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1. 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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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글쓴이
제임스 수즈먼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평균
별점9.5 (12)
ena

의 역사라고 했을 때, 과연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궁금했다. ‘역사라고까지 했으니,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은 아닐 것이다(그런데 그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은 우리가 재화를 얻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럼 그 역사를 어디서부터 얘기할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가장 궁금해해야 할 것은 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 지에 관한 것이란 걸 알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이 어릴 때 작은 녀석(아들)을 내 사무실에 데려갔다 왔더니 나중에 아빠는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해서 계속 컴퓨터로 놀더라는 것이었다. 아들 녀석의 눈에는 그리 보였겠다 싶었다. 그 녀석의 나이에 컴퓨터로 하는 것은 놀이이지 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잘 분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서핑하는 것은 일일까? 아닐까? 어딜 여행갈까 궁리하거나, 연예계 가십이나, 어제 프로야구 결과를 찾아보는 것은 명백히 일이 아니겠지만, 과학계의 이러저런 일들, 혹은 논문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는 것은 내겐 일이다. 그렇게 보면 앞에서 내가 일이 아니라고 한 것도 명백히 일인 사람도 있다. ‘은 일 아닌 것과 구분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제임스 수즈먼이 일의 역사를 통해서 내내 하는 얘기도 바로 그 일이 아닌 일사이의 구분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인류가 등장하기 전의 것은 건너뛰고라도 인류가 등장하고서는 모든 행위가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 일이 아닌 것이 없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다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일과 일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봐서 일이 아닌 것은 그들에게도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현대인이 일을 보는 관점과 수십 만 년 전, 수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일을 보는 관점을 비록 굉장히 다를지 모르지만, 또 본질적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수즈먼은 인간의 일, 즉 노동의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데, 그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몇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된 시점이다. 이 시점은 굉장히 중요한데 바로 인간이 생존을 위한 일 외의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다음은 농경이 탄생하는 시점과 연관된다. 다른 책이라면 농경!’이라고 못을 박아버리지만, 저자는 이 시점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시점에서 인류의 변화가 농경에 의한 것인지, 농경이 결과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점(12000년 전쯤)에 인류는 식량을 저장하고, 재배하는 방식을 시험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타인과 환경과의 관계를 재정립했으며, 즉각적인 요구 조건이 아니라 지연된 요구 조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미래의 결핍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도시의 형성이다. 도시의 형성은 당연히 분업으로 이어진다. 분업은 생존과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8000년 전쯤 생성된 도시에는 에너지를 획득하는 사람보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 사제 등으로 부른다. 드디어 불평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달라진 것이다. 마지막은 공장의 출현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는 에너지의 소스가 인류가 탄생하기도 훨씬 전에 지구적인 규모로 생성된 화석 연료로 바뀌었다. 화석 연료는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연료로, 우리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규모와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의 수와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고, 농업의 양상도 달라졌다.



 



이 정도가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일, 노동의 역사의 뼈대다. 여기에 저자가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따라가지만 단순한 인류 진화의 역사가 아니라, 그 역사에서 한 측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측면을 중심으로 바라보면서도 아주 포괄적인 진화사이다. 수렵채집인들의 여유로운 삶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으며, 현대에 들면서 오히려 일에 허덕거리는 상황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명 비판도 아니다. 어쩌면 일과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경로는, 물론 결정론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전체 맥락의 커다란 얘기도 매우 중요하고, 교훈적이며,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얘기들, 수렵채집부족의 얘기, 고고학자, 인류학자에 관한 이야기, 혹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과로사로 인정받은 일본 NHK 기자 사도 미와의 이야기 등은 이 책을 더욱 다채롭고 집중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린고고학자 비어 고든 차일드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끝내는 것은 사실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을 구별하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그리 축복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힌 거의 최초의 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주장이 새로운 증거에 의해 반박될까 항상 걱정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그 반대인 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일과 휴식의 구분이 매우 애매해진 시대에 살고 있고, 나 스스로도 점점 그렇다. 사람들은 쉴 권리를 주장하지만, 너무 일하는 시간을 적게 주면, 더 많이 일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대부분이 보기에 절대 이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나름 을 한다고(최소한 비슷한 걸 한다고, 어쩌면 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일에 관해서 참 생각할 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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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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