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은책 리뷰

kkoddang
- 작성일
- 2023.1.18
별을 선사해준 사람
- 글쓴이
- 조조 모예스 저
살림출판사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에는 지금처럼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시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1곳, 그리고 고등학교 밀집 지역인 곳에 1곳이 전부였다. 그래서였는지 주말이면 집 근처에 책을 잔뜩 실은 이동 도서관 차가 왔다.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은 학교 도서관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고, 책들은 너무나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서 책 등부터 성한 것이 드물었지만 그 차에 올라타면 느껴지는 책으로 가득한 공기와 어둡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좋아 종종 찾아갔다.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그 이동 도서관 차는.
이제는 아파트 단지에도 하나씩 작은 도서관을 운영할 만큼 도서관과 가까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흔해지면 애틋함이 사라지기 쉽듯 이동 도서관 차가 다니던 시절에 비해 책에 대한 사람들의 간절함은 많이 줄어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스크린셀러로 유명한 <미 비포 유>의 작가 조조 모예스의 신간 <별을 선사해준 사람>은 책에 대한 간절함이 최고치에 있는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다. 1930년대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땅으로 불리는 켄터키의 깊은 산골, 도서관까지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말을 타고 직접 찾아가 책을 빌려주는 '이동 도서관' 사업을 시작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엘리스는 딱딱한 예의범절과 체면을 중시하는 영국 사회의 숨 막히는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유하고 영화 배우 뺨치는 외모를 가진 미국인 남성 베넷과 결혼해 미국으로 탈출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여전히 감옥 같은 생활이었다. 잠자리를 묘하게 피하는 남편, 모든 것을 관여하는 시아버지, 아이를 갖지 못한 걸 엘리스 책임으로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 속에서 엘리스는 활력을 잃어간다. 그러다 그녀는 얼떨결에 '이동 도서관' 사서에 지원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책을 통해 누구보다 깊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 같은 존재인 마저리와 베스를 만나 억눌러 있던 자아를 찾아간다. 그리고 책을 들고 찾아가며 사람들의 삶이 점점 변해가는 경험을 통해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
엘리스 뿐만 아니라 이동 도서관 사서가 된 여성들의 삶 하나 하나가 이 일을 통해 변화한다. 다리 길이가 다른 장애인이라 모든 것이 불만이었던 이지, 차별과 위협 속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유색인 소피아 등은 여성들과 연대하며 마음의 닫힌 문을 열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간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는 마저리는 자신의 고향 땅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자본가의 이득만 올려줄 광산 개발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며 광산 사업으로 큰 부를 얻고 있는 엘리스의 시댁과 충돌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지만 자신의 자유가 구속될까 결혼을 꺼리는 마저리의 투쟁 이야기는 페미니즘은 생태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로맨스도 빠질 수 없다. 한 눈에 반했지만 완전 똥차 같은 남자였던 베넷으로 인해 상처받은 엘리스가 배려심 깊은 돌싱남 프레드를 만나 치유되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베넷 똥차가 좀 더 후회하길 바랐는데.)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공공사업국의 이동 도서관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조조 모예스. 최고의 스크린셀러 작가답게 하나 하나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극적인 스토리가 영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한 편씩 에피소드로 엮은 시리즈도 좋을 것 같고 압축적으로 사서들의 연대를 담은 영화도 좋을 것 같다. 그때를 기다리며 혼자만의 가상 캐스팅을 해봐야겠다.
책이 주는 따스한 감동, 뻔하지 않은 로맨스, 가슴 벅찬 여성들의 연대. 모두가 담긴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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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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