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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착각
글쓴이
토드 로즈 저
21세기북스
평균
별점8 (153)
오후기록

이번 달 마지막 리뷰 도서는 토드 로즈의 집단 착각이다. 10월 독서 모임에서 토론하기로 한 책인데 분량이 상당해서 (420) 미리 읽어보았다.



 



집단 착각이란 한 마디로 사회적 거짓말이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 중 다수가 특정한 의견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을 것이라고 넘겨짚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집단 착각이다.



(p.16)



 



집단 착각이란 타인의 생각을 넘겨짚어 그것이 다수의 의견인 양 생각하는 현상이다. 저자는 집단 착각의 고전적인 예로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을 꼽는다. 동화를 처음 읽었던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솔직히 이야기 속 꼬마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다. 임금님이 옷을 입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고, 그런 행동이 버릇없다고 지적받기 쉽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비슷한 일들이 현실에서도 종종 보이지만, 나는 여전히 튀면 피곤해진다는 이유로 외면하곤 한다.



 



우리는 집단적인 합의가 있다고 여기는 쪽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p.127)



내가 속한 집단이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월감을 선사하며 내 영향력이 커진 것만 같은 만족감마저 준다.



(p.128)



 



집단 착각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선거 때 보이는 유권자들의 행동이었다. 직접, 비밀 투표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한다지만 정말 자유의지만으로 뽑는 걸까? 언론은 사표 방지 심리라는 용어를 써가며 부추기고, 사람들은 ‘B후보를 뽑고 싶지만 인기가 없으니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는 A후보를 뽑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러다보니 유권자가 수천만인데도 눈에 띄는 후보는 거대 정당 소속의 한두 명뿐이고, 영향력이 적은 후보는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이 약해져 지지자들조차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지갑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주인을 찾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p.329)



사람들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들은 믿을만한 것이 맞다. 다만 우리는 사람들이 믿음직하지 않다는 집단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p.331)



 



저자는 집단 착각이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하며 불신의 원인으로 가부장주의를 지적한다. 가부장주의에는 다른 이를 아이처럼 대하고,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며 거만하게 내려 본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예로부터 성차별, 종교적 억압, 인종차별 등을 정당화시켜 왔다는 것. 지금도 가부장주의는 형태를 바꿔가며 사회의 곳곳에서 존재한다. 누군가가 다른 권위 있는 지도자나 집단의 지배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가부장주의는 불신을 기본 전제로 하며, 불신은 집단 착각을 키운다.



인간은 정말 누군가의 지도가 필요한 믿을 수 없는 존재일까?



고정관념과 달리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주는 실험이 보여주듯 우리는 대부분 선량하다. 개개인을 보자면 착하고 믿을만하지만 전체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부모는 자식이 속여 넘기기 쉬운 상태에 있어야 한다. 자식을 믿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뢰를 돌려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를 신뢰할 수 있느냐, 그런 기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부모는 언제나 아이를 돕고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죠.”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믿음직한 아이를 길러내려면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 간단히 말해 부모가 아이들을 먼저 믿어줘야 한다.



(p.335~336)



 



저자는 집단 착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인을 향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신뢰의 기본은 부모 자식 간의 믿음에 있다고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가장 슬펐던 순간은 부모님께 꾸중 들었을 때보다 부모님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느낄 때였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는 개인이 믿음직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믿을만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신뢰의 선순환을 주장한다. 누군가는 배신할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불신보다 신뢰가 주는 혜택이 더 크다는 것. 작은 손실을 감수하고 서로를 믿는다면 우리는 집단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몇 해 전 엄마 생신에 가족이 모두 모여 오리고기 전문점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교외의 분위기 좋은 식당. 오리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들이 차례로 올라오고, 우리는 서로에게 권했다. 많이들 맛있게 드시라고. 하지만 식사가 끝난 식탁에는 고기가 반 이상이나 남았고, 우리는 이 집의 음식 양이 많아 그러려니 했다.



그 때 남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오리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 식구들이 잘 먹었을 테니 다행이야라고. 그제야 우리는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사실은 오리고기 별로 안 좋아해. 그런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 것 같아서 여기로 온 거야.”



왜 우리는 아무도 원치 않는 오리고기를 물리도록 먹어야 했을까?



발단은 그로부터 몇 달 전 아빠 생신모임이었다. ‘늘 먹던 해물요리나 소고기 말고 다른 걸 먹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말끝에 누군가 오리고기 같은 거?’라는 말을 했다. 다음 외식 메뉴가 자연스럽게 정해졌고, 다들 오리고기 맛있게 하는 음식점을 찾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다른 사람은 좋아하는데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닐까?’하는 과한 배려와 한 끼만 참으면 되는데 공연히 입맛 까다롭다는 지적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작은 고민이 만들어낸 웃픈 집단 착각이었다.



가족끼리 식사 메뉴 하나 정하는데도 진정한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데 전혀 모르는 남의 생각을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침묵하는 이가 많다면 진실을 알아내는 건 더욱 요원하다.



 



이 책은 미국학자의 저서인 만큼 우리와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른 일을 예로 들지만 본질을 살펴보면 어찌나 닮았는지 놀라울 정도다. 우리가 집단주의인데 비해 서구인은 개인주의라지만 좋은 게 좋은 거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집단 착각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고 말하며 작은 균열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이 성공한 일과 이집트 여성의 할례 비율이 줄어든 사실을 언급한다. 정권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오랜 관습보다 개인의 행복에 집중할 때 훨씬 더 나은 삶이 기다린다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집단 착각인 줄도 모른 채, 책 한권을 고를 때도 리뷰가 좋고 별점이 높은 책을 사려고 한다. 책을 읽은 사람에 비해 리뷰를 남기는 독자는 소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좋다지만 내 눈엔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어영부영 넘어가곤 한다.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한 심오한 뜻이 담긴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아직은 소심하게 침묵을 지킬 때가 많지만, 그래도 저자가 알려주는 집단 착각에 균열을 내는 방법만은 기억하며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싶다.



 



양심의 외침이 있을 때 침묵하는 것을 거부하자. “?” 혹은 왜 안 돼?”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민감하지만 중요한 대화의 물꼬를 트자. 스스로 전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본인의 전제가 틀렸을 가능성을 회피하려 들지 말자. 반드시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낯선 이들을 신뢰하도록 하자.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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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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