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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tas
- 작성일
- 2024.3.6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글쓴이
- 카를로 로벨리 저
쌤앤파커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통해 처음 접한 그의 생각과 이론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정말 단순 명료하면서도 핵심만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설의 대가가 구사하는 그런 편안하면서도 생각을 자극하고 일깨워주는 가르침이 있는 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그가 쓴 책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그에게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쓴 책은 굉장히 난해한 내용들입니다. 책 몇권을 읽었다고 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부가적인 공부를 해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상대성 이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니 더욱 그랬습니다. 물론 이 두 이론은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론도 아니기에 하나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다른 이론이 필수인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두 물리 이론은 서로 맞닿아 있는 측면이 있고 상호 보완적인 요소와 비교적인 요소가 있어서 하나를 알고 있다면 그 다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기에 저는 두려움과 부족함으로 항상 그의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번 책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과학서이면서 철학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서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아마 저와 비슷한 느낌을 느끼셨을 겁니다. 근데, 이번 책은 조금 더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좀 더 천착하자면 불교철학과 가깝다고나 할까요. 책의 앞부분에는 양자역학이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얼마전 영화로 개봉했던 오펜하이머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분자의 이동에 관한 설명들은 단순명료해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불규칙적인 분자의 이동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단초로서 받아들이고 넘어갔습니다. 솔직히 그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던 책은 서서히 그 설명을 철학으로 확장합니다. 비유를 철학적인 설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 자체가 기존의 과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고 소위 말하는 분자의 '점프'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기존의 과학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현상을 계속해서 기존의 이론으로 증명하려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것을 새로운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이 바로 과학적 발전이고 진보라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현상들을 좀 더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과학적이론이 부족한 제가 감히(?) 카를로 로밸리의 책을 계속해서 읽었고 이 책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읽은 이유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사고가 나의 존재를 어떻게 재정립하는지 또 내 생각을 어떻게 확립해나갈 수 있는지 알면 나의 미래가 좀 더 좋은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런 마인드로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게 바로 '관계' 입니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가 그 대상이 되는 원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관찰합니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고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면 이렇게 행동하고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저렇게 행동하고 말입니다. 나 자신은 특정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정화된 건 아니잖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나는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잖아요. 이처럼 양자역학도 각각의 원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원소와 만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반응들이 나타났고 그걸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이론 즉 관점이라는 겁니다.
앞서 이 책이 과학서이면서 철학서같다고 말했는데요. 프톨레마오스, 갈릴레오, 뉴턴, 슈뢰딩거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과학(역)사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이 제시했던 공통된 이론과 차별화된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이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과 과거의 이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낡은 이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양자역학과 더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말해줍니다. 물론 해석의 차이이겠습니다만,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우리 세상은 양자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고 우리 인간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그걸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인식해서 살아왔고 결국 다시 양자역학으로 회귀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또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착오(각)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존재하고 그 과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가장 진보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와 세상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그 기반이 바로 양자역학이라는 말입니다. 현재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글로 어설픈 저의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제가 좀 더 갈무리해서 적어보면, 이 이론에서 나온 세계관에는 당황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가 사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낡은 편견임을, 더 이상 우리에겍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수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어떠세요? 저는 이 말이 이 책을 읽을 이유와 읽고 나서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 더 들어보면 책의 첫머리와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의 말입니다.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거야."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희미하게 들립니다. 또 보입니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전 봄이 오히려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사계절이 모두 책읽기에 좋은 계절 같습니다. 전 이 책을 덮고 또 가까운 시일내에 다시 펼쳐 읽으려 합니다. 처음 읽은 것처럼,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는 것처럼. 그렇게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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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