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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문화
글쓴이
피터 게이 저
교유서가
평균
별점10 (7)
휘페리온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매달 출판사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미션 도서 외에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더 고르고 이에 대한 서평을 써야 한다. 굳이『바이마르 문화』같은 어려운 책을 고른 걸 사실 좀 후회했지만, 이 책을 고른 까닭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완독 후 여러 의문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부터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되는 1933년까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를 거친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혼란과 배반과 모반과 계략 속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을 탄생시킨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고난에 빠져 있었고 대내외적 혼란이 가라앉을 무렵인 1923년에 이르러 바이마르공화국은 나름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황금기는 역사학자 '피터 게이'에 의하면 짧지만 강렬한 시기이다. 그는 이 시기를 '위태로운 영광이었으며 화산의 분화구에서 추는 춤이었다. 바이마르 문화는 짧고 혼란스러우며 허약했던 순간에 역사에 의해 내부로 몰려들어왔던 외부자들의 소산이었다.'라고 일갈한다. 건축-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법한 '바우하우스'부터, '라이아 마이너 릴케', '니체', 그리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까지. 바이마르공화국 시기는 독일의 민주주의 쇠락부터 히틀러의 권력 획득 과정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혼란과 요동치는 정국 속에서 그 불안의 에너지를 예술과 문학, 음학, 문화의 성장에 폭발적으로 쏟는다. 이 의심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황금기, 짧지만 강렬했던 바이마르공화국 시기는 히틀러 정권 탈취에 의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급박하게 전복되고 몰락하는데, 그 후에도 외부로 퍼져나가 영혼의 힘으로 영원히 살아남는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피터 게이의 평에 따르자면 '문화적 귀족이자 철학적 아이러니스트'였던 '토마스 만'에게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이 작품은 바이마르공화국 황금기인 1924년에 출간되었고, 두꺼운 분량과 상관없이 매우 큰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팔려 나갔다.



『마의 산』은 남독일 고원, 슈바벤 호수를 건너 스위스 지역에서 알프스산맥을 거슬러 올라간 '다보스 플라츠'에 위치한 요양원이다(가상의 공간이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결핵에 걸린 사촌 '요하임'을 방문하기 위해 3주 일정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하지만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곳에서 시간의 감각을 상실하고, 저지低地(그의 고향 함부르크뿐만 아니라 일반적 사회와 세속)의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사촌 방문 3주 일정은 금세 지나고 한스 자신도 요양원의 사람들과 같은 '병'에 걸린다. 곧 세 달, 삼 년을 지나 그는 결국 요양원에서 7년을 머문다.



엄밀히 이 소설은 성장 소설류이지만, 단순히 사실주의적 성장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심오하고 복잡한 상징적 장치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선,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마의 산'과 '저지低地'이다. 작품의 초입에서 작가는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을 원래 그대로의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 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밝히는데, 사실 이 부분만 읽어도 '마의 산'의 상징성을 간파할 수 있다.



말하자면 '마의 산'은 '한스 카스트로프'라는 청년을 '현실의 관계'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 본연의 자유의 상태로 옮겨 놓는 공간이다. '저지低地'가 시간의 질서에 따른 규율과 규칙의 삶, 사회적 관계에 얽매여 전통과 문화를 답습하며 살아가는 의무와 책임의 삶, 선線적인 삶을 상징한다면, '마의 산'은 모든 시간이 정지한 공간, 죽음을 화두로 병과 퇴폐에 탐닉하는 공간, 사회적 자아를 상실하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자아에 빠져드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 공간, 즉 '요양원'은 『바이마르 문화』에서 작가 피터 게이의 언급을 따르면, '평화를 역겨워하고, 죽음의 무도회가 준비되어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번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패한 퇴폐적 유럽의 복제품'이다. 하지만 '한스 카스토르프'라는 개인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자면, '시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은 공간. 망자들이 취생몽사하는 심연. 죽음의 심연인 동시에 그렇기에 가장 강렬하고 가볍고 자유로운 욕망과 원시적 자아의 공간'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곳에 올라와 고향인 저지대로 돌아가지 않고 무언가에 홀린 듯 요양원에서 칠 년이라는 망각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개인 내적 성장에 있어서는 청년에서 사회적 자아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만 쓰기에는 『마의 산』이라는 작품은 물론 무척 복합적이다. 작가 토마스 만은 이 요양원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들 각 인물은 수 세기 동안 유럽을 발전시키거나 분열시킨 사고들이 유형화된 캐릭터들로, 예를 들어 한스를 맞닥뜨린 처음 순간부터 "이곳을 떠나 자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경고를 하는 계몽주의자 세템브리니는 한스로 하여금 삶의 질서, 건강한 업무의 세계로 복귀할 것을 염려하는 이상화된 아버지의 전형이다. 하지만 한스는 이 선하고 합리적인 자유주의자를 좋아하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에게 요양원에서 칠 년은 누군가에 의해 감금된 세월이 아닌, 자의에 의해 선택된 것으로 정지해 있는 영원이며 인생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연금술적 마술의 순간이다. 요양원에서 시간의 관념은 사라지고, 건강한 생의 업무 대신 죽음에 지배당한 문제적 세계가 한없는 자유와 가벼움을 불어 넣는다. 얼핏 보면 한심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지만, 일면으로는 과잉된 에너지의 축적이 언제든 폭발할 것처럼 불안감을 안고 있는 이곳에서 한스 카스트로프는 죽음과 병과 욕망과 자유 의지에 깊이 이끌린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에서 칠 년의 생활 끝에 저지의 삶으로 복귀하게 되는 것은 전쟁 발발이라는 외부적 사건, 역사적 청천벽력 때문이며, 그렇기에 그가 요양원을 떠나는 장면은 급작스럽다. 사람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마의 산을 떠난다. 한스도 이들과 함께 무모한 출발을 감행한다. 마지막 이별의 장면에서 세템브리니가 그를 안고, "이제야 떠나는군! 네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떠나길 바랐는데. 나는 네가 일하러 가기를 바랐는데, 이젠 네 형제들 틈에서 싸우겠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말한 '다른 방식'은 아마 자유 의지에 의한 떠남, 한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길 세템브리니는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마의 산'과의 이별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에 의해서이고, 이렇게 기나긴 장편 소설의 분량에 비해 턱없이 짧게 배치된 결말 장면에서 작가 토마스 만은 우리의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양 운명 속으로 내팽개쳐 버린다.



