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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글쓴이
위화 저
푸른숲
평균
별점9.6 (178)
chogaci

나에게 중국 소설을 읽는 맛이 남다른 것은 그 공간을 상상하며 감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고 중국 사람들조차 중국 지방을 나처럼 다양하게 경험해 본 이가 많지 않다. 그리고 위화의 소설은 그 시공간을 누구보다 잘 기억나게 하는 탁월한 글솜씨가 있다. 위화의 소설적 공간은 그의 고향인 항저우가 중심이다. 그리고 이번 소설 원청도 황허 북쪽 산동성 한 마을과 창지앙 아래 항저우나 쑤저우 인근 한 마을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시진(溪鎭)이 실제 지명은 아니니 굳이 상상한다면 쿤산 옆에 수향(水鄕)인 진시전(錦溪鎭) 정도로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소설 속 다른 인근 도시인 선뎬(沈店)도 저우주왕(周庄)이니 공간적으로도 맞는 느낌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쑤저우, 저우주왕이나 통리, 우전, 시탕, 샤오싱 등 수향이 주는 공간적 느낌을 되살렸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이 소설의 배경은 위화의 소설 가운데 가장 멀리 갔다. ‘살아간다는 것허삼관 매혈기가 국공내전 시기부터 문혁까지를, ‘형제가 개혁 개방이후를, ‘7은 최근 부동산 개발 열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청말민국 시대다. 시기로 본다면 중국 역사에서 어느 시기보다 피가 난무하던 시기다. 태평천국의 난이 지난 후 피폐해진 지역은 의화단 운동(1900년 전후)으로 인해 혼돈에 들어가고 지역의 치안은 엉망이 된다. 수호지의 시대가 된 듯 토비(土匪)들이 날뛰고, 사람들은 정처를 찾지 못한다. 명분을 가지면 혁명군이지만, 이들 역시 토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았던 린샹푸의 삶을 중심으로 구이민, 천융량, 샤오메이의 삶을 배치하면서 펼쳐진다. 린샹푸는 황허 북쪽의 농촌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지식인이자 지주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400무의 전답이 있는 부자고, 가구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여복은 없어서 스물네살까지 혼자로 지내는데, 어느날 아창과 샤오메이라는 젊은 남녀가 찾아오면서 그의 삶은 바뀐다. 오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창은 샤오메이를 린샹푸에게 맡기고 떠나는데, 젊은 남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사랑의 즐거움도 잠시, 어느날 샤오메이는 자기집에 보물인 17개의 큰 금덩이 가운데 7개를 갖고 사라진다.



 



린샹푸는 절망에 빠져서 자책한다. 그런데 그녀를 조금 잊을 무렵 샤오메이가 출산을 앞둔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금덩이는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린샹푸의 아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심성이 착한 린샹푸는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고, 혼례까지 올리지만, 아이를 낳고 한달여가 더 지난 어느날 다시 샤오메이는 사라져 버린다. 린은 결국 재산을 정리해 종이 어음인 은표로 바꾸고, 형제 같이 지내던 톈씨 형제들에게 집을 맡긴 채, 젖먹이 딸을 안은 채, 샤오메이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아창이 말한 그들의 고향은 원청(文城)이다. 처음 듣는 지명이지만 글자 조합이 뻔해서 다분히 있는 도시로 생각했지만 원청은 바이두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지명이었다. 린샹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남매가 쓰던 어투와 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는 지리적 특성이다.



 



황허 건너는 배에 태울 수 없어, 가족 같은 당나귀 마저 팔고, 린샹푸는 드디어 남매의 어투와 비슷한 시진에 도착한다. 거기에 돌풍까지 만난 린샹푸는 아이 우는 집을 찾아 딸에게 동냥젓을 먹이며 곡절 끝에 이곳에 정착한다. 다행히 어떤 사연인지 고향 인근에서 내려온 천융량과 목공소를 차리고, 가져온 은표를 바탕으로 이 근방에서 1000무의 땅을 가진 지주이자 목공소 사장이 된다. 그렇지만 린샹푸의 모든 촉각은 딸의 엄마인 샤오메이의 행방이다. 하지만 남매인지 부부인지 모를 두 사람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딸 린바이자는 서서히 엄마를 닮은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해 간다.



 



위화 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은 각각의 생명력을 갖고 있다. 좀 허당인 듯한 시진의 중심인물 구이민은 물론이고 바이자와 정혼하는 큰 아들 구퉁롄은 물론 천융량의 아내와 자식, 고향에 남기고 온 톈씨 집안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토비가 된 스님도 그렇다. 이들을 둘러싼 가장 큰 이미지는 선함이다. 자신을 아껴준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고, 신뢰를 지켜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든 이가 그런 것이 아니다. 토비의 우두머리 장도끼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잔악하게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을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한다. 이에 비해 선량한 사람들은 힘은 없지만 때로 뭉치면서 그들을 대항한다.



 



책의 후반에는 외전으로 아창과 샤오메이의 삶에 관해 쓴다. 역시 근대를 살아가는 부부로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변화하는 도시의 흐름 속을 잠시 경험한 이 부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성으로 향하던 길에 린샹푸와 얽히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얽힘에는 큰 사악함도 배신도 있지 않다.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렇게 얽혔고, 피치못한 관계들을 맺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중국 특강을 할 때, 중국을 알고 싶다면 중국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유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페이소스와 유머를 볼 수 있고, 중국 역사를 알 수 있고, 각 지역별 사람들의 습관과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인의 천성을 읽는 데 소설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장 전형적인 작가가 위화라고 할 수 있고, 이 소설도 그런 매력을 충분히 담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반가운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털끝 같은 오차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지요”(385페이지)라는 문구다. 소설의 원문은 모르지만 毫裏有差 天地懸隔이라는 송나라 시인이자 스님인 석변의 게()인 이 말을 나는 우리가 중국을 잘못 이해하는 순간 적지 않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쓴다. 이 소설에서는 장도끼와 천융량의 대화에서 사용했다. 아마도 성인과 야차의 차이도 작은 곳에서 시작했다는 은유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가슴이 메이고, 쓸어 내리는 일이 많았다. 소설은 가슴 아프게 적지 않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다만 작가는 다음을 생각하면서 쓴 듯도 하다.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나 구이민의 아들, 딸들, 천융량의 아들, 딸들을 상하이나 셴뎬 등으로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살아간다는 것의 부꾸이 되고, 허삼관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위화다움을 느끼는 행복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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