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4.1.6
야생의 위로
- 글쓴이
- 에마 미첼 저
심심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신소희
푸른숲/2020.6.5.
sanbaram
요즘 우리 사회에는 캠핑과 등산의 붐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면 산과 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자연을 느끼고 자연에서 위로를 받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대부분 여러 사람이 함께하다 보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제대로 된 자연을 즐기고 거기서 위로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야생의 위로>는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아 온 저자가 자연의 오두막집에 기거하면서 자연 속의 삶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해 가는 과정을 글로 남긴 1년 동안의 기록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동물과 식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 답게 글 속에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나 동식물, 또는 광물과 기후에 대한 통찰이 숨어 있다. 저자 에마 미첼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며, 디자이너이자 창작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1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진 그는 관찰하고 수집한 자연물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히 나누고 있으며 저서로 <겨울나기>와 <야생의 위로>가 있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 …날마다 숲속을 산책하는 일은 내게 그 어떤 상담 치료나 의약품 못지않은 치유 효과가 있다.(p.13)”고 <야생의 위로>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일 년 동안 저자의 집 주변을 거닐며 관찰한 자연물에 관한 것을 월별로 정리한 것이다.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저자는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이 좋아 보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산책하러 나가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운 과제처럼 느껴지던 날도 있었다고 토로한다. 2017년 엑서터대학교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도시환경 속 식물의 존재는 거주자의 우울증과 불안, 스트레스 인지도를 떨어뜨린다.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분 저하를 완화한다는 점도 같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전 세계에서 정신질환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가 아직 불명확하기 때문에 온갖 이론들이 난무한다.(p.253)” ‘우리가 점점 더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어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압박과 요구 때문이다.’ ‘이전 세대보다 한층 더 스트레스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등등. 하지만 이 분야를 연구해온 사람들에게 명백한 사실은 다른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과 별개로 자연과의 단절이 문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작가 리처드 루브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건강 문제를 겪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루브는 이를 자연 결핍 장애라고 부른다. 이제 저자가 늦가을부터 1년 동안 기록한 것들을 탐구해보자.
‘10월 : 낙엽이 땅을 덮고 개똥지바귀가 철 따라 이동하다’에서는 “영국 민담에 따르면 숲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은 매서운 겨울의 예고다.(p.41)”라고 말하는데, 나무들이 다가올 날씨를 감지하고 비축할 식량을 더 많이 제공해서 새들이 겨울에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숲에 풍년이 드는 이유는 그해 봄 날씨가 따뜻하고 건조하여 꽃가루 수분이 늘어나고, 7, 8월에 비가 내려 배아가 충분히 맺히고 익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1월 : 햇빛이 희미해지고 모든 색채가 흐려지다’에서는 함께 산책에 나서는 개 ‘애니’에 대하여,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숲을 산책하지 않으면 애니는 남아도는 기력을 어쩌지 못하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격렬히 꼬리를 흔들거나, 마을 녹지를 활보하는 까마귀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강아지 소프라노처럼 낑낑 애처롭게 노래한다고 표현한다.
‘12월 : 한 해의 가장 짧은 날들, 찌르레기가 모여들다’에서는 “야생당근과 서양톱풀 이삭은 회갈색으로 말라붙었고 마지막 민들레꽃은 사라졌으며, 풀밭을 둘러싼 오솔길은 잿빛 진흙탕으로 변했다. 엽록소와 생생한 초록빛이 그리워지지만, 다행히 얼음에 굴복하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주홍빛 장미 열매를 발견한다.(p.70)”고 산책을 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산책중 발견한 노루를 보면서 나는 우리가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는 현대적 농업 방식으로 얼마나 이 땅을 착취했는지, 더 많은 식량을 얻고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숲과 습지를 쥐어짰는지 떠올린다면서 경제 논리로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하기도 한다. ‘1월 : 무당벌레가 잠들고 스노드롭 꽃망울이 올라오다’에서는 “무당벌레들이 한데 모여 겨울을 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당벌레는 낮에 활동하다가 새나 다른 포식자에게 습격을 받으면 다릿마디에서 누르스름한 액체를 뿜어낸다. ‘반사혈액’이라는 다소 살벌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액체는 알칼로이드가 풍부하여 새들에게 쓰고 역겹게 는껴진다.(p.92)” 이 분비물은 무당벌레 특유의 밝은 몸 색과 함께 효과적으로 천적을 퇴치하는데, 대부분의 새가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다가 톡 쏘는 맛의 독극물을 부리 가득 머금고 나면 이후에는 무당벌레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진딧물이나 깍지벌레 같은 평소의 먹이가 사라지고 기온이 너무 낮아져 활동이 불가능하므로 무당벌레가 살아남으려면 겨울잠을 자야 한다. 그러므로 침엽수의 바늘잎 사이, 바싹 말라 돌돌 말린 너도밤나무 잎사귀 안쪽, 구부러진 들장미 잔가지 같이 서리가 침투하지 못하는 장소에 모여드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고 생물학적으로 설명한다.
