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Sailormoon
- 작성일
- 2023.1.18
마의 산 (상)
- 글쓴이
- 토마스 만 저
을유문화사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옮김)/ 을유문화사(펴냄)
〈마의 산〉 읽기는 넘지 못할 산을 오르는 일과 같았다. '목적'이 분명한 독서였다. 나를 '객관화' 하는 작업이었다. 내 안에 거하던 존재 하나를 들어내는 작업, 그리고 마침내 그것과 이별하고 소멸하는 과정이었다. 분명 아플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독서였다. 책스타그램을 시작한지 3년!!!! 책리뷰만 올리던 계정이 최근 몇 달 전부터 인친들과 조금씩 소통을 시작했다. 글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주고받는 댓글이나 디엠을 통해 발신자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읽힌다. 예를 들면 인친이 '고마워'~~라고 단 세 줄을 찍어 보내지만, '고마워'의 밀도가 큰 지 작은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담겨있는지 이런 것을 생각, 또 생각하다가 결국 '나는 내 생각 속에 갇혀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가두었는지 모른다'...
어리석은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인가! 마의 산을 함께 올라주신 분!!! 혼자서는 넘지 못할 산을 기꺼이 함께 올라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내게 무척 특별한 분이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처럼 젠틀(젠틀? 이 단어보다 더 멋진데, 암튼 지금 이 단어 이상의 표현을 찾지 못하겠음....)하고, 나같이 '목적'있는 독서만 하는 '가짜' 아니라 순수한 참독서인, 문장 하나하나에 힘을 주지 않아도 '힘'이 실리는 분, 진중한 매력의 소유자. 가끔 허를 찌르는 유머감각까지 있으신 순. 수. 교. 양. 인이었다. 사람은 겪을수록 실망도 하게 되는 법인데, 오히려 마의 산을 오르면서 그 인품에 다시금 반하게 되는 분!!!! 감사의 말씀을 서두에 미리 전하고 리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집중력이 그리 길지 않아서 굵고 짧게 평소 전투적으로 빡독을 하는 나는, 이번 책 역시 평소하던대로 자꾸만 전쟁 치르려는 마음을 억누르며 정독, 정독!!! 이번에 읽으면 다시는 안 읽어도 될만큼 꼼꼼히 읽자는 마음으로 상권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는데 하권에 와서는 자꾸만 집중력이 떨어졌다.
〈베네치아의 죽음〉때문이다. 내가 토마스 만에게 미치게 된 것은.....
내가 사랑한 것은 다 죽어있었다..... 도스토옙스키, 다자이 오사무, 백신애..... 그리고 지금 토마스 만을 여기에 더한다. 그러나 나의 그이, 토마스 만을 사랑하는 마음은 기존에 세 지성인을 사랑하던 마음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 아직 뭐라고 이름 붙이기 애매한 사랑이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던 9월에 나는 벽돌책을 병렬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벽돌책보다 더 읽기 힘들었다. 토마스 만 특유의 감정 하나도 없는 건조한 텍스트가 나를 울렸다.... 자꾸만 걸려 넘어졌다. 앞부분을 늘 하듯이 3독을 하고서야 토마스 만의 소설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노력없이 좀처럼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그 때 문득, 아하 마의 산!!!!이 떠올랐다. 마법의 산,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환자가 되거나 죽어서 나오는 요양원 다보스!!!! 토마스 만의 소설에는 늘 '죽음'이 있다. 나는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리뷰마다 단언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죽음이었다. 다만, 밀어냈을 뿐 죽음은 늘 곁에 와 앉아있었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품의 큰 줄거리
1430페이지의 분량에 비해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 스물일곱의 건강한 엔지니어 청년이 스위스 다보스의 요양원에서 보내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7년의 이야기. 그게 전부인데 우리는 이 책을 20세기 인문 교양의 총서라 불러도 좋을 만큼 음악,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언급, 생리학 화학 공학 등 전반적인 과학의 향연. 그리고 의학, 병리학, 지리, 역사, 전쟁, 사회, 법학, 정치, 종교, 인종 갈등, 국가주의 등 주인공이 탐구하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향대로 독자도 함께 깊이 매몰되는 독서였다.
마의 산 읽기가 쉽지 않은 점?
첫째, 대다수의 책들은 읽으면서 가끔 어려운 '마의 구간'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 구간이 다 마의 구간으로 되어있다. 이런 책은 처음 만나본다. 수월한 텍스트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유일한 로맨스 장면도 실제 이들이 정사를 나누었는지 아닌지 아리송한.....)
