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과 생각

여보게
- 작성일
- 2023.7.13
나, 나, 마들렌
- 글쓴이
- 박서련 저
한겨레출판
알록달록한 책이다. 흔하지 않으면서 평범한데 독특하다. 각 소설마다 전부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 나, 마들렌
나는 어느 날 몸이 둘로 나눠진다. 원인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일단 같이 살고 있는 마들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번갈아 가며 모텔 생활을 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인 '나, 나, 마들렌'의 내용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지 느낄 수 있다. 이 얼마나 현실성 없고 말도 안 되는 데 일상적인 내용인가? 몸이 갈라져서 둘이 되는 건 판타지인데, 그 안에서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너무나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상황이다.
만약 소설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그것을 희롱이라 받아들였을까? 소설가가 만진 게 마들렌이 아니라 나였어도 나는 마들렌의 감자 친구가 되려고 했을까?
불경한 생각은 삽시간에 온 정신을 살라 먹었다. 미친 듯이 가슴이 뛰었다.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이 소설가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만 같았다.
나, 나, 마들렌 中 213P
그리고 성희롱에 대한 '나'의 생각도 우리의 속 깊은 곳에 있는 어쩌면 불편한 마음을 대변한다. 성희롱으로 재판받는 소설가와 그의 행위에 대한 증언을 하는 마들렌. 마들렌에게 그의 행위는 너무도 불쾌하고 싫었을 수 있으나, 외부에서 그걸 겪어본 적 없는 이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소설가를 많이도 동경했던 '나'는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생긴다. 사람이니 얼마든지 그럼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외부의 생각들이 또한 피해 당사자에게는 상처와 고통이 될 수 있고 결국 성범죄 관련 재판의 판결에 영향을 끼치게 돼버리기도 한다.
마들렌을 좋아하면서도 소설가에게 마음이 쓰이는 이 모순된 감정을 몸이 버티지 못했는지 나는 둘로 나뉜다. 하지만 그렇게 양극단에 있는 감정을 누구나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방황할 것이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죽여야만 한다.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분명 어마어마한 죽음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도저히 고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선택지조차도 결국은 골라야 하는 우리의 인생은 나를 죽이는 것과 같은 고통을 동반한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이 탄생한 걸까?
읽고 나면 각 소설의 인물들이 어떤 마음일지 곱씹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결론이었으면 좋겠다든지 나만의 추측을 하게 되지만 그들의 정확한 마음을 알 순 없다. 아마 그들은 그들이 사는 방식대로 계속해서 삶을 이어 나갈 것이고 나는 또 나만의 엔딩을 상상하며 소설 속 세상은 다양한 방향으로 팽창할 것이다. 이 소설집이 그 어떤 자기계발서 보다도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각 인물들이 생생히도 살아 있어서 책을 덮으면 아쉬웠다. 정말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라 흥미진진했고 몰입도도 높았다. 김서련 작가가 들려주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보고 싶다.
곧 인간성이 만료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끝내 가야했던 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뭘 하고 싶었을까. 누구를 만나려는 거였을까.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中 36P
그 애가 그렇게 예쁜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둘 중 무엇도 내가 품어 마땅한 기분은 아니라 느끼면서도.
'젤로의 변성기' 中 79P
드바가 새 장서를 비치했다는 연락을 해올 때마다 나는 언젠가, 머지 않은 미래에 학교에서 대동한 인력이 생활 도서관에 들이닥쳐 그 책들을 마구잡이로 꺼내 집어 던지지 않을까를 상상했다. 던질 책이 많을 수록 더 많이 상처받겠지만 더 오래 버틸 수도 있겠지.
'세네갈식 부고' 中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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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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