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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글쓴이
정아은 저
사이드웨이
평균
별점8.9 (26)
pimang08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에게 한국의 현대사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느껴졌다. 흔적은 눈에 보이는데 그 실체는 나의 손으로 잡을 래야 영 잡히지 않았다. 유년 시절 학교나 집에서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대해 배우기는 커녕 언급하는 것도 터부시 되는 분위기였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야 찾아 읽었던 책에서 발견한 한국의 현대사는 너무나 아프고 부조리한 시절이었다. 현재의 나를 둘러싼 환경을 조형해낸 바로 직전의 과거를 이해하려면 훨씬 밀도 높은 상상과 추론이 필요했지만, 주변인들은 입을 다물었고 읽은 책의 내용은 내가 겪은 것과는 사뭇 달라서 그 간극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더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의 정치와 문화는 깊은 이해를 허용할 만큼 풍부하고 포용적이지 않았다고 나는 늘 느꼈다. 억울한 이들과 부당한 기득권을 누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옳고 그름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 알 수 있었지만, 실제 일어난 일과 그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더 큰 그림과 담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늘 있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부의 통치 시절에 대해 그 시절의 잘한 일도 모두 악덕한 것으로 매도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비치시곤 했다. 50년대 초에 태어나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 그 분들은 삼시세끼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게 된 현재까지 거쳐온 그 고단한 여정을 그 분들만의 경험과 방식으로 판단하고 설명하시곤 했다. 대학 시절 내 방에 놓여있던 책의 제목들을 어렴풋 스쳐 가셨을 두 분들은 나에게 몹시 조심하셨다. 나는 믿는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현대사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신 수많은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결실이라는 점을. 슬픈 것은 같은 과거를 두고 상이한 의견의 차이를 가진 이들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보와 소식이 현재처럼 빠르지 않았던 시대의 한계이자 아픔이었고, 불신이 쌓이고 쌓이면서 만들어낸 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영의 갈등으로 세대의 갈등으로 화해할 길을 찾지 못한 채 헌재에도 방황하고 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딜레마였다. 엄마가 되고 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보다 지혜롭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돕고 싶었지만 늘 어려운 일이었다.



 



정아은 작가의 책을 읽고, 나는 아이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일이 실은 내가 설명하고 싶었던상황과 느낌을 묘사할 ‘도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한국전쟁 이후의 남한은 북한이 언제든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코 앞의 생의 위협으로부터 가족과 삶을 지켜야 했다. 가난 또한 매일매일을 도전하게 하는 날카롭고 생생한 생의 위협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안고서야 희망을 걸 만한 곳이 없던 시절, 다수가 마음 속으로 추앙하는 국가의 지도자는 성실하고, 똑똑하고, 거칠 것 없이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야심 많은 리더가 아니었을까. 생존에 대한 갈급한 그 마음이 여러 번의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발전을 가능케했던 우리의 정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간극을 파고든 천운의 사람이 전두환이 아니었을까. 그 시절, 물가 안정이 경제의 핵심 주제임을 꿰뚫어보던 김재익과 같은 인재를 알아봤던 이해력과 능력을 가진 리더였던 것도 전두환이었고, 다수의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고문하고 죽였던 놀라운 사이코 패스도 전두환이었다. 정아은 작가는 그와 그 주변, 국가 정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차분하게 되짚어본다. 오래 다듬어 충분히 둥글어진 도구를 사용한 것처럼 이곳저곳을 두루 둘러 짚는다. 그런 그녀의 궤적이 진정성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현재의 한국을 사는 나와 주변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내 아이들에게 한국 현대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지 단서를 얻었던 것처럼, 가슴으로 이해하는 전두환과 한국 현대사를 경험해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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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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