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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12.11
문명 1
- 글쓴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3부작 중 <문명>을 읽고 있다.
주인공은 바스테트. 자기애가 강한 세 살짜리 암고양이다. 아들 안젤로, 거세된 고양이 펠릭스와 함께 나탈리라는 인간집사의 집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옆집에 수컷 샴고양이 피타고라스가 이사 오고 바스테트는 그가 <제3의 눈>이라는 USB단자 덕분에 인간세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인간들은 테러와 전쟁으로 동족을 죽이며 자멸하고 그러는 동안 쥐들이 번식하면서 인간을 공격하고 전염병을 퍼뜨린다. 테러와 전염병, 쥐들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나탈리를 비롯한 인간과 고양이들은 시뉴섬이라는 센강의 조그만 섬으로 피신한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섬은 쥐떼의 습격을 받게 되고 피타고라스와 바스테트는 기지를 발휘해 인간과 함께 시뉴섬을 떠나 시테섬으로 이주한다. 새로운 땅에서 쇠락하는 인간 문명을 대체할 고양이 문명을 세울 희망에 부푼 그들. 하지만 시테섬도 안전하지 않다. 쥐들이 섬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섬에 갇힌 고양이와 인간을 지키려고 피타고라스와 바스테트, 그리고 인간 집사 나탈리는 쥐떼의 포위를 피해 열기구를 타고 섬을 탈출한다. 시테섬을 지켜줄 구원군을 찾아나선 길에서 여러 동물을 만나 모험을 하던 일행은 아직 쥐들의 공격을 받지 않은 오르세 대학으로 간다. 그곳에서 바스테트는 인간의 지식이 담긴 USB메모리가 피타고라스 말고도 여러 실험용 동물들에게 이식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육장에 감금된 채 인간 지식을 습득한 동물들은 혼란에 빠졌고 그 중 일부는 우두머리 쥐 티무르처럼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 세상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혼란의 근원은 바로 동물들에게 삽입된 제3의 눈, USB단자였다.
하지만 글을 읽고 싶어하고 모든 종과 소통하기를 소망하는 바스테트에게 제3의 눈은 재앙이 아닌 새로운 기회였다. 제3의 눈을 간절히 원하는 그녀는 결국 수술대에 오르고 그렇게 1권이 마무리된다.
다음 세상의 주인은 누구?
「이 섬에서 우리 새로운 세계를 다시 건설하자. 미래는 우리들의 것이야.」 내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쥐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진화를 위한 건설적인 계획을 구상하기보다 자신들의 생존과 정복에만 몰두할 뿐이야.」
「꼭 그렇게 단언할 순 없지. 쥐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고. 그들 중에도 은밀하게 미래를 계획하는 자가 있을 거야······.」
(p.64)
인류 문명이 종말을 맞게 되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애초에 자기들이 주인이고 인간은 집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고양이의 세상이 될까? 아니면 티무르를 비롯한 쥐떼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까? 쥐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걸까? 이기심으로 종말을 맞은 인류 문명 대신 고양이들이 건설하려는 새로운 세계가 궁금해진다.
고양이의 미인계, 아니 미묘계(美猫計)!
막연한 기대를 품고 무조건 기다리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 <네 행복이 다른 사람의 결정에 좌우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이야>라고 엄마가 말하지 않았던가.
피타고라스씨, 미안하지만 우리 엄마 말이 옳아. 그 말을 수시로 떠올리는 나도 당연히 옳고!
엄마의 말은 지금까지 내 삶의 좌표 역할을 했다. 절대 남이 내리는 결정에 좌지우지 되지 말라고, 나와 관련된 결정에는 반드시 내 의사를 반영시켜야 한다고 엄마는 가르쳐 주었다. 요행을 바라지도 상대의 친절함을 기대하지도 말라고, 도리어 상대가 내 선택과 결정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p.64)
급수탑의 우두머리 고양이 스핑크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의 결정을 기다리는 바스테트는 자신들의 운명이 남의 손에 좌우되는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 ‘절대 남이 내리는 결정에 좌지우지 되지 말라’는 고양이 엄마의 유훈을 지키려는 바스테트. 운명의 주도권을 쥐려는 그녀의 무기는 미인계, 아니 미묘계다. 더 큰 소신을 위해 인간의 도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암고양이. 이 일로 피타고라스와 다투기도 하지만 시테섬의 동료들을 지키려는 큰 계획이 있으니 그녀의 깜찍한 미묘계마저 응원하고 싶어졌다.
책속 책,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작중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책처럼 등장하는 에드몽 웰즈의<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처음엔 헷갈렸다. 진짜 이런 책이 있는 줄 알고 검색도 했는데 결국 알아낸 건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사실. 베르베르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이전판 <상상력 사전>이 집에 있어서 혹시 이 책에서 인용한 게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인용문과는 다르다. 에드몽 웰즈라는 허구의 저자까지 등장시켜 소설을 실감나게 만들고 지식도 전달하는 장치인 듯하다.
페이지 터너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 작품은 서술자가 인간이 아닌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첫 장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인류 문명의 멸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귀여운 고양이 덕에 어둡지 않은 이야기, <문명1>. 제3의 눈을 갖게 된 바스테트는 쥐들을 물리치고 고양이 문명을 세울 수 있을까? 고양이들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질 2권도 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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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