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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2.12.4
백치 (하)
- 글쓴이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독서후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백치>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타인을 위하는 사랑에 대한 고찰
-세상에서 '백치'가 가지는 의미의 이중성
결코 완독하지 못할 것 같았던 러시아 대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1,2 권을 다 읽었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이름이 길기로 유명한 러시아 소설은 이름만으로 인물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요한 인물들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끼어들고, 저마다의 사상을 꺼내든다.
그럼에도 결국 전체 이야기는 하나로 흐르고,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바보, 천치로 번역되는 Idiot의 미쉬낀 공작은 이 작품의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백치라 불린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가 결코 백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를 백치라 부를까.
그는 타락한 인간 자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타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982쪽)
미쉬낀 공작은 사랑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으로 포장한다. 그래서 그는 창녀처럼 회자되는 미모의 나스따시야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약혼한 아글라야가 뛰쳐나가는데도, 나스따시야가 기절하자, 아글라야를 쫓아가지 못하고 나스따시야를 안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쉬낀 공작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그렸다고 한다. 예수는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미쉬낀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나스따시야와 결혼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미쒸낀 공작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글라야를 포기하고 돈으로 사려고 하는 로고진으로부터 나쓰따시야를 구해내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c.s.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아슬란을 떠올렸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의 종교적 메시지에 치중하기보다 타락해가는 러시아 사회와 거기에 매몰되어 가는 군상들을 나열한다.
"문제는 삶에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삶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607쪽)
죽음을 앞에 두고 자살하려는 이뽈리뜨의 말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당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의 종교적 메시지를 그려내지만, 예수도 극복하지 못한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세상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죽음이 이토록 처참하고 자연의 법칙이 이토록 막강하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생전에 자연을 물리치고 예속시켰던 자로서 그가 <탈리다 쿰! > 하고 외치면 소녀가 일어났고, <라자로야, 이리 오너라>하면 죽은 자가 걸어 나왔는데, 그런 자마저 이겨 내지 못했단 자연의 법칙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겠는가?"(628쪽)
작가는 자살하려는 이뽈리뜨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이 가지는 무자비하고 무신경하며 무관심적인 세태를 비판한다.
<태양이 떠올랐다!> 그는 반짝이는 나무 꼭대기를 보고 마치 기적이라도 본 양 공작에게 그곳을 가리켰다. <떠올랐어요!>
<그럼 자네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페르디쉬첸꼬가 한마디 했다. <또 종일 뜨겁겠군> 가블릴라가 태형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
이쁠리뜨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놀라움에 망연자실해졌다. (639쪽)
세상은 그랬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희망을 가지려고 외치는 것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미쉬낀은 순수하고 순결하고 욕심이 없었기에 사람들로부터 백치라 불렸다.
"거짓으로 시작된 것은 결국 거짓으로 끝나는 법이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죠. 나는 당신을 백치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고, 가끔은 분노까지 합니다." (892쪽)
예브게니는 공작을 예리하게 분석했는데, 공작이 나쓰따시야와 결혼하려는 마음에 대하여 '자신의 죄가 아닌 혐오스런 상류층 호색한의 죄로 더럽혀진 여자를 결코 타락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고 분석했다.
공작과 결혼하려는 아글라야는 공작에 대하여 <그 남자는 한 번 이상을 세우면 그것을 믿고 또 그 이상을 믿게 되면 평생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사람>이라고 이해했지만, 결국 그 이상 때문에 공작을 놓치고 만다.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소설속 이야기 속에 녹여내면서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도스토예프스키는 분명 위대한 작가이다.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읽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일 것이다.
"당신은 전혀 죄가 없어요. 나스따시야,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고백한 공작의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죄와 사랑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또다른 사랑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거대한 그림을 나는 부분적으로만 읽어낸다. 전체를 볼 역량이 부족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대작.