둘째, 주인공의 독백이 일곱, 여덟 페이지 이상 지속되기도 하고, 분야 전공자나 알아들을법한 병리학적 지식이 무려 열 페이지 이상 언급되기도 한다. 셋째, 인물들이 끝도 없이 계속 등장한다는 점이다. 상권의 후반부까지는 인물에 대해 상세한 메모를 했는데, 하권에 가서는 두 손 두 발 들고 그냥 '아하 뉴페이스구나' 이 정도로만 간단히 메모하며 읽었다^^
책의 거의 유일무이한 유머
하권에서 고문관 베렌스(의사이자 이 요양원의 운영자)가 한스에게 젊은 남자들의 성욕에 대한 언급을 하는 부분이었다. 젊은 남자들이 이 산중의 적막한 요양원에서 성욕을 참기 어려워하는 부분을 걱정하며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고 권하는 장면인데 어찌나 진지하게 말하던지, 여기서 혼자 빵 터졌다. 수학 여신은 순결하다!!! 이 문장에도 빵 터졌다. 수학 공부를 하면 성욕 억제에 도움이 된다??? 이거 근거 있는 말인가?ㅋㅋㅋㅋ
상권이 끝나자 관련 논문 한 편을 꺼내 읽었는데, 덕성여대 윤순식 교수님 논문이었다. 이 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토마스 만의 작품을 한국의 근대 문학과 비교하여 분석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결점을 찾아가는 독서를 좋아한다. 특히나, 무진기행과 마의산을 비교하신 점 정말 공감되고 인상 깊었다. 두 작품에서 죽음은 보편성이 아니라, 희비극성을 드러낸다. '무위'의 삶, 자유, 방문객이 정주민이 되어 버리는 마의 산, 자유의 최고조는 절정은 곧 파멸이라는!!!!! 죽음과 함께 있되 정신이 죽음에 지배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제의식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
그리고 책을 완독한 후, 게이 서브텍스트로서의 소설, 성 정체성의 고뇌의 관점에서 보는 논문을 한 편 더 읽었다. 만의 소설에는 병, 불구, 죽음, 예술성이 동성애가 등장한다. 세상과 운명에 대한 분노와 증오 체념이 죽음으로 귀결된다고 보는 관점에서 소설을 다시 읽으면 대사 하나하나, 등장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달리 보인다. 등장 인물중 한스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중 있는 인물 중 하나인 세템브리니. 이 이름에 담긴 의미는 몸을 팔러 오는 9월의 남자, 동성애적 의미, 베니스 방언이자 은어의 의미가 담겨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작품 곳곳에 동성애 연인을 감추어 놓았다. 거룩한 그리스적 동성애를 20세기 초반 인문주의 교양소설로 승화시킨 토마스 만.
비중 있는 인물들이 꽤 많았다.
요양원이 배경이다 보니 대부분의 인물들이 다 환자들이다.
◆한스의 사촌 요아힘. 폐병을 앓고 있는 그에게 문병오는 한스, 딱 3주만 머무르기로 한 것이 7년이 되어버리는 신비한 마법의 산이다. 요아힘은 군인이 되고자 하지만, 그의 건강은 좀초롬 나아지지 않았다. 채 낫지도 않은 몸으로 전쟁에 참전한 그는 다시 돌아오지만 요양원에서 삶을 마치게 된다.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레오 나프타 VS 계몽주의자인 세템브리니의 대결~~~!!!! 이것은 단순히 두 사람의 언쟁, 토론이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 무정부주의자와 관료주의, 이상주의적 극단 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싸움, 곧 닥쳐올 나치즘, 파시즘의 암시. 빈부격차와 불평등, 자연 회귀와 이성의 갈등..... 이 부분은 표로 만들어도 될 분량인데 두 사람의 대결은 세기의 대결, 흑과 백의 대결이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수 페이지에 걸쳐 계속되는데 마침내 나프타의 권총 자살로 끝나고 만다. 안타깝다. 그의 죽음 앞에서 세템브리니는 탄식한다. "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프타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템브리니도 병석에 눕는다.
◆러시아 여인 쇼샤 부인, 이 요양원은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식사와 산책, 공연과 강연회 등 최상의 것을 대접받는다^^ 매 식사를 최대한 화려하게 식당에서 다 함께 하는데, 식당에 나타날 때마다 문을 쾅 닫고 나타나는 여자. 흰 피부에 창백하고 가슴이 풍만하고 몸매가 아름다운 이 여자는 한스를 이 요양원에 7년이나 머물게 하는 원인이다. 하룻밤을 함꼐 보낸후, 말도 없이 떠나버리고 하 권에서 이 여자는 새로운 남자와 함께 다시 나타난다.
