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에 쓴 리뷰들

또다른나
- 작성일
- 2023.2.26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글쓴이
- 박훈 저
21세기북스
'서가명강' 시리즈를 구매한 지도 꽤나 오래전에 지났고, 책꽂이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장식해두었건만,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출근길에 '책등'을 바라보며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상기시키곤 하지만, 늘 다른 책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 쟁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어찌 이 책뿐일까. 허나 요즘 오래 묵힌 책장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책정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뿐해진 마음으로 휘릭 읽어보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저자 박훈은 '일본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불편한 이웃이라하더라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며, '알아야'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고작 '일본따위'에게서 배울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생각에도 일침을 놓는다. "어느 나라 역사이건 간에 배울 것이 없는 역사는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왕 배울 요량이면 '철저히'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더없이 옳은 말이라서 다시금 '일본사'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허나 '일본사'가 좀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천 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옆에서 알짱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허를 찌르며 알멩이만 날름 빼가며 '받은 것 없이 주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얻는 것 없이 빼앗기기만' 한 것도 같아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우리보다 열악하다 못해 조악할 지경이라 솔직히 배울 것도 없고, 이후로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치욕스런 수모를 겪게 만들었기에 '일본사'는 배우다가 열폭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일본사'를 꼭 배워야 한다면, 저자는 '명치유신(메이지유신)'부터 공부하라고 귀띔해주었다. 확실히 일본이 급속도로 '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어 배울 맛이 나는 지점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 말에도 수긍해버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명치유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진왜란 이후 대략 360년간 실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던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왕(천황, 이하 '일왕')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이양(대정봉환)하면서 '근대 일본'으로 변환됨과 동시에 점점 조여오는 '서양의 침탈'과 극심한 '내부의 혼란'을 대외 팽창으로 극복해보려는 의욕과 야심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일대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는 '명치유신'을 4인방을 중심으로 해부하고자 했다. 바로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근대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의 '쇼인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스승이라는 작자가 가르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침략'이었으니,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이웃나라'를 침공한 원흉이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족할 판에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르쳤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쇼인의 사상'을 내세우며 일본의 단결을 주장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말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망언을 일삼곤 한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본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을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렇게 유명인사는 아니었으나 일본의 국민작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개혁인물이다. 료마는 근대일본의 핵심인물을 많이 배출한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이 아니라, 도사번 출신이다. 하지만 료마는 일찌감치 '번 탈주'를 시도해 '낭인' 신분으로 명치유신의 한복판에서 대활약을 했으니 '아싸'와 '인싸'를 오가는 대활극을 보여준 유명인이다. 하지만 쇼인과는 다르게 '대외무역'을 주장하면서도 '침략'에는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라 우리로서도 호의적인 인물로 봐도 무방하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도 일찍이 '료마'를 존경한다고 표방했고, 료마가 말했다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꼭 집어 예를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근대일본이 료마의 사상으로 나아갔다면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리가 주목하기에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보면 좋겠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곧잘 표현한다. 그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서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작 '일본의 전통'을 지키는 쪽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상반된 활약을 보여주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인물'로 중간이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테지만,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거침없이 시도했으면서도 끝내는 '사무라이'로 남아 죽음을 자초한 인물이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우호적인 듯 싶다가도 품속에서 칼을 꺼내들고, 속내를 알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도 난데없는 헛발질로 사람을 놀래키는 것이 '일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고 당췌 이해할 수도 없는 일본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꼭 연구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근대일본'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도중에 암살을 당하긴 하지만, 일본은 끝내 도시미치의 구상대로 '진격'을 한다. 그래서 친구였던 다카모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 완성을 시켜나갔다. 그의 모토는 '서양을 배워 강한 일본을 만들자'였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도시미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가 '정한론'에 반대한 점을 들어 보기에 좋은 느낌도 들지만, 그가 반대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아직 준비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막부의 잔당들이 일으킨 '사무라이 봉기'에 싹쓸이 작전을 펼치는 잔혹함 면을 확연히 드러냈지만, 이후 '대만 문제'에서처럼 신중한 모양새를 띤다. 허나 준비를 마치자 '청일전쟁'부터 1945년 패망 때까지 줄기차게 전쟁을 일삼는데, 이게 '도시미치의 계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근대일본의 방향키를 알 수 있는 '명치 유신지사들과 일왕의 속셈', 더 나아가 '일본국민들의 속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유명한 '4인방'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나갔지만, 일본국민들이 유독 '4인방'에 주목하는 까닭을 짐작해보면 얼추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웃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평화적인 해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분이 풀리고 일이 손쉽게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전쟁'과 '팽창'은 근대일본의 패망에서 보여지듯 망조만 가득한 해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은 인류의 공영과 평화의 선두주자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 점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쓰지 않고도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으니, 인류의 공영과 평화도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것인지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는 대한민국을 떠올리며 '일본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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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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