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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난
- 작성일
- 2023.9.8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총 세 개의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는 색실 짚신을 그린 그림 한 장으로 모든 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사위와 등에>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혼인을 위해서 집을 떠났던 누나가 등에에 씌여서 돌아왔고 안타까워 하던 동생이 등에가 든 물을 마셔버림으로 누이를 구해낸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았다라고 하면 좋겠으나 동생은 등에에게 잡혀서 신들이 노름을 하는 공간으로 이동되어 버렸다. 즉 현세에서 지워진 존재가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이 잘 녹아 있으면서 주사위가 말을 하고 종이인형이 일을 하는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기묘한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질냄비 그림 한장으로 모든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루터지기인 오빠와 그를 돕는 동생. 어느 밤인가 동생은 오빠가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집에는 오빠와 동생 둘 뿐인데 오빠는 누구와 이야기를 한 것일까. 우렁 각시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질냄비 각시>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는 도미지로도 고민했듯이 한 장의 그림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막막 펼쳐지는지라 어느 한 장면을 딱 지정해서 그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도 그림첩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겠지. 넘겨 가며 상상하는 재미는 그 그림들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이미 밝히고 있듯이 에도 시대 좀비 이야기다. 이제와서 좀비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유행이 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야기 상으로는 충분한 재미를 준다. 얼음 속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 누구인지를 밝히려고 건졌을 뿐인데 시체가 살아났다. 발악을 하다 사람을 물었다. 대체 죽었으나 죽지 않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자' 이 자는 누구일까. 한 마을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좀비 아니 '인간이 아닌 자'들의 대활약과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작품.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버리는 역할을 하는 도미지로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자신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면서 전에 이 방을 지켰던 오치카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흑백의 방은 당분간 문을 닫는다. 편집자 후기에 따르면 이 부분을 오해한 독자들이 이 미시야마 시리즈가 끝나는 것이 아니냐고 문의가 빗발쳤다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나도 이 99개의 이야기를 다 읽기 전에는 못 죽을 것 같고 작가님도 다 쓰기 전에는 못 죽을 것 같고 출판사도 다 번역해서 출간하기 전까지는 못 망할 것 같다.
늦더위도 오래 앉아 있는 손님처럼 질질 끄는데 사라질 때는 인사도 없다. 그리고 가을은 닌자처럼 정신을 차려 보면 거기에 있다.
225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딱 지금의 계절을 아주 적절하게 담아냈다 생각했다. 여름도 아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그러다 겨울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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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