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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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너희 세상에도
글쓴이
남유하 저
고블
평균
별점9.5 (56)
바다소년

이 도시에 화면이 없는 곳은 없다. 화면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고. 사람들은 화면을 사랑한다. 21세기의 화면은 신흥 종교나 다름없다. 우리는 독실한 신자처럼 매일 밤 자기 전 블루라이트의 은총을 받는다. 화면 공포증



 



가제본된 책을 받아들고 책이 너무 얇아 놀랐다. 책은 두꺼울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얇은 몸피를 입은 책에 조금 실망한 채 책을 읽었다.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다 읽었다. 그리고 며칠을 끙끙대다 어렵게 리뷰를 쓴다.



한마디로 놀라운 책이다. 어릴 적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한동안 검은 고양이만 보면 무서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유하 작가는 새로운 시대, 장르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다.



현대인은 빛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실제로 빛 공해는 인간 삶을 파괴하고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노란 불빛 아래 노트북의 블루라이트 빛을 마주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인공적인 빛은 나를 둘러싸고 있다.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는 그동안 원귀나 유령, 괴물에서 차츰 에이리언, 좀비 등으로 옮겨갔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인터넷 전파를 통한 알 수 없는 소음이나 환영이 실험적으로 등장하였다. 화면 공포증은 이보다 훨씬 더 신선하다.



 



화면 공포증(Screenphobia)



화면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증상. 고소공포증이나 거미 공포증처럼 공포의 일종이다.



 



정말 이런 공포증이 있는가 싶어 네버 검색을 해 보았다. 결과 화면공포증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작가의 글이 너무 실감 나서 정말 화면 공포증이 존재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성숙한 인간이라고 자위하며 화면 밖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져 있었다. 그래, 넌 주인공이야.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p.109 화면 공포증



 



상상도 못했다. 화면 공포증의 근간에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현대인의 심연이 있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가 사라지고 무리 속의 ○○로서 존재하는 우리의 쓸쓸함이 있었다.



절벽에서 집단투신하는 나그네쥐 레밍처럼 반짝이는 화면 속으로 돌진하는 수많은 인간 레밍은 와이파이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 속 고립된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직도 이들을 좀비라고 부르십니까? ACAS(Acquired Cardiac Arrest Syndrome).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은 질병입니다. 심폐기능은 정지되지만, 뇌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식욕만 남은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감염자들. 안타깝게도 아직 이들을 위한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 감염자들을 위한 국가 공인 안락사 기관 다이웰.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소중한 이에게 편안한 죽음을 선사합니다. 안락사는 다이웰. 주식회사 다이웰. 지금 바로 전화하세요. p.10 반짝이는 것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단편은 첫 이야기 반짝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감염자(좀비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을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비와는 차별점이 있다)가 된 주인공이 자신을 버린 아들과 며느리를 뒤로 하고 다이웰 주식회사에 찾아가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살을 시도한다. 이미 심정지가 된 몸이니 자살은 아닌데, 또 자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 한강 아래로 몸을 던진 주인공은 바위에 부딪혀 분리된 머리를 보며 죽었지만 뇌기능은 살아있는 자신의 처지를 보며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약간 놀란 얼굴로, 그의 앞에 서 있던 아내의 모습. 그는 제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놀랐고, 아내는 배시시 웃었다. 아내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머리카락 한 올과 약간 말려 올라간 흰색 블라우스 소매, 무릎을 덮는 길이의 남색 치마. 모든 것이 사진을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난다.



가장 반짝이는 것, 보석 같은 기억이 마지막 순간에 찾아와 준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p.32



 



비록 육신과 분리된 머리일지언정 가장 아름다운 날의 기억을 갖고 갈 수 있다면 지난한 삶의 마무리치고는 괜찮은 듯도 하다.



 



나에게 어울리는 화면을 통해 저 너머의 세상으로 넘어간 조 대리와 마지막 순간에 가장 아름다웠던 인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일규.



어쩌면 작가는 공포는 매순간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공포를 이겨낼 치료제 또한 우리 곁에 늘 존재해 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남유하 작가의 책은 무서웠다. 짧은 이야기를 통해 주위를 공기처럼 둘러싼 모든 것을 한순간에 공포의 귀물(鬼物)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공포와 기쁨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오랜만에 정말 괜찮은 단편소설을 만났다. 등골이 서늘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나의 가장 큰 기쁨의 시간을 반추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움도 있다. 112쪽이라는 너무 짧은 소설집이라서.



328일 정식 출간되는 책은 268쪽의 적당한 분량이다. 가제본이라고 책의 절반도 안 되게 보내준 출판사가 야속하다.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현대문명의 어두움을 좋아하는, 그러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완성된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이 부럽다.



 



오타 있습니다. p.47 에이의 숟가락



조용히 돌아선 에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의 침실로 쓰는 방에서는 은은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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