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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之我...또 다른 나
  1. 2024년에 쓴 리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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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오디세이아
글쓴이
호메로스 저
살림출판사
평균
별점8.7 (36)
異之我...또 다른 나

  <오디세이아>는 <일리아드>와 쌍을 이룬다. 같은 '호메로스'가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둘은 굉장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일리아드>가 아킬레우스나 헥토르와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서사를 이야기했다면, <오디세이아>는 온갖 고난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고향으로 되돌아가려는 '귀환서사'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나 헥토르와 같은 영웅은 결코 아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길 고대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말해, 너무나도 인간적인 '본능(생의 의지)'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일리아드>보다는 <오디세이아>를 읽을 때 더 친밀감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영웅적인 모습에는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 법이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뇌와 고난을 겪는 모습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법이다. 이제 오디세우스가 꾀가 많은 영리한 사람인데도 그토록 모진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살펴보자.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측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오디세우스'의 공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그가 트로이측을 속이고 패배한 척 '목마' 하나만 덜렁 남겨놓고 후퇴한 '기만술'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을 잃은 그리스 연합측이 승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트로이 전쟁'에서는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트로이를 응원했던 '신들의 분노'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10년 만에 승리를 거둔 그리스 연합군은 뿔뿔이 흩어져서 귀환을 서둘렀는데, 오디세우스도 귀환길에 올랐다가 그만 '포세이돈의 아들'을 해코지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포세이돈은 분노를 참지 않았고, 오디세우스를 바다위에서 폭풍우를 만나 고향땅 이타카를 밟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고난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겐 제우스가 '고향땅으로 귀환할 운명'을 점지해준 까닭에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아예 죽일 수는 없었지만. 죽음보다 못한 고난을 겪게 하며 무려 10년 동안이나 고향땅을 밟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전쟁 10년, 고난 10년, 무려 20년 동안이나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형벌을 겪게 된다. 20살의 건장한 청년이 40살의 장년으로 만들 기나긴 세월이다.



 



  한편, 고향땅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남편이 없는 설움, 아버지가 없는 설움을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10년 넘게 공석이 된 자리(?)를 탐내는 변방의 귀족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다스릴 주인이 없는 왕국을 탐냈고, 지켜줄 남편이 없는 여인을 탐냈다. 그래서 이 두 자리를 단번에 차지할 수 있는 '결혼'을 청하러 매일낮밤을 페넬로페를 희롱하고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축내는데 열심이었던 것이다. 왕국과 어머니를 지켜야 할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의 아들인 '텔레마코스'가 지키려 했으나 아직 십대에 불과했던 텔레마코스는 자신의 능력이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서 발만 동동거리는 형편이었다. 이에 페넬로페는 아들의 귀환만 기다리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수의를 만든다는 핑계를 대고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고만 있었다. 낮에는 열심히 수의를 짰다가 밤이면 낮에 짰던 수의를 도로 풀어내면서 말이다. 과연 꾀보 오디세우스의 아내답다 하겠다.



 



