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리뷰

jean217
- 작성일
- 2023.2.23
제주에서 먹고 살려고 책방 하는데요
- 글쓴이
- 강수희 저
인디고(글담)
사람들은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면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회피하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계가 달린 직장인들에게 현실도피란 쉽지 않다. 며칠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오면 그래도 좋겠지만 그 마저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게 겨우 시간을 내서 떠난 여행지에서 아주 운좋겠고 뭔가 깨닫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에겐 천우신조가 된다.
무턱대고 외국에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찾는 곳이 아닌 어느 대학의 작은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어스름질 무렵 소슬하니 바람이 불더니 호숫가에 윤슬이 일렁거리며 눈 안으로 파고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난 왜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계속 버틴다고 좋아질 것도 없을텐데....하염없이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그 순간 고색창연한 학교 교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그 학교의 도서관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운집해 공부를 하는 모습이 불켜진 창을 통해 비춰졌다. 아... 더 배워야겠다. 6개월 후 신학기에 난 그 학교의 유학생이 되어 있었다.
우연히 찾은 제주, 그리고 바라본 노을 빛, 황홀경에 빠진 뒤 하던 일을 아주 잠깐만 내려놓고 제주도로 와 살게 된 방송작가인 저자. 그녀가 제주와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는 그녀의 성(姓)에서 유추해볼 수 있었고 짐작이 맞았다. 반제주인이라고 저자는 스스로를 정의했고 그렇게 육지 사람은 제주로 돌아와 책방은 운영하게 된다. 첫번째 집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에피소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싶게 씁쓸하게 마무리 되었고 소개로 구한 현재의 위치에 '아베끄'라는 불어로 지은 이름의 책방이 선을 보인다.
사실 책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아베크족'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내 기억으로는 다소 부정적인 늬앙스였는데 오해없도록 언질을 주고 있다. 커피대신 책방에 딸린 작은 방을 북스테이라고 해서 숙박장소로 제공하는데 사진에서 보니 무척이나 탐나는 공간이다. 누구라도 도시 생활에 지쳐 제주에 가면 며칠이라도 묵고 싶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지인들이 육지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왔다가 고무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느낌은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몇 년전 제주에 이주민도 늘고 먹고 살려고 카페도 우후죽순에 측히 독립서점들이 그렇게 많아 졌다고 한다. 제주는 한국인에게는 숨 쉴수 있는 허파같은 공간이다. 그런데 가서 할 일이라고는 눈뜨고 구경하고 입 벌리고 맛있는 거 먹고 손가락을 움직여 멋진 사진 찍는게 다 인데 과연 정지된 자세로 장시간이 소요되는 책읽기와 관련된 서점이 장사가 잘될까? 저자가 한동안 고심했다는 책은 안사고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와서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야속한 관광객이야기도 그 연장선에 있디. 그리고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안내의 글이 제주에서 먹고 살려는 책방 주인의 마음이 읽힌다.
제주에 뿌리를 두고 있고 어린 시절 제주에서 공부도 했다는 저자에게 제주는 얼만큼의 틈을 내어줄까? 만약 지금의 책방 공간도 여의치 못해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과연 저자는 모든 걸 정리하고 젊은 시절을 땀흘렸던 서울로 다시 돌아올까? 그럴 여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안그랬으면 좋겠다. 책 전편에 흐르는 정서는 부평초 같은 인생, 어디서 사는 지보다 어떻게 사는 지가 더 중요하지 않아요? 라고 묻는 것 같았다. 타인의 삶에 대추나라 감나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글쓰기 솜씨와 방송사 경력이라면 요즘 세상엔 어디에 있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저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제주... 아직 가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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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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