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날來

싱긋
- 작성일
- 2022.12.12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 글쓴이
- 강지희 외 9명
한겨레출판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은 스트레스를 풀고자 짠 과자와 초콜릿을 달고 살던 시기에 눈에 들어온 책이다. 뒷날개를 보니 H출판사의 유명 에세이 시리즈에 속한다. 한 명의 작가가 다섯 꼭지씩 쓴 글 모음집이다.
강지희 평론가와는 나만의 연緣이 있다. 그는 최연소 등단 평론가답게 지적이고 세련되게 글을 잘 쓴다. 그 믿음에서 동료를 꼬셔 유명 소설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그를 보러 갔었다. 시간에 예민한 직업병이 발동하여 자신 없는 눌변이 영 못마땅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경복궁 주변의 어느 평론가와의 만남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내게 깜깜할 때 위치 찾기란 난관이다. 그때 지나가던 강 평론가를 따라 무사히 합석할 수 있었다. 나는 일개 독자이고 그는 선배 평론가를 보러 온 거였지만. 그리고 이제 그도 말을 꽤 잘한다. All’s well that ends well.
‘미나리 할머니와 고사리 할아버지’는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를 작가의 외할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품”과 (제주산) 고사리를 연결지으며 아름다운 향미를 피운다.
‘무수히 많은 이별과 산책’에서 그가 연극과 연극 이론에 심취해 소설 평론가가 된 사연을 알게 됐다. 픽션과 “연애”하며 혼자 하는 이별 의식, 즉 긴 산책과 음악 듣기의 리듬타기가 낯설지 않다. “그 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마치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아가는 연애와 유사한 바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 위에 그 사람이 알고 이해하는 세상을 겹쳐놓고 ‘두 동그라미가 교차’되면서 만드는 궤적을 바라보는 일(19)”에 매혹되는 자들의 마음은 같다. 뜻밖에 아래 인용에서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픽션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버리지 못하는 욕망 중에는 모든 것을 ‘완결된 상태로 감각’하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무언가가 진행되는 중에 수반되는 열정과 기대와 불안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손에 쥐는 ‘안정과 관조와 초연함’을 갈망했다. (18-19: 본인 강조임)
‘점심이 없던 날들’은 대학강사 시절을 호출한다. 나는 대학 진학 전까지는 집밖과 학교가 넘나 좋은 사람이었다. 외부의 변화에 떠밀리는 것을 꺼리는 유형이라, 수능1세대 부적응과 입학과 동시 CC 경험은 나를 책의 “고립과 고요함” 속으로 숨게 했다. 사진 찍히는 것도 시선 응시Eyes로 불편해하는 터라, 강의도 박사학위를 받고 반년 쉬고 겨우 시작했다. 강의 전 긴장하고, 시끄러운 식당에선 멘탈이 털리고, 얘기를 하면 밥을 못 먹는 스타일이라 대부분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나중에는 식당파가 아닌 군것질 그룹이 생겼지만.
목요일까지만 강의 스케줄을 짜던 내가, 퇴근길에 하도 기뻐해 따라 금요일에 강의를 잡지 않는다는 동료 선생님까지 생겼다. 키우던 반려견도 목요일 밤에는 거실에서 나를 기다렸다. 티브이 보면서 교촌 레드윙 뜯는 시간인 걸 알고(미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피하는 음식이 되었..). 그리고 수업 전후 준비와 정리 시간을 조용히 따로 갖는 내가 신기해, 또 항상 읽을거리를 말해 친해지기로 했다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나는 지인들에게 늘 말했다. 강의실을 나오는 순간 나는 그냥 000이고 “내 공부가 더 중요해. 그거면 된다.” 수업 중 농담도 없고 소화할 분량에 집착하는 팍팍한 선생이었던 탓에 ‘내가 편해야 상대도 편해’라는 주문으로, 다음 문구를 여러 번 되뇐다. “어쩌다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조금 느리거나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서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27).”
‘베이징과 불발된 연애’도 추억을 되감는다. 영어를 전공한 학생들은 대체로 외국인과의 교제에 열려 있는 편인데, 나는 모국어로도 안 통할 때가 많은데 할 말을 못해 속병이 걸릴 것 같아 싫었다.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왔을 때 누군가 그랬다. “다녀 와서 가장 달라진 게 너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으나 나는 지독한 정박 욕구와 귀소 본능에 시달린다. 귀국 했을 때 외국에서 날아와 있던 엽서들과 바이크 타고 바다 보러 가자던 녀석이 생각나, 젊은 날에는 삶을 망가뜨리지만 않는 선에서 썸을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른다. 라잇 어 플라워웍~ㅎ
‘엄마, 스시, 눈물’은 심경을 복잡하게 비튼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산 적이 없는데 미혼인 게 맞을까. 내 주장이지만 가족과 반백년 같이 살면 부부와 마찬가지로 쳐줘야 한다(졸혼과 이혼도 인정되어야^^). “엄마의 가지치기”, 그 희생과 헌신이 어느 순간 “사랑하는 자의 독선”이 되기도 한다. 내 꿈의 시작을 더듬다보면 스무 살 리바트 회색 사무용 책상과 책장을 선물했던 엄마가 있지만, 삼년 전 배신감에 힘들어 멍 때리는 내 방을 뒤집은 건 배려도, 사랑도 아니다. 미니멀리스트인데 굳이 산더미 문서와 책들을 건드려 억지로 정리한 후 몸이 고장 났으니까(세 번의 수술). 살 곳을 자유롭게 바꾸는 큰조카에게 “넌 참 쉽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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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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