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3.12.1
라틴어 수업
- 글쓴이
- 한동일 저
흐름출판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2017.7.9.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분 것도 몇 년이 되었다. 어떤 공부를 하든지 조금 깊게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것이 라틴어 어원이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것이 주로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이며, 유럽 대부분의 언어가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라틴어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다. 가톨릭의 사제가 아니면 라틴어로 된 책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라틴어를 고등학교 과정에서 충실히 이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한자를 어느 정도 익히지 않으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듯, 그들이 라틴어를 모르면 대학교 공부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는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다.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강의를 맡아 진행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및 법학대학원에서 ‘유럽법의 기원’에 대해 강의 하고 있다. 저서로 <카르페 라틴어 종합편>, <유럽법의 기원>, <그래도 꿈꿀 권리>등이 있고 <동방 가톨릭교회>, <교부들의 성경 로마서>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라틴어 수업>은 저자가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 했던 ‘초급, 중급 라틴어’ 수업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라틴어 강의는 서양 문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를 밑바탕에 두고 문화, 역사, 종교, 철학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라틴어를 비롯한 배경지식을 입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공부 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의 운동장에는 어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까?(p.35)” 라틴어 첫 강의 시간에 하는 말이란다. 봄철의 아지랑이가 무심히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고 멈춰 서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이듯이, 내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스스로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으로 상고 시대에 인도와 유럽 지역은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서 유입된 유목민족에게 정복당했는데요. 이 때문에 유목민족의 대대적인 이주가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 지각 변동이 일어납니다. 산스크리트의 영향은 인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만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쪽으로 우리나라의 언어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가령 ‘엄마’라는 말을 분석해보면 거의 모든 언어의 ‘엄마’를 뜻하는 단어에는 ‘마Ma’ 라는 음가가 들어갑니다. 지금 다들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고 있을 텐데요, 영어의 마더, 프랑스어의 마망, 스페인어의 마마, 일본과 중국어의 마마 등만 봐도 그렇죠.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p.41)” 이처럼 라틴어도 산스크리트어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면서 여러 민족의 언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어에도 산스크리트 영향이 스며들었다니 고대에도 인간들의 교류는 활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도사들이 입는 옷 ‘하비투스’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한다는 의미에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된 겁니다.(p.85)” 이와 같이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규칙적인 생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저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싫지 않습니다.(p.91)” 공부하는 것이 육체적인 노동만큼이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노동자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가 쉬는 시간을 갖듯 공부 또한 계속해서 하는 것 보다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유대교의 율법에서 벗어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을 그리스도교에 접목했던 겁니다. 이를 통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도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바오로를 통해 어떤 공동체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가능했던 것이 또 다른 공동체에서는 그것을 얻기 위해 엄청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p.101)” 종교라는 공동체에서는 다른 종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또 다른 강의에서 “정원과 달리 자연에는 잡풀과 잡목이 따로 없습니다. 다 제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구성원이죠. 정원 안에서는 각각의 생각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에 불과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잡풀, 잡목인 것이 없습니다.(p.251)” 이와 같이 각 인간이 만든 종교는 종교마다 교리가 다르지만, 더 큰 자연에서 보면 화단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서로 배타적인 생각을 갖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는 강의에서는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p.134)”라고 말하며 인간의 욕망이 끝없음을 말하고 있다. 기쁨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p.155)”
“하늘의 새를 보세요. 그 어떤 비둘기도 참새처럼 날지 않고, 종달새가 부엉이처럼 날지 않아요.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p.181)” 사람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다. 그렇기에 당장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내가 언제 꽃피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미리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돌에 정으로 글씨를 새기듯 매일의 일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꾸준한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은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게 되지 않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p.216)” 이처럼 시간을 귀하게 여기라고 한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러기에 절망하고 시간 낭비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충실히 살라는 것이다.
‘신은 각자에게 그 사람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를 하나씩 주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무엇에든 진정한 전문가(마에스트로)가 되어 저만의 악보를 연주하라고 저자는 학생들에게 강조 한다. 이 책을 읽는 학생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것을 찾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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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