그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더 읽고 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더 큰 그림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직 진행 중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타인을 위하는 사랑에 대한 고찰
-세상에서 '백치'가 가지는 의미의 이중성
결코 완독하지 못할 것 같았던 러시아 대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1,2 권을 다 읽었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이름이 길기로 유명한 러시아 소설은 이름만으로 인물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요한 인물들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끼어들고, 저마다의 사상을 꺼내든다.
그럼에도 결국 전체 이야기는 하나로 흐르고,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바보, 천치로 번역되는 Idiot의 미쉬낀 공작은 이 작품의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백치라 불린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가 결코 백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를 백치라 부를까.
그는 타락한 인간 자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타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982쪽)
미쉬낀 공작은 사랑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사랑으로 포장한다. 그래서 그는 창녀처럼 회자되는 미모의 나스따시야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약혼한 아글라야가 뛰쳐나가는데도, 나스따시야가 기절하자, 아글라야를 쫓아가지 못하고 나스따시야를 안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쉬낀 공작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그렸다고 한다. 예수는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미쉬낀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나스따시야와 결혼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부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미쒸낀 공작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글라야를 포기하고 돈으로 사려고 하는 로고진으로부터 나쓰따시야를 구해내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c.s.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아슬란을 떠올렸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의 종교적 메시지에 치중하기보다 타락해가는 러시아 사회와 거기에 매몰되어 가는 군상들을 나열한다.
"문제는 삶에 있다.
오로지 한 가지 삶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607쪽)
죽음을 앞에 두고 자살하려는 이뽈리뜨의 말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당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의 종교적 메시지를 그려내지만, 예수도 극복하지 못한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세상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죽음이 이토록 처참하고 자연의 법칙이 이토록 막강하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생전에 자연을 물리치고 예속시켰던 자로서 그가 <탈리다 쿰! > 하고 외치면 소녀가 일어났고, <라자로야, 이리 오너라>하면 죽은 자가 걸어 나왔는데, 그런 자마저 이겨 내지 못했단 자연의 법칙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겠는가?"(628쪽)
작가는 자살하려는 이뽈리뜨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이 가지는 무자비하고 무신경하며 무관심적인 세태를 비판한다.
<태양이 떠올랐다!> 그는 반짝이는 나무 꼭대기를 보고 마치 기적이라도 본 양 공작에게 그곳을 가리켰다. <떠올랐어요!>
<그럼 자네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페르디쉬첸꼬가 한마디 했다. <또 종일 뜨겁겠군> 가블릴라가 태형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
이쁠리뜨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놀라움에 망연자실해졌다. (639쪽)
세상은 그랬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희망을 가지려고 외치는 것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미쉬낀은 순수하고 순결하고 욕심이 없었기에 사람들로부터 백치라 불렸다.
"거짓으로 시작된 것은 결국 거짓으로 끝나는 법이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죠. 나는 당신을 백치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고, 가끔은 분노까지 합니다." (892쪽)
예브게니는 공작을 예리하게 분석했는데, 공작이 나쓰따시야와 결혼하려는 마음에 대하여 '자신의 죄가 아닌 혐오스런 상류층 호색한의 죄로 더럽혀진 여자를 결코 타락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고 분석했다.
공작과 결혼하려는 아글라야는 공작에 대하여 <그 남자는 한 번 이상을 세우면 그것을 믿고 또 그 이상을 믿게 되면 평생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사람>이라고 이해했지만, 결국 그 이상 때문에 공작을 놓치고 만다.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소설속 이야기 속에 녹여내면서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도스토예프스키는 분명 위대한 작가이다.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읽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일 것이다.
"당신은 전혀 죄가 없어요. 나스따시야,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고백한 공작의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죄와 사랑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이루어지는 또다른 사랑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거대한 그림을 나는 부분적으로만 읽어낸다. 전체를 볼 역량이 부족했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대작.
그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더 읽고 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더 큰 그림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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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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