◆쇼샤부인의 새 연인이자 커피 재배 부농인 네덜란드 인 민헤어 페퍼코른. 그는 삶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체격도 크고 성격도 밝아서 한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는 처음부터 한스와 쇼샤부인과의 과거를 눈치채지만 끝내 모른척한다. 밝은 성격으로 잘 지내는가 싶더니, 요양원 생활 중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독극물을 이용한 자살.... 이에 충격을 받은 부인은 떠나버리고 한스는 더욱 요양원 생활에 집착하게 된다. 이후, 한스는 정신분석학 크로코프스키 박사가 이끄는 심령술, 최면술에 빠지게 된다. 죽은 혼 요아힘을 불러내기 위해 그들을 강령술까지 동원하는데....
소설의 공간적 배경, 다보스 요양원
지금도 숙박이 가능한 이곳은 실제 있는 요양원을 모델로 했다. 토마스 만의 아내가 병에 걸려 이곳에서 요양을 했고, 이때 만난 인물을 소재로 집필을 시작했으나 중간에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이 7년간의 이야기를 쓰는데 총 1년이 걸린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것도 처음이다. 스위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마을 다보스에 꼭 한 번 가고 싶다.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요양원 아미료를 기억하실 것이다. 주인공 나오코가 기거하는 언덕 위의 아름다운 요양원은 토마스 만의 소설 다보스 요양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 세계대전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건조하고 비관적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이성과 비판적 사고를 담고 있다. (이것도 내 주관적인 느낌)
당대 상황, 전쟁을 예감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있다. 유럽 사회의 고질적인 질병, 전쟁 징후, 내적 열병, 정신 상황의 문제점 + 사랑과 우정, 반복과 질시, 삶과 종교, 철학과 역사, 사회와 신화 + 동성애적 퇴폐적인 도식으로 그리는 큰 그림이다. 20세기 최대 걸작!!!!!!!!
토마스 만의 여성관
그의 여성관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여성들은 풍만하고 육감적이되 머리가 빈, 생각이 없는, 아니면 똑똑하되 수다스러운, 교양이 없거나 늙은 여자, 젊거나 성적 매력 다분ㅎ하고 명랑한 여자, 아니면 간호사 알프레다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여자들....
"여성의 조형성은 지방질에서 나온다"?라는 베렌스 의사의 말에 기겁했다. 여성을 폄하하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부분, 내지는 당대 시대상 수준이 이정도라 생각하면 그만인데.. 글쎄, 나는 아직 문장과 작가를 완전히 배제하는 수준 높은 독서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초보 독서인이라 이런 문장을 만날 때 많은 고민이 있다
.
소설의 결말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7년이나 단잠을 잔 한스, 에로스의 세계, 몽상의 세계에 기거하던 한스, 오로지 정신만 있는 세계에서 한스는 마침내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총알에 날아다니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한스는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소설은 한스의 운명을 알려 주지 않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그는 아마도 전쟁터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1430페이지의 독서는 이렇게 끝났다.
느낀점
목적성 있는 독서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나!!!! 나를 객관화하지도 못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병원에 갔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결국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감과 본질적인 유사성. 보편적인 진리, 이성에의 강요를 떠나 마음은 지금도 다보스 요양원에 있다. 누워지내다 간신히 일어나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죽을힘을 다해 산을 올랐으나 결국 산을 내려오지 못했다. "
◆◇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
♠시간이란 다름 아닌 무한정 체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를 속이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눈금이라고는 전혀없는 수은주인 것이다. P179
♠계절이 서로 뒤죽박죽되어 달력대로는 아니다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에만 이 궈력자들의 절대적인 숭배를 하는반면,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눈을 슬며시 감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P185
♠우둔하면서도 아프다는 게 이 두가지가 함께 존재하는 것은 세성에서 어쩌면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된다 P188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장권
♠너는 관을 보는 게 좋지않아? 나는 관 보는걸 아주 좋아해. 나는 관이 텅 비어있을때는 아주 아름다운 가구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누가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아주 장엄하게 보이는 거야 P212
♠젊은이는 적응하지는 못해도 뿌리는 박는다 P463
♠생명이란 무엇인가
♠기다린다는 것은 앞질러 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시간과 현재를 '선물'로서가 아니라 '장애물'로서만 느끼고 그것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며 이를 마음속에서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P460
♠시간이란 이용하도록 인간에게 빌려준 신들의 선물
♠문학이란 사실 인문주의와 정치의 결합에 따라 다름아니며 인문주의가 어느덧 정치가 되고 정치가 인문주의가 될 때 문학이 한층 더 무리없이 완성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불가사의한것이다. 실체가 없으면서 전능한 것이다. 현상계의 하나의 조건으로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체와 그것의 운동과 결부되고 혼합된 하나의 운동이다.
♠생명이란 갈망이고 갈망이란 생명이다
♠병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12월~ 1월 15일까지 한 달 반 동안 진행된 마의 산 상, 하 권 읽기를 모두 마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