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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079
- 작성일
- 2023.5.8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 글쓴이
- 전범선 저
한겨레출판
붉은색, 초록색 바탕에 조금 비뚤게 써 내려간 글자를 담은 책 표지를 보고 자유롭고 감각적이라고 느꼈어요. 책을 펼치자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글씨체가 빽빽하게 들어선 느낌에 조금 흠칫했지만,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갈수록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작년쯤이었나 MKTV 북드라마에서 저자를 처음 본 후 궁금해졌어요. 저자는 민족사관고등학교 졸업, 미국 디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 전공. 이후 밴드 '양반들' 보컬,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발행인 등으로 현재 해방촌에 살며 예술가, 사업가,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엘리트 코스를 거쳐 기득권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탔다가, 삶의 어느 부분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자신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며 결국 삶의 방향을 바꿔버린 느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젊은 청년이 참 멋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계기로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서른 즈음에 성균관과 해방촌에 터를 잡았다. 10년 뒤, 불혹이 되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글을 쓰고 있을지, 노래하고 있을지, 사업을 하고 있을지, 운동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상관없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독립적이고 자유롭다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계속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해치운다. 휘뚜루마뚜루 마냥 걷고 있다." (P. 12~13)
저자는 자유롭고 싶어서 글을 쓰고 노래한다고 해요. 저자에게 자유란 부사라고 해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에 저자는 '휘뚜루마뚜루' 꿈꾸고 있다고요.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18세기 혁명가 토머스 페인의 글을 모두 읽고, 1년 가까이 매일 그와 대화했고 그의 유언을 들으며 눈물 흘리기까지 했지만 아직도 페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저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해요.
"그러나 그 답 없는 인문학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다름을 쫓는 학문이 있어야 삶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답 나오는' 사람보다는 '노답'인 사람, 예측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벌린은 '인간이라는 삐뚤어진 나무에서 꼿꼿한 것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칸트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삐뚤어진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꼿꼿한 것을 만들려면 모난 곳을 깎아내야 한다. 나는 그게 싫다. 자유롭고 싶다. 삐뚤어질 테다. 나를 위한 변명이자 인문학을 위한 변명이다." (P. 109)
지금 한국의 문화예술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재생을 고민해야 한다고 해요. 상실되거나 손상된 부분, 끊어진 맥락을 재발굴하고 재조명해서 다시 자라나게 만들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자는 문화기획사 (주)두루미를 통해 재생사업에 주력해요. 지난 세기 검열되고 잊혀졌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문고판으로 엮고,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인수했어요. 35년이라는 세월을 가진 책방이 사라질 위기에서 저자로 인해 다시 맥을 이어가게 된거죠.
"이제 그만 좀 생산하고, 그만 좀 짓고, 그만 좀 소비하고, 그만 좀 부수자. 그냥 맥이 좀 흐르게 내버려두어야 맥락이 생기고, 문화예술이 다채로워진다. 맥을 잇자!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도 철저히 재생적인 문화가 지속가능한 창조의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P. 148)
2012년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다는 저자. 친구에게 그 책을 선물했고, 5년 뒤 그 친구는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단체를 설립했어요. 동물해방물결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비건이 되어라!"라고 해요. 비건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 동물을 착취, 학대, 살상하는 모든 제품을 불매한다는 것이래요.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을 인용해 채식은 생존의 문제이고, 기후 위기에 맞서 인간 종을 보전하기 위한 투쟁 방식이라고 이야기해요.
"희망을 품어본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 삶이 크게 바뀌었다. 기후재난도 각성만 하면 바뀔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혁명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비행기를 멈추고, 석유 차를 없애고, 채식을 해야 한다. 코로나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기성세대가 결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년과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 당사자인 우리가 엄마, 아빠, 이모, 삼촌들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 10년간의 싸움이 이후 100년, 어쩌면 1000년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P. 193)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사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유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 투쟁했고 아직 불완전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존재들의 자유는 어떨까요. '자유'라는 단어에 인간만 연결해서 생각했어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 또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을 텐데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어요. 나름 푸른 지구를 꿈꾸고, 동물의 처우에 관심이 있다고 여겼는데 아주 얕게만 핥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동물원, 수족관의 동물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나 이런 생각을 하고... 축산업이 탄소배출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기는 먹어줘야 기운이 난다면서 때가 되면 한 번씩 고기를 찾고 있어요. 달걀은 워낙 좋아해서 집에 항상 있고... 동물 처우를 개선한 고기, 달걀 등을 먹으면서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네요.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어떤 것이 지구를 위하는지 알긴 하겠는데 채식을 할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여러 생각이 충돌하는 것 같아 아직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지만, 젊은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줄이기라도 해야겠어요.
제 인생이라는 길은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삶의 중간중간 충분한 성찰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급하게 가려다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떤 것이 제 삶에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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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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