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야 놀자

스크류
- 작성일
- 2023.4.16
신의 기록
- 글쓴이
- 에드워드 돌닉 저
책과함께
책의 제목은 <신의 기록(The Writing of Gods)>. 하지만 내용은 표지 구석에 조그맣게 쓰인 "로제타석 해독에 도전한 천재들의 분투기"에 더 부합한다. 책의 주인공은 로제타석의 내용이 아니라 잊힌 고대 이집트 성체자 해석을 위해 삶을 불태운 두 천재, 토마스영과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다. 영이 타고난 천재성으로 성체자(그림 문자) 해석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샹폴리옹은 이집트 문화와 콥트어 지식, 그리고 불굴의 성실함으로 성체자 해석을 완성시켰다. 두 학자는 동시대를 살면서 경쟁하고 질투했지만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미쳤고, 같은 꿈을 향해 질주했다.
이집트 성체자는 동물과 식물,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찬 일종의 상형문자이다. 로제타석이 발견되기 전까지 누구도 그 뜻을 알 수 없었고, 당연히 발음할 수도 없었다. 성체자는 2천 년 이상 죽은 문자였다. 로제타석에 성체자, 속체자(성체자의 간체자), 그리스문자가 함께 기록돼 있었기에 많은 학자들이 해석에 달려들었고 결국 고대 이집트의 면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언어 해석에서도 그랬듯이 성체자 해석의 시작은 왕의 이름이었다. 샹폴리옹은 타원형 카르투슈 속의 문자가 프톨레마이오스, 클레오파트라, 람세스, 토트메스의 표기임을 밝혀냈고, 여기서 P, T, MS, S 등을 찾아냈다. 더 나아가 성체자가 의미뿐만 아니라 발음까지 표시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과거에는 성체자 자체가 시각적으로 너무 강렬해서 발음으로 연결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샹폴리옹은 마침내 성체자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예를 들어 태양과 오리가 그려진 성체자는 "태양의 아들"을 뜻한다. 여기서 오리는 아들과 발음이 같다. 고대 이집트 필기공들은 "아들"을 "오리"로 그린 게 아니라 "오리"의 발음만 가져다 썼다. 성체자는 그림이면서 부호이고, 발음 표기였다. 샹폴리옹에게 콥트어(콥트어 자체도 이미 죽어가는 언어이다.) 지식이 없었다면 성체자 해석은 정말 요원한 일이었다.
성체자는 매우 어렵다. 많은 그림문자를 알아야 했고, 그 문자가 의미로 쓰인 것인지, 발음으로 쓰인 것인지 알아야 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결정자도 가려 읽어야 했다. 보기에 아름답지만 복잡하고 난해한 이 문자는 전문화된 특정 직업군이 아니면 배울 수도 없었다. 성체자는 결국 고대 이집트의 지배층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다. 그 탓에 고대 이집트의 통치체제가 무너졌을 때 고대 이집트의 언어와 문자도 동시에 무너져버렸다. 나폴레옹의 (실속 없었던) 이집트 원정, 영의 천재성, 샹폴리옹의 성실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집트 곳곳의 신전, 석상, 스핑크스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모른 체 지나치고 있을 것이다.
작가 에드워드 돌닉은 과학 전문기자이다. 이 책 한 권을 위해 수많은 자료와 저작과 학자들을 만났다. 저자가 전해주는 정보의 양과 수준도 놀랍지만 문장 곳곳에 넘치는 위트와 유머는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학자와 기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이렇게 다르다. 옮긴이 이재황은 자칫 재번역(성체자-영어-한글)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책을 멋지게 재탄생시켰다. 그는 아마 예시문의 상당수를 다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신의 기록>은 호기심 넘치는 주제와, 위트 넘치는 서술, 물 흐르는 듯한 번역이 좋은 책의 출발임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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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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