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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상
- 작성일
- 2023.5.18
이끼숲
- 글쓴이
- 천선란 저
자이언트북스
전체적인 감상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감정 기복이 심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한번은 같이 초조하고 아련해졌다가 한번은 혼자 화났고, 또 한번은 행복하게 슬펐다. 대개 살면서 느껴본 감정을 느꼈지만, 그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복합적인 무언가였기에 자꾸 모순된 말을 뱉게 됐다. 그래서 좋았다. 해당 소설로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사유할 수 있게 기회를 얻게 된 거라 생각했으니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얻기 어려운 자극과 기회라고 생각한 탓이다.
<이끼숲>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다양한 형태로, 아무 때나. 그래서 이 활동을 할 때도, 저 활동을 할 때도 번뜩 떠올라 감정을 툭, 건드린다. 때로는 등장인물이, 때로는 대사가, 때로는 공간이.
그러니까 마지막 에피소드 ‘이끼숲’에서 소마와 유오가 바라던 건 이뤄진 셈이다. 소설 <이끼숲>의 모든 에피소드가 내게 가장 화려하게 남아있음과 동시에 이끼처럼 끈질기게 남아있으니까.
1부, 바다눈.
마지막 4~5장이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는 에피소드였다.
가장 여운이 짙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가장 슬픈 반전을 지닌 에피소드라고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마르코와 은희를 둘러싼 삭막하고 싸늘한 사건, 그러면서도 풋풋하게 은희를 짝사랑하는 마르코의 감정이 대비되어 더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공장 파업을 감각하는 것도 새로웠는데, 그래서 더욱 슬픈 감정이 가중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매번 진심인 마르코가 어떻게 현실을 깨닫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말을 맞는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어서 더 마음이 아렸던 것 같고, 감정이 요동쳤던 것 같으며 결말에 괜히 나 또한 상처받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결말에는 마르코가 정말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그게 어떤 형태든 말미에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말이다.
2부, 우주늪.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난 에피소드였다. 등장 인물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환경에 많이 분노했다. 철들 나이가 아닌데 철이 들어버린 아이가 등장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의주와 의조의 에피소드로, 의조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이 에피소드는 줄곧 날이 선 말투와 공격적인 어조를 사용하는데,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의조의 어린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유난히 정이 많아 의주에게 조언하고 첨언하는 모습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부모를 용서하는 것. 그러면서도 의주를 시기하고 질투해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화법을 사용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의조의 어린 모습을 보여주고, 그가 지닌 애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전부 읽고 나서 조금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의조를 연민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의조가 그런 걸 원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장 내가 ‘의조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돌아보게 됐다.
따라서 여러모로 나에게도 분노하고 의조를 둘러싼 환경에도 분노하여 다시금 성찰하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더불어 화가 나면, ‘어디까지 말하나 보자.’와 같은 묘한 고집이 생겨서 그런 걸까. 내게 있어서 우주늪은 3개 에피소드 중, 가장 가독성이 좋은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정말 늪처럼 빠진 줄도 모르게 빠르게 빠져들었다.
3부, 이끼숲.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에피소드였다. 흔히 말하는 ‘과몰입’을 멈출 수 없었다.
1부와 2부에 나온 등장 인물이 전부 나오고,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거쳤기에 변화한 모습을 이번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더 슬펐다. 인물이 한 명, 한 명 등장하고 퇴장할 때마다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해당 에피소드는 스핀오프 같은 느낌도 들어서 매우 재밌게 읽었다. 분량이 상당한 편인데도 계속 읽게 됐다. 대중교통 탈 때 책 읽으면 멀미하는 편인데도 꼭 잡고 읽었다. 소마와 유오의 결말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정보값이 제일 없는 인물인데도 제일 궁금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랬다. 정이 많이 갔다.
결말을 보고 나서는 정말로 멈췄다. 마지막 페이지를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그랬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도 있고 내가 정말 멋대로 해석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있고. 두 가지 결말이 스쳐 지나갔는데, 솔직히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랐던 비극적인 결말이 소설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해당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마지막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적어두고 여러 해석을 내어보는 활동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추천하고 싶은 사람
일단 천선란 작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무조건 추천한다. 그리고 천선란 작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어도 추천한다. 웹툰 <청춘 블라썸>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추천한다.
흔히 “여름이었다.”라고 하는 감성을 여러 방면으로 분석하면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감각적인 소설이라서 전부 읽고 나면 나도 감성에 촉촉이 젖는 느낌이었다. 본인이 너무 감정이 메마르고 삭막해졌다면, 또 추천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추천한다! 보다는 여유롭다면 무조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꼭 감정을 섬세하게 건드리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상황에 따라 여러 방면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현재는 그게 누구이든 위로를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본인이 본인에게 위로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작가의 말에도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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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