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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사랑
- 작성일
- 2010.1.3
고스트 라디오
- 글쓴이
- 레오폴도 가우트 저
문학동네
형체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소멸되었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 듣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황당하긴 하지만 <고스트 라디오>의 DJ 호아킨이 직접 겪은 일이다. 호아킨은 청취자들에게 도시괴담을 듣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오가며 혼돈을 겪는데 과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기억이 있어 '죽음'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낀다.
호아킨의 눈 앞에 자주 나타나는 유령들, 친구 가브리엘조차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실 호아킨의 망상 내지는 가브리엘이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호아킨이 유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에게 일어난 일은 전혀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기이한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다. 하지만 호아킨이 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오고 가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나는 마지막 책장에 이르러서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일까.
도시괴담에 대해 한 두가지 이야기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를 뚝뚝 흘리며 머리를 푼 귀신들보다 덜 무섭긴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무심코 라디오를 켰을 때 <고스트 라디오>를 듣게 된다면 호아킨처럼 유령과 직접 마주 대하게 될지도 모르고 내가 보고, 느끼고, 겪고 있는 이 현실이 단지 꿈의 한 부분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삶 자체가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호아킨은 사고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계로 통하는 문을 건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과감하게 라디오 주파수를 <고스트 라디오>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공포심을 느끼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호아킨이 진행하는 <고스트 라디오>를 듣고 있을 수 있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듣고 싶은 유혹을 견딜 자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고스트 라디오>의 중심에는 호아킨이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모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와트, 알론드라, 가브리엘에 대한 기억조차 호아킨에게는 그의 곁에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이들의 관계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이 속한 공간이 사라질까 두렵다. 하지만 명확하게 파고 들어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직접 겪은 일임을 확인해야만 했던 호아킨에게 이제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 가브리엘과 호아킨이 함께 꾸었던 꿈마저 그에게는 먼 과거의 일이고, 실제 있었던 일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호아킨에겐 이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장면들이 현실이 아니라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사라지길 바라는 수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꿈이기를,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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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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