  허나 그런 기지만으로 버티는 것도 10년이 지나니 별소용이 없었다. 왕국내에서도 오디세우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핑계삼아 망나니 같은 귀족들의 편을 들어 '왕국의 비밀'이 하나둘 세어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배신자가 생긴 것이다. 이제 오디세우스가 죽었다는 사실만 확인이 되면 페넬로페는 저들 귀족 가운데 한 명과 '강제결혼'을 치뤄야 할 것이고, 텔레마코스는 왕국에서 쫓겨나 방랑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일궈낸 터전이 송두리채 다 빼앗길 판이 된 셈이다. 이에 텔레마코스는 이타카를 몰래 빠져나가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신들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고 곧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는 확신도 받아오게 된다. 그런데도 20년 간 빈자리였던 것을 오디세우스가 되돌아온들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고향땅 이타카로 귀환하게 된다. 이때부터 '권선징악'이 실현된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동서고금의 정의론'이 실현되고, 오랫동안 갈고 또 갈았던 '복수의 칼날'이 여기저기 번쩍거릴 때마다 독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무도 인간적인' <오디세우스>만의 매력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무려 10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니면서 고생을 했다지만, 페넬로페도 그에 못지 않게 고생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오디세우스가 분노의 창칼로 '정의의 심판'을 내릴 때, 페넬로페도 '심판자'가 되었어야만 했다. 적어도 악한 짓을 저지른 '시녀(여자)들'만이라도 페넬로페가 처벌하는 '당사자'가 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복수는 오직 오디세우스의 몫이었고, 페넬로페마저도 '심판의 대상'이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 20년동안 '정숙한 아내'로 남아있었는지 검증받아야 했단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20년 동안 '전리품'으로 여인을 탐했고, '미녀들의 유혹'에 넙죽 홀려서 황홀한 나날들을 몇 년간이나 보냈으면서, 페넬로페는 '시월드'에서 없는 남편을 대신해 시중을 들어야 했고,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했으며, 그럼에도 욕정에 빠지지 않는 '정숙한 아내'로 남았어야만 했다. 그 모진 시련을 다 이겨내고도 '심판의 날'까지도 오디세우스에게 정숙함을 검증받고 '통과'해야만 했다. 꽤나 부당한 처사라고 보여지지 않는가 말이다. 정말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수천 년전의 '성평등 의식'이 오늘날과 같을 수는 없을 테지만, 우리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오디세우스>를 읽어야 할 필독서로 삼고 있는데, '여성독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대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겠기에 그런다. 그렇다면 <오디세이아>를 여성독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읽어야 바람직할 것인가? 현대판 <오디세이아>는 분명 온갖 불륜과 바람의 방랑자가 되어버린 '남편'이 정숙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귀환(?)'한다는 내용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과연 20년 동안이나 '여성편력'으로 화려한 대장정을 치루고 돌아온 남편(혹은 애인)을 제정신으로 맞이할 '정숙한 아내'가 현대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런 식의 질문은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관점'에서 던지는 질문일 뿐이다. 과연 바람둥이 남자를 용서할 수 있는 '관대하며 정숙한 여자'가 있다면 존경받는 위인으로 삼을 만할 것인가? 아니면 역발상으로 20여 년간 '남성편력'으로 장식하며 수많은 수펄들을 끌어안았고 현재도 끌어안고 있는 매혹적인 여왕벌(?)만을 기다리는 '순정남'을 위인으로 삼을만 하냔 말이다.



 



  이따위 '순정남'이 있을지라도 어떤 남자도 '위인'으로 존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정숙한 남편'을 정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정숙한 아내'는 정상(?)으로 볼 수 있느냔 말이다. 왜 여자에게만 이따위 '굴레'를 짊어지게 하고 남자들만의 '환상속의 아내상'으로 삼고서 여성들에게 강요하느냔 말이다. 오히려 여성독자들에게 '페넬로페'가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직접 '오디세우스'가 되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오디세우스>를 읽었다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모험'과 '여행'을 떠나서 견문을 넓히고 인생의 참맛을 제대로 맛보라고 권유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정이 '고행길'일지언정 그것이 '인생'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침실 따위가 아닌 진정한 여행가들이 언제든 돌아가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귀띔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비로소 <오디세우스>를 바람직하게 읽었다 할 것이다.



 



  우리는 곧잘 '책속에 진리가 있다'는 맹점에 빠지곤 한다. 책에 적혀 있으니 '진실'이고, '사실'만 담겨 있을 거라고 말이다. 더구나 '고전'처럼 오래도록 많은 이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권위'에 짓눌려서 '잘못된 개념'을 곧이곧대로 믿어 의심치 않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고작 몇 살만 차이가 나도 '세대차이' 운운 하면서 어찌 수십, 수백, 수천년 전의 책을 곧이 곧대로 믿는단 말인가? <경전>일지라도 시대에 맞은 올바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 책에 나와 있는 문구를 밑줄까지 쳐가며 달달 외우는 것은 하릴없는 짓이다. 차라리 외우지 말고 '소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내것'으로 만든 다음 '표현'을 해야 바람직하다. 그리고 내것으로 만든 표현을 주고 받으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보면, '내것'이 올바른지 그른지도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내것'을 많이 쌓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책들, 즉 <고전>을 읽어야 하는 법이다. 동시대 뿐만 아니라 수세대에 걸쳐 오랫동안 '검증'해온 책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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