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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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눈을 달랜다
글쓴이
김경주 저
민음사
평균
별점7.5 (28)
eunbi

김경주 시인은 요즘 말로 "잘나가는 젊은 시인"임은 알고 있었다. 작년말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도 '세계의 문학'에서 그의 시를 본 적이 있고, 미당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한껏 주목을 받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읽고 금방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해를 한 사람이 있을까?
시적인 언어들이 암호 투성이의 문장으로 나타날 때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공략되지 않는 매력이 그의 詩의 특징이다.
그래서 어느 평론가는 "그의 시는 수사학 사전 같다. 또 음악적 에너지가 넘친다. 그 에너지가 수사학적 장점 위에서 어떤 절제의 순간에 도달할 때 미적 성취를 이룬다"고 평했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음미하노라면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들이 가지는 감정이입이 어려운 난해함과 모호함과는 다른 암호가 분명히 있다.
이러한 암호에 가까운 낯설음은 시인의 인터뷰를 보면 인지할 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시인은 시대의 징후를 가장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는 언어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죠. 최전방은 가장 공포와 고독을 느끼기 쉬운 아슬아슬한 곳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있어야 하죠. 시는 언어의 전위로서 언어가 제도화되고 트렌드화 될 때 이를 막기 위한 실험을 계속해줘야 해요. 대중에게 낯설 수밖에 없죠.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다만 서걱거리는 낯설음이 내재되어있는 코드를 읽고 즐겨야 할 독자들의 몫을 외면한 채, 극소수의 시인이나 평론가들만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시는 그 또한 '그들만의 오만'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잊혀지는 詩에 머물고 만다는 것을 잘 알아야할 것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신춘문예, 문학상 등의 수상작들이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퇴색되어가는 잉크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시인의 시적 능력과 영원히 암송되는 시로 남기위해서는 독자와의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시집에서의 주제는 단연 '시차'이다.
오랫동안 몇번씩 읽어도 암호풀이가 쉽지않아 뒷쪽의 전문가의 평을 읽어본다.  그들은 이 시차를 '‘떠도는 여행'의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지만, 얼른 동의하기가 어렵다. 시인에게 여행은 테마가 아니라 삶의 형식이자 시적 태도로 나타나 그의 특이한 시세계를 이룩했다는 것인데, 그 정도의 암호풀이는 너무 단편적인 것 같다.


'시차'에 화두를 두고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이 말하는 시차는 "다면성의 결합이며, 그 연장선에서 암호의 코드를  해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시차란 단어가 들어가는 "시차의 건축", "종이로 만든 시차"를 읽어보면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시적 상념이 매치되면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과 격차를 암호로 메우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암호는 의미의 자각에 의한 형상적 개념임이 분명하고, 시인의 시적 통찰이 무엇인가를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미당문학상에 최종후보작으로 소개되었던, 김수영문학상의 수상작은 '연두의 시제' 외 49편으로 소개되는 "연두의 시제"를 보자.
 


  마지막으로 그 방의 형광등 수명을 기록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건 손톱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과 동일한 거 저녁에 잠들 곳을 찾는다는 건 머리카락과 구름은 같은 성분이라는 거 처음 눈물이라는 것을 가졌을 때는 시제를 이해한다는 느낌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 한 사람이 죽으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사람을 만나면 입술만을 기억하고 구름 색깔의 벌레를 모으던 소녀가 몰래 보여준 납작한 가슴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던 일기장 속의 화원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곳에는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를 위해 처음 본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들만 살아남았다


  오늘 중얼거리던 이방(異邦)은 내가 배운 적 없는 시제에서 피는 또 하나의 시제, 오늘 자신의 수명을 모르는 꽃은 내일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된다
(이하 생략...)


 


뭔가 울림은 있는데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다시 시인의 설명을 보자.
그는 "언어와 삶 사이에는 간극, 시차가 존재한다. 시는 사이에서 발생하고 사라진다. 그런 시차, 시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내면의 설명을 들으면 시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삶이 시인의 언어로 탈바꿈했을 때 나타나는 암호는 여행자로서의 시차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思考의 시차라고 생각하면 훨씬 암호풀이가 쉬워진다.



개인적으로는 "북극의 연인들  -여섯 개의 회문"에 주목을 한다.
아마도 같은 이름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하다. 그 영화는 회문(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단어, Ana, Otto)인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 아나와 오토의 사랑을 통해, 우연과 필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끝이 시작이 되는 순환적인 구조 속에 두 연인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러브스토리를 시인이 어떤 리듬과 암호로 풀어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 
 2. 당신은 내 침대에 누워서 무언가를 물었던 일처럼 잠들고/ 나는 당신의 침대에서 잠드는 일은 무언가를 묻는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처음 당신이 내 곁에 누운 날을 / 그게 당신이 내 눈에 누운 일 같아서/ 내 눈이 처음으로 눕지 못했던 날이라고 믿는다
...중략...
 5. 우리는 언젠가 북극에 가자 북극에 가서 가장 얇은 얼음을 걸어가 그곳의 아래 귀를 대어 보자 얼음의 명예를 갖기 위해, 문을 반쯤 열고 발의 모양을 먼저 보여 주며 들어오는 사람처럼, 다양한 의식을 우리만 아는 눈(雪)들의 주소에 부치자 아름다운 북극의 폐가로 들어가 끌을 들어 서로의 눈 한쪽을 판화에 밀어 넣어 보자 저녁의 물과 가장 닮은 눈송이를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영상적 느낌이 시인의 감각으로 결합되면서 한껏 사유의 공간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이 부분이 일부 젊은 작가들의 정신분열적 모호함과 다른 김경주 시인만의 철학적 공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쉽게 현대시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 자신도 이 시인의 시적 감수성과 창의적 시재(詩材)에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직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자기담론적 시적실험이 빨리 끝나, 시적 가독성(可讀性)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내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시인의 역량으로 볼 때 젊은 시인들에게 필수과정처럼 여겨졌던 산문시에서 벗어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 시집의 평론이 아니기에 이 정도에서 매듭을 짓고자 한다. 버릴 것을 버리고 다시 거듭나는 시인이기를 바라면서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추언 :
'연두의 시제'를 보니 세계의 문학 2009년 여름호에 실린 시와 시집의 시에 차이가 있다.


 


세계의 문학 2009년 여름호==>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하루 종일 딸들의 머리를 땋아주던 여자가 중얼거리던 화음의 중간만 기억하는 거

시집 ==> 내가 지금껏 이해한 시제는 오한에 걸려 누워 있을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숲, 한 사람이 죽으면 태어날 것 같던 구름


 


시집의 표현이 더 깊이가 있어보이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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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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