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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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글쓴이
김초엽 저
퍼블리온
평균
별점8.8 (389)
진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제는 어느덧 필독서의 굴레에서 벗어날 법도 한데 아직까지 수필이나 에세이에 손이 쉽게 가는 것은 너무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나를 방증하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서탐대실 - 똑같은 책, 다른 그림?'편을 보고 같은 시각적인 정보이지만, 영상 미디어에 의존하기보다는 텍스트에 기반한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야 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를 넘어, 존재 그 이상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장르가 소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에 소개된 김초엽 작가의 장편소설 [파견자들]은 감히 가정해보지 못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인류는 소통을 위해 말과 몸짓 혹은 홀로그램, 뉴로브릭과 같은 장치를 활용한다. 그리고 지구는 범람체들의 행성이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우주에 제2, 제3의 행성을 찾아 나선다면 과연 이것만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할까? 행성 생태계에서 적응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인류는 또 다른 진화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진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감각의 혼란은 중요한 유흔이며 자아 해체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리라. 마침 동물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소개한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꿀벌은 날개 근육을 통해 개별단어를 형성하고 진동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돌고래는 가슴지느러미의 촉각을 사용하여 상대와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날여우원숭이는 포식자가 감지할 수 없는 초음파를 이용하여 소통을 한다. 이러한 동물들의 소통방식을 참고해 볼 때 인류는 지금보다 더욱 세밀히 여러 감각에 의지해 복합적으로 반응하고 이를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하도록 진화할 수 있다. 이 감각적인 세계는 '전체'이자 '부분'이고 '충돌'이며 '통합'이라고 표현이 가능하겠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는 무엇일까? 나는 현재 하나의 자아를 가진 사람. 그런데 나의 정체성에 관해 수만 개의 관점과 수만 개의 가닥을 설정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몸은 수많은 분자와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 역시 감각의 활성화를 통해 나의 의지와 행동결정에 지분을 갖고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 마치 '최고다! 호기심딱지'에서 알려주는 피삼총사, 혀의 요정, 표피장군 등 내 몸 하나하나의 구성요소가 각기 목소리를 내며 최선의 결정에 도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의 자아는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일 뿐이고, 개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각하고 의식을 느끼는 전체이자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내 '안에 있는 무언가'는 무의식에 묻혀있는 연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태린은 흡사 (바람계곡의)'나우시카'를 연상시킨다. 균사, 탐욕스러운 인류, 그리고 오무에 맞서 인간을 대변하고 결국엔 그들과의 공생의 과정을 겪게 되는 과정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자기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태린만의 특징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더욱 중요하게 와닿았다. 여러 직함으로 구분되는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그리고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는가? '진정한 용기'란 신념을 위해서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태린 안의 '또 다른 의식체'가 본능과 감각으로 그를 돕고 있었지만, 결국 그 절박한 용기가 새로운 시대를 인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태린이 자신의 운명을 마주할 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불행할 때도 있다. 하지만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한다. 이 삶도 마찬가지다. 난 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야 해"라고 소회한 스벤과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모든 상상 가능한 미래에서 (오로지) 당신이 바라는 것은 나와 함께 지상으로 가는 것뿐"이라는 이제프의 마음을 태린은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이제 지구본과 은목걸이는 서로가 돌아와야 할 이유이다. 그들의 유산이 범람체로 뒤덮여 거듭된 변화를 거쳐 이 행성 마지막까지 남아 있음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슬퍼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비단 인류만의 삶의 원리가 아니라 모든 자연의 법칙이리라. 그래서 지상의 노을과 별들, 하늘 그리고 바다가 있는 풍경은 여전히 낯설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온전히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뮤지컬의 원작은 제쳐두고, 별다른 궁금증 없이 2차 창작물에만 큰 관심을 갖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원작 소설에서 더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고, 이 책이 그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 나는 소설 [파견자들]을 통하여 작가가 묘사한 각가지 '범람 생태계'를 마음껏 상상해 보았고, 평소 무심결에 받아들였던 단어의 개념과 그에 따른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분량의 소설에 소요될 시간에 비해 생각보다 빨리 완독을 했는데, 아마도 몰입도가 상당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오늘 저녁 퇴근길의 쾌청한 하늘과 밝은 달 그리고 무미건조한 바람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집에서 나를 반겨줄 가족을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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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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