‘2월 : 자엽꽃자두가 개화하고 첫 번째 꿀벌이 나타나’에서는 “이곳 팬스 변두리에서는 항상 자엽꽃자두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섬세하게 피었다가 금세 지는 꽃은 가시자두꽃보다 조금 더 큰데, 새로 자란 가느다란 녹색 줄기 끝에 피어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p.108)” 그리고 2월이 깊어지자 너도밤나무 꽃눈이 올라오고, 앵초꽃이 피고, 지난 넉 달간 저자에게 큰 힘이 되어준 배도랏 새싹이 커지면서 새로운 배아가 나온다는 것을 애니와 함께 익숙한 산책로를 걷다가 관찰결과를 기술하고 있다. ‘3월 : 산사나무잎이 돋고 가시자두꽃이 피다’에서는 “이제 첫 번째 춤사위는 끝난 모양이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어떤 신호를 들은 것처럼 각각의 찌르레기 떼가 하나로 모여 율동하는 거대한 형상을 이룬다. 좀 더 작은 무리도 곤두박질치듯 한꺼번에 중심 무리로 합류한다.(p.125)” 순식간에 새들의 폭포가 군집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리면서 아래쪽의 개체 수가 더욱 불어난다. 수만 마리의 새들이 살아 있는 액체처럼 움직인다. 찌르레기 군무를 관찰하기 위해 나섰던 외출에서 본 내용을 실감 나게 설명 한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 전후로 한두 달간의 일조량 부족이 뇌 내의 화학작용을 변화시키고 기분을 가라앉혔다. 그리하여 3월이 된 지금 나는 침몰했고 머릿속의 상처들은 모두 활짝 열렸다.(p.132)’고 자기의 병세에 대한 기록도 하고 있다.
‘4월 : 숲바람꽃이 만개하고 제비가 돌아오다’에서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뇌의 변화는 후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주변 상황이 유전자발현 방식을 변화시키며 이를 통해 뉴런의 활동뿐만 아니라 감마아미노낙산 수용체의 작용과 활동에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p.142)” 감마아미노낙산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가장 격심한 우울증상을 초래하는 매커니즘의 단서를 제공하지만, 자살 충동의 생화학적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과학적 현실을 기록한다. 그러면서 산책에서 관찰된 내용을 ‘13세기에 조성된 개암나무 잡목림에는 아직 열매가 열린다. 숲 입구에서는 지금도 완두콩 넝쿨 지지대나 울타리용 말뚝 등 잡목림의 생산물을 판매한다. 잡목림 덕분에 보전된 넓은 습지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인동덩굴, 나무딸기, 장미가 무성하게 뒤엉켜 자라서 나이팅게일이 알을 품기에 완벽한 은신처를 이룬다. 요즘 영국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이자 사라진 시대의 잔상이다.(p.157)’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5월 :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사양채꽃이 피다’에서는 “내가 매년 찾아 나서는 특정한 야생동식물이 있다. 봄의 붉은패모, 겨울의 찌르레기 군집, 초여름의 난초, 그리고 5월이면 생각나는 새가 있다.(p.171)”고 하며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희귀종 철새로, 아마도 가장 놀라운 소리를 내는 동물 중 하나일 것이하고 보기 힘들어진 나이팅게일 새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6월 : 뱀눈나비가 날아다니고 꿀벌난초가 만발하다’에서는 “모든 야생종 난초는 특정한 균류와 공생관계를 맺으며 그들 없이는 발아하지 못한다. 난초와 공생균이 함께 번성하려면 토양의 산도, 견고성, 미생물군과 서식지의 미기후가 적절해야 한다.(p.190)” 손바닥난초는 작고 수수해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난초의 존재는 로즈엔드 초원이 영국 대부분을 점유한 단일종 경작지와 상반되는 곳임을 보여준다. 난초는 직사광선이 비치거나 적어도 어른어른하게 햇빛이 드는 지점을 선호하며 광량이 적은 장소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7월 : 야생당근이 꽃을 피우고 점박이나방이 팔랑거리다’에서는 “반딧불이는 딱정벌레의 한 종류다. 짝짓기 철이 되면 반딧불이 암컷은 루시페라제라는 발광효소로 복부에서 녹색 불빛을 내고, 숫컷은 그 작은 불빛 신호를 보고 암컷을 찾아나선다.(p.201)” 저자는 토스카나에서 반딧불이를 본 것이 있지만 영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국의 야생화 목초지 중 지금까지 보존된 곳은 단 3퍼센트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개간되어 집약농업 용지로 바뀌었다고 영국의 현재 상황을 말한다. ‘8월 : 사양채잎이 돋고 아생 자두가 익어가다’에서는 바닷가 웅덩이의 생태를 관찰하고 “새우 여러 마리가 서로를 쫓아다니고 있다. 모래와 똑같은 색에 희미하게 점박이 무늬가 있어서 가만히 있을 때면 거의 알아볼 수가 없다.(p.228)”고 하며 저자는 완벽한 보호색의 진화에 경탄한다. 웅덩이 바닥에 놓인 거대한 돌멩이를 들어 올려보면 돌멩이 아래에서 게 세 마리가 허둥지둥 튀어나오고, 깜짝 놀란 새우들이 후다닥 해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가장 작은 게는 땅콩만 하고 껍질은 화려한 흑백 무늬로 뒤덮여 있다며 관찰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9월 : 블랙베리가 무르익고 제비가 떠날 채비를 하다’에서는 짝짓기 철에 굴뚝새의 노랫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뻔뻔하며 몸 크기를 고려하면 놀라울 만큼 요란하다고 하며, “대부분의 새는 7월이 되어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면 노래를 그친다. 한 해의 상반기에는 자기 영역을 지키고 짝을 찾느라 우는 데 온 힘을 쏟지만 늦여름이 되면 그런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p.245)” 이제 새들은 털갈이를 하고 잎사귀와 산울타리에 몸을 숨기는 데 몰두한다. 늦여름이면 정원과 시골 일대는 매우 고요해진다. 대부분의 새가 노래를 그치고 일부는 다음 해 2월이나 3월의 짝짓기 철이 될 때까지 노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1년간의 숲 산책을 통해 관찰한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기록하면서 우울증을 앓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숨김 없이 표현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숲의 산책이 어떻게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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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