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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3.22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 글쓴이
- 이윤하 저
허블
_자동인형의 모습을 보자 제비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자동인형은 여기에 추가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 눈구멍만 뚫려 있을 뿐 코도 입도 없는,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목제 가면이다._p11
_보통 부역자는 그렇게까지 대놓고 활동하지 않지만, 학은 변신술을 쓰는 여우 요괴인 구미호 일족이었다. 화국인들은 구미호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구미호는 여행자를 유혹하여 간을 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니까._p24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 소설의 세계관은 언뜻 봐도 우리네 일제강점기와 무척 닮아있었다.
‘6년 전, 화국은 라잔 제국에 점령당해 14행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화국인인 주인공 제비는 화가로 예술성에 들어가기 위해 이름까지 라잔식으로 바꾸고 시험을 보게 된다. 강직한 성격의 언니의 반대가 심해서 결국 화구를 챙겨서 친구 학의 집에서 잠깐 머물게 된다.
합격이 되기를 기다렸으나, 떨어지고, 그림일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제비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방위성 고위관료에 의해 일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하판덴은 적국의 무기개발 등을 하고 있는 방위성일이라서 망설이던 그녀에게 언니의 수상한 활동을 볼모로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꼼짝없이 지하 작업장에서 방위성일을 하게 된 주인공은 자동인형기계, 그것도 용, 아라지의 숙제를 푸는데 전념하게 된다. 죽은 전임자가 남긴 용의 가면 마법 문양수수께끼를 알아가던 제비는 마침내 비밀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윤하 작가의 소설 ‘나인폭스 갬빗’을 처음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기분 좋은 놀람이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세계관과 주인공들의 성별, 그들의 문화, 끊임없는 상상력, 그리고 몰입감 때문이였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읽는 즐거움은 이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가 더 있었다. 매우 잘 짜여진 구성으로 읽는 이를 한번도 방심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골동품, 혹은 기운이 담긴 어떤 것도 안료-흐드러지는 봉황 같은-가 되어 마법진(문양)을 가면에 만들어서 적용하면 독특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은, 일본애니를 떠올리게도 하면서도 훨씬 오리엔탈 적인 신비스러움과 호기심을 더해주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빌어온듯한 시대상, 독립운동과 연관되는 듯한 설정들은 나도 모르게 하나하나 역사를 대입시켜보게 하고, 인물들에게 당시 사람들을 투영시키게 한다. 나라면? 하고..... 그러면서도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기계용과 같은 존재, 다른 문화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대화를 할수록 매력적인 기계용은 소설이 끝나도 계속 떠오르는 캐릭터다.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가볍지 않은 비유들에 여운이 길었으며,
다시한번, ‘이 작가 뭐지?’ 하는 감탄에 마침내 영어원서를 찾아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_눈앞에 기계 용이 있었다.
.... 쐐기꼴의 머리에는 색칠한 나무 가면을 쓰고, 둘둘 말린 전선이며 비쭉 튀어나온 가시 따위가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면의 눈구멍 뒤편에서는 봉황을 닮은 붉은빛이, 마치 불꽃처럼, 그 불길을 향한 갈망처럼 번득였다._p69
_하긴 베이가 항상 정중하게 그를 대하니 그럴 만도 했다. 정말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비는 그녀가 아침마다 공용 공간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붓놀림처럼 유연한 움직임, 완벽하게 균형 잡힌 늘씬한 몸매까지. 그 모습을 그려도 되겠냐고 물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_p97
_".... 전쟁 병기니까, 파괴력을 부여하려고 ‘흐드러지는 봉황’을 사용했죠.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주려고 ‘피의 원’을 사용했고요.“_p100
_그러나 이번에는 사소한 작업 하나하나에 스며든 의식의 성격이 그에게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문양이나 물감의 기묘한 마법을 발견한 사람이 신관이라는 사실도 이제 당연하게 느껴졌다. 화국인 기준으로 볼 때, 제비는 적당히 종교에 의지하는 편이었다._p137
_그러나 어쩌면, 독립운동가에 어울리는 부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씩 떼어놓고 살펴보면 제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_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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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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