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리뷰

후아유
- 작성일
- 2023.7.12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글쓴이
- 줄리 필립스 저
돌고래
책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는 전기 작가이자 비평가인 줄리 필립스가 10년간의 자료 조사와 정리, 집필을 거쳐 출간한 책으로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한 천재'의 호사를 누릴 수 없었던 여섯 명의 여성작가들의 창작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사랑스러운 방해자는 바로 그들의 아이를 말한다.
독자들이 상상하는 예술가 내지 작가는 어떤 모습일까? 프루스트는 모든 틈을 막은 방에 처박혀 글을 썼고 예이츠는 자기만의 탑에서 내려오다가 본인의 두 자녀와 마주치고는 '얘들은 누구지?"라고 말했다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음식 냄새의 미묘한 변화마저 사고를 방해할까 봐 수 주 동안 같은 샌드위치만 먹었다 한다. 한국의 어떤 남성 소설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집을 떠나 호텔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모든 사례를 거칠게 엮어 공통된 이미지를 뽑아낸다면 모두 가정생활과 집안 일과 양육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방으로 들어간 이미지이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사소한 허드렛일에 몰두해야 하는 여성의 단절적 삶"을 살아내는 와중에 "생각의 기류에 올라타 속도를 올리며 날아갈 자유"를 헛되이 갈망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작가는 스스로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주 어렵게 아이들을 떼어내기에 성공했을지라도 아이들은 문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나오미 미치슨은 런던의 한 공원에서 유아차에 판을 깔고 그 위로 겨우 글을 써내려 갔던 나오미 미치슨, 가스레인지 앞에서 저녁밥을 먹으며 주방에서 플롯을 구상한 셜리 잭슨, 차가 정자할 때마다 무언가라도 끄적이고자 수첩을 쥔 채 출근길 운전을 한 토니 모리슨. 이 모습들이 아이를 키우는 작가의 모습이다. 고독이라는 환희를 누리며 한 점의 구름처럼 떠돌며 글을 쓸 호사 따위는 없다.
저자 줄리 필립스는 전기의 형식으로 양육에 대해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담아내고자 한 것들이 이러한 생생한 경험적 특징이었다 한다. 양육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삶의 전체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프로이트는 여자가 엄마가 되면 그녀의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책의 저자 줄리 필립스는 고립된 작가에 대항하는 이미지를 내세우려면 방해는 물론 변화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섯 명의 여성작가는 앨리스 닐(1900-1984), 도리스 레싱(1919-2013), 어슐러 르 귄(1929-2018), 오드리 로드(1934-1992), 앨리스 워커(1944~), 앤절라 카터(1940-1992)이다. 이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마가 됐는데, 배우자 유무, 자산, 양욱에 있어 주변의 도움 등은 제각기 상이했다. 공통된 패턴이나 하나의 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들 모두 20세기를 살아간 엄마들로 모성 플롯을 통해 해석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모성 플롯이란 전통적 결혼환계와 출산이 곧 여성의 성취이자 삶의 목표이고 경제적 생존 수단이자 정서적 지지에 대한 보장을 말한다. 여성들 중에 모성 플롯이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살지 않은 경우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지 예민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날카로운 지성을 가졌던 에이드리언 리치도 본인의 책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에서 가족 중심의 1950년대를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내가 무얼 선택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모성 플롯은 창조적 자아를 위해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내가 낳은 아기들은 엄마 자아 전체를 요구하고 아이를 출산하기 전 겪어 보지 못한 생경한 자아에 상당 수준의 자기희생을 수반하여 요구한다.
여섯 여성 작가들 모두 모성 플롯을 따르는 데서 시작해 모성 플롯과 결렬이 시름했고 모두가 모성 플롯에서 벗어났다. 어울리지 않게 일과 양육을 겸하면서 그들은 배우고 싸우고 고통받고 성장했다. 20세기 여성 창작자들은 자신의 자녀, 남편, 애인들에게마저 이타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고 여기에 맞서 싸워야 했다. 남성 작가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오로지 창작에만 매달려 칭찬과 인정을 성취할 때 여성 작가들은 이타적이지 못한 '창조' 활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전통적 결혼 관계 안에서 양육은 이들 여성을 정서적으로 갉아먹었고 창작에 필수적인 독립심을 빼앗겼다.
부모가 되는 일은 자기 상실과 자기발견을 거듭 넘나들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고 부모가 되는 일에서는 자신의 은밀한 광기, 파괴된 모습, 격분과 생생하게 대면하여야 한다. 모성이란 하나의 정체성이었고 모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성인기에 발생하는 가장 심대한 정체성의 변화이다. 부모가 된 여성은 아이와의 관계 스스로와의 관계를 계속하여 재정의하며 맺어가야 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이 여섯 여성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창작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고 두 번째는 바로 자기(Self)이다. 여성 작가들은 자신이 예술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는 확신과 자기 둘레의 경계선을 만들어야 했다. 여성 작가들에게 창작활동은 "작은 이기심"의 연속이었다. 가족을 앞에 두고 문을 닫는 이기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실 세계를 잊는 이기심, 무표정한 익명의 연인인 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기심, 단순히 할 말은 하는 데서 솟는 이기심.
옮긴이 박선영은 책 말미에서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 시대의 양육은 르 귄 때와 달라 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그 과업이 종료되지 않고 엄마의 시간은 끝없이 지체되는 시간이라 말한다. 돌이킬 수 없는 모성의 함정에 발이 꽁꽁 묶여 있다면 울지 말고 더 오래 살면 된다고 말이다. 앤절라 카터가 연애와 결혼과 학업과 직업적 성공과 불륜과 이혼과 출산이라는 삶의 시퀀스를 완전히 새롭게 조립해 자기만의 버전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시퀀스를 다시 짜고 다르게 배열된 생애 주기를 살면 된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여, 오래 살지어다."라고 위로한다. 나는 이 대목을 우리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읽어 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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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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