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3.5.23
[eBook] 법의 이유
- 글쓴이
- 홍성수 저
arte
법의 이유
홍성수
아르테/2019.11.15.
현대인들은 바쁜 생활에 쫓기느라 자기일과 관계없는 것을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쉽게 법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법은 왜 있어야 하며,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와 그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법의 이유>의 저자 홍성수는 2008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09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에 재직하면서 법철학, 법사회학, 영화를 통한 법의 이해, 법학개론, 입법론, 법 고전 입문 등의 과목을 강의 했다. 저서로 <말이 칼이 될 때>가 있으며 공저 및 공역도서가 다수 있다.
<법의 이유>는 <영화를 통한 법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 강의안과 녹취록을 기반으로 집필된 것이라고 한다. “법이 제정되고 운영되는 ‘근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영화를 통해 법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방식입니다.(p.10)”라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영화를 통한 법의 이해>가 법을 더 깊이 알아야겠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추후에 여러 실정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부할 때 훌륭한 기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법 입문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국민참여재판, 법률가 집단, 형사절차, 형벌, 사형제도, 역사부정죄 등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민사소송, 계약법, 볍 규제의 딜레마, 노동법, 장애인의 권리와 법, 편견과 혐오표현 등에 대한 설명과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영화 속 사례를 통해 법을 실생활과 연관지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은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검찰의 재량이고 검찰의 힘입니다. 검찰의 판단과 무관하게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면, 검찰이 각각 사건의 상황을 봐줄 수가 없습니다. 재량이 없으니 힘도 없습니다. 검찰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소할 수 있다면 검찰의 독점적 권한은 분산되겠죠. 검찰의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p.30)” 이러한 검찰의 기소 재량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가 재정신청제도다. 재정신청이란 어떤 사건을 검사가 불기소 처분했을 때, 이에 불복하여 불기소처분의 옳고 그름을 법원에서 판단해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일부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이 안 되고 있어 요즘 검찰개혁이 여론과 정치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한다.
“‘2015 국민의식조사’에서는 각 기관별 신뢰도를 조사했는데요, ‘불신한다’고 응답한 비중이 국회 79.5퍼센트, 사법부 55.4퍼센트, 정부 51.9퍼센트, 대통령이 48.9퍼센트로 나왔습니다. 가장 부조리가 심한 공공기관을 묻는 항목에서도 사법부는 14.2퍼센트로 정당, 기업, 국영기업체, 언론에 이어 5위를 차지했습니다. ‘2018년 여론조사’에서는 사법부 판결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27.6퍼센트, 불신한다는 의견이 63.9퍼센트가 나왔습니다.(p.43)” 이와 같이 국민들은 국회와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형사소송법상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 판단에 의하는데, 이걸 자유심증주의 라고 한다. 필요한 증거를 채택하거나 실질적 가치를 평가하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법관의 자유 심증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심증이 형성되었는지를 얼마나 자세하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칙은 없다. 그러다 보니 설명 부족으로 사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된다. 국민들은 사법부를 권위적이라고 생각하며 임의에 의한 판단으로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된다고 생각하여 불신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생각을 따르는 것을 뜻하는데, 대중추수주의 또는 인기영합주의라고도 하죠. 부정적으로 보면, 대중의 즉자적인 감정과 단기적인 이익을 이용해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민중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p.110)”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 이러한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좌우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맹비난하며 집회를 계속하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 뒤에서 선동하기도 하며 진실을 호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표와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저급한 행태로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역사 부정죄가 모든 역사적 진실에 대한 부정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홀로코스트나 집단 학살 등 특정한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만을 특별히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 진실이 갖는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 특수성은 바로 ‘현재성’입니다.(p.149)” 역사 부정 발언이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며, 차별을 조장한다면 단순히 과거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일부 역사의식이 잘못된 학자와 정치인들은 국민의 민의나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줄기차게 하여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국민의 정서에 반하여 분통을 터트리게 한다. 그런데 그것이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마땅하지 못하다는 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의 판결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샤일록의 계약 자체가 ‘살해’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면 계약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p.199)” 그렇다면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할 것도 없었고, 피를 흘리지 않고 정확히 1파운드만 베라는 이상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재판을 시작할 때 바로 계약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야 한다는 것도 궤변입니다.” 모든 계약에는 부수되는 것이 있다. 굳이 계약서에 적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따르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살을 베는 계약이 유효하다면,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라고 봐야 맞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최근에는 대리운전이나 배달 대행 어플리케이션 등의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는 개별적으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받기도 어렵지만, 집단적으로 노조를 결성하여 권리 투쟁에 나설 여지도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전통적인 노동법에 의해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p.242)” 이러한 새로운 노동형태에 조응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선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차기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된 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극히 희박하다. 그렇기에 국회의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집단의 범죄율이 높다고 해도 그 사실을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편견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집단의 범죄율이 높은 것은 대개 그 집단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p.265)”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되고, 좋지 않은 사회적 환경에 노출되고, 그러다보면 범죄로 내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인데, 그러한 이유와 배경을 다 제쳐두고 범죄율이 높다는 결과만 얘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동포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조장할 염려가 되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제기한 내용이다. 또한 범죄는 처벌로 줄어들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범죄를 낳은 원인을 해소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러 가지 연구 결과를 들어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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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