『바이마르 문화』에서 피터 게이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심도 있게 논하면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으로 '눈'의 장을 꼽는다. 요양원에서 한참의 세월을 흘려보내며 한스가 죽음과 병의 방종에 헤매며 탐닉하고 있을 때에 산속으로 스키를 타고 갔다가 눈보라를 만나 고립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이 눈보라 속에서 넘어져 잠이 들며 꿈에 빠지는데, 이 꿈을 통해 자신의 현재 삶이 정지해 있는 영원임을 깨닫고 꿈에서 깨어난다. 곧 그는 자신이 탈진해 눈 속에서 얼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애착이 실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 속에 있지만 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닌 사랑이다. "나는 선과 사랑을 위해 인간은 죽음이 그의 사고 위에서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 그는 가까스로 생환한다. 이 생환은 한스가 눈보라에서 살아 돌아온 사건이기도 하지만, 한스라는 한 인간의 '각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오랜 방황과 무감각한 시간의 소요 끝에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맞닥뜨리고, '삶'의 장소로 돌아오는 것이다.



한스 카스트로프가 저지대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전쟁이라는 외부적 장치에 의해서이지만, 알고 보면 이 생의 귀환에는 내면의 각성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 비록 작가가 마지막 구절에서 "온 세상을 뒤덮는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 속에서도,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 것인가?"라고 의문하고 있지만, 그의 의문은 절망적 비관주의가 아닌, 희망적 긍정이다. 



피터 게이는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에 대해 "그러나 이 시기의 바이마르는 마의 산 위의 사회와 흡사했다"라고 쓴다. 비아마르공화국 내에서 청년의 정치사는 이들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에서 가장 통절한 것이었다고 평한다. 일부의 진정한 혁명가를 제외하고 죽음에 도취된 이 시기의 청년들은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눈을 감은 채 심연 속으로 돌진할 정도로 젊었다. 이런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것은 '나치'이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통해 알 수 있듯) 인내를 갖고 합리성과 절제를 가진 진정한 자유를 향하라고 촉구한 사람 중 하나일 뿐, 청년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아들들은 떠나기 위해 모반을 꾀했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어머니의 전능함을 저버리고 싶어 했다. "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자라면 누구라도 받아들이려 한다"는 이 젊은이들은 진정한 혁명에 대한 준비 없이 오로지 영웅숭배, 진정한 혁명적 '사상'에 도취되어 세상을 전복시킨다. 1932년 바이마르공화국은 사방으로 무기력하고 곤경에 처했으며, 그 위기를 미처 의식할 새도 없이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이 된다.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이 젊은이들을 덮쳤고, 그들에게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오기까지 너무 많은 희생과 고통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실 『마의 산』도『바이마르 문화』도 모든 내용을 이해하며 읽기에는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을 나름의 열정으로 탐독하며 완독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제 나는 정말 기성세대로, (기성세대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그러하듯) 그다지 악의적이거나 비아냥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약으로 신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염려한다. 아버지의 복수만큼 어머니의 전능함 또한 청년들에게 똑같이 해로운 것이라는 작가 '피터 게이'의 말에 통감하면서도, 청년들의 운명을 행운으로 바꾸는 전능함을 발휘하고 싶다. 바이마르공화국처럼 혼란과 불안의 극단은 아니지만, 사방에서 다양한 분노와 혐오, 분열이 아이들을 잡아당기고, 갈 곳 잃은 아이들의 열정과 불안과 자유 의지가 농축될 때 이것이 나쁜 방향으로 분출하고 폭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배반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악의적이고 비관적이지만, 그저 우리 기성세대를 거스르는 일쯤으로 볼 때, 기존의 부조리와 구태의연한 관습과 어른의 세속적 욕망과 경직된 의무 부여를 거스르는, 그러한 부모에 대한 배반을 통해 실컷 헤매고, 멈추지 말고, 사랑이 가득한 삶의 자리로 귀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포스팅은 교유서가 서포터즈로, '피터 게이'의 문화 역사서 『바이마르 문화』에 대한 서평인데, 토마스 만을 비롯,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로이트, 막스 베버 등 비록 공화국은 짧은 시간 안에 쇠락했으나 그 정신은 오래 살아남은 '바이마르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본래 소설을 읽을 때에 작가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도 나 스스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더 깊은 앎은 또 다른 감동을 이끈다는 생각을 한다. 



 



*교유당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  『바이마르 문화』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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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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