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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글쓴이
강인욱 저
흐름출판
평균
별점9.3 (80)
오후기록



 



벤 스틸러 주연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는 박물관의 전시품들이 되살아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헐리우드 특유의 화려한 영상이 한몫 했겠지만 유물을 매개로 되살아난 과거와 마주 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 있는 소재인듯하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 이후로도 시리즈물로 만들어진걸 보면 말이다.



 



현실에서도 유물을 통해 과거를 소환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파리 모자를 쓰고 오래된 무덤을 헤쳐 유물을 찾아내고, 깨진 돌조각과 녹슨 칼에서 과거를 알아내는 사람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현재와의 고리를 찾을 수 없는 내겐 그저 옛 것일 뿐이니 고고학은 유물을 찾아 시대에 맞게 진열하는 정적인 학문이 아닐까. 기존에 고고학자와 고고학에 대한 내 생각은 이 정도였다. 역사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고고학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재를 따라잡기도 버거운 일상에서 한반도에서 토기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고조선 시대의 제사가 어떤 형식이었는지를 알아보는 건 너무 한가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일반인의 마음을 읽은 걸까?



강인욱 교수의 신간 세상 모든 것의 기원에는 옛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우리와 이어지는 고고학 이야기가 나온다. 막걸리, 삼겹살, 해장국, 축구, 여행, 낙서, 황금, 마스크 등의 다양한 주제로 들려주는 기원을 알려주는 유물 이야기’. 저자의 생동감있는 서술을 따라가다보니 사물의 기원에 관한 상식도 키우고, 고고학은 고루하다는 편견에서도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잔치(Party), 놀이(Play), 명품(Prestige), 영원(Permanance). 먹고, 즐기고, 욕망하고, 죽음을 대하는 옛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서른 두 가지 유물을 통해 알게 된 옛사람들의 일상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식 문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그 음식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며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치 같은 발효 음식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다.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햄버거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여담일 뿐 햄버거의 본질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p.46)



 



잔치 편에 전통 음식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막걸리의 기원은 어디일까? 소주는 어디서 누가 가장 먼저 만들었을까?



저자는 원조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며 한국김치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를 꼽는다. 인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김치의 타이틀은 김장: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



유네스코 선정위원회는 김치의 원조를 따지지 않고,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저자는 불분명한 원조를 주장하는 것 보다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800년전 러시아 소년 온핌이 남긴 낙서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낙서의 긍정적인 의미가 새롭게 밝혀지는 중이다. 인간은 뇌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낙서를 하는 동안 인간의 뇌와 손은 서로 연동하여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루한 듣기 과제를 할 때 낙서를 하는 사람이 29퍼센트나 정보를 더 얻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쓰기와 낙서가 인간의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이유다. 낙서가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다.



(p.154)



 



놀이 편에서 소개하는 낙서이야기가 재미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에 속하는 50만 년 전 인도네시아 자바원인이나 73000년 전 현생인류도 낙서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발견된 증거가 그 정도지 낙서의 진짜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2000년 전 이집트의 어린이가 토기조각에 남긴 귀여운 자화상, 800년 전 러시아 소년이 공부하기 싫다고 쓴 낙서, 실크로드 둔황에서 발견된 불교경전 뒤의 19금낙서 등등. 시대에 따라 필기구가 바뀌었을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책은 정서적 안정감도 주고, 예술의 원형이 되는 낙서가 최근 재평가 받는 사실에 주목한다. 뇌과학의 연구에 의하면 뇌와 손을 같이 쓰는 낙서가 창조성을 높여주고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지만 문해력과 정보 인지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디지털기기에서 찾는다.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많아졌지만 펜을 쥐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줄어들면서 뇌의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역사학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고고학은 발굴된 유물에 근거한다. 유물은 문자가 없던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고 미처 기록하지 못한 역사의 빈틈을 메꿔주는 퍼즐 조각이자, 타임캡슐이다.



이 말은 역사학과 고고학을 구분 짓는 정의이지만 그동안 나는 앞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고고학을 오해했다. 문자가 없던 시대를 다룬다는 생각에 선사시대와 고대에 머무는 학문이 아닐까 하고. 이 책은 고고학의 연구대상이 선사시대 뿐 아니라 현대를 포함한 문자이후의 시대 또한 해당된다는 것을 축구, 마스크, 메신저 같은 현대 문명의 기원을 살펴보며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고고학은 과거를 발굴하는 일을 하지만 그 목적은 단순한 과거 자료의 수집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한다. 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그려보고자 유물을 탐구하는 고고학. 저자의 말처럼 미래지향적인 학문임이 분명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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