 문장들. 그래서 더 아린다.
어떤 충격의 날, 그 전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이웃의 말에 공감했다.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았던 날, 소소한 시간으로 가득 찬 평범한 날들의 풍경이 머릿속을 가만히 스쳐간다.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득 일기를 열심히 썼던 날들이 떠오른다. 작가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기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이 아프지만 증언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아픔에 공감하며 그저 펜을 들어 더 열심히 기록해보기로 했다.
전쟁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국적과 민족을 불문하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다.
전쟁은 끝날 것이고, 힘센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제발.
어떻게든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전쟁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무자비함도 인간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직 펜만이 입증한다. 무기는 끊어내지만 펜은 연결한다.
- 은유 작가의 추천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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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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