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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i
- 작성일
- 2024.3.13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 글쓴이
-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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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가장 끔찍한 기억은 낯선 남자가 내가 살던 건물 공동현관을 뚫고 들어왔던 일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건물에 거의 다다르자 비로소 안심하고 공동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여기 사세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보니 웬 남자가 따라들어와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하니 “저도 여기 살아요.” 라고 했다. 거짓말! 그 건물은 여자만 사는 건물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끼쳐서 가방 속 아무거나 집어들고 남자와 대치하고 섰다가, 잠시 남자가 한눈 파는 사이를 틈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경찰을 불러 그 남자는 경찰에게 끌려갔는데, 나중에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한다는 말이 ‘자꾸 힐끔거리고 눈이 마주쳐서 같이 술이나 마실까 하고 따라왔다’고 했단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지는 재미로, 흥미로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그날부터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고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일은 몇 년 뒤 직장 상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외근을 나갈 때 벌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끔찍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너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그러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아무도 못 믿겠고요.” 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상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허우대 멀쩡하면 잘해보지 그랬어~”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웃긴 건 그 상사는 여자였고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과연 본인이,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원제는 ‘드라마 퀸(Drama Queen)’이다.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의미인데, 여성들이 느끼는 정당한 감정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차별적인 발언이나 정당하지 못한 대우에 화를 내면 드라마 퀸이라고 놀리는 식이다. 왜 권리를 찾고 내 목소리를 내는 일로 비난받고 놀림받아야 하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글로벌 인플루언서인 저자 타라-루이제 비트베어는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다양한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인내를 학습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꼬집는다. 무언가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실제 우리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되는데,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편향’ 또는 ‘인지 왜곡’이라고 부른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자리잡은 여성혐오가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셈이다.
저자는 말한다. 가부장제 담론 아래 여성들은 줄곧 억압 속에 살았다고. 여성은 거절할 때도 남성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해야만 했다고. 왜냐하면 최악의 경우 거절의 대가는 목숨이 되기도 하니까. 도대체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우리는 거절하는 행위 그 자체마저도 두려워하게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저자는 여성 혐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여성에 대한 내러티브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란 역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진정 해결책은 없는 걸까?
책을 읽는 동안 명백하게 드러나는 여성혐오보다 일상 속에서 은연중에 나타나는 여성혐오가 그야말로 ‘수도 없음’에 당황하고 놀라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여성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방법은 사회가 만든 정형화된 여성이 아닌 ‘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편함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용기, 부당함에 참지 않는 용기가 모인다면 어쩌면 내 다음 세대쯤에는 이 만연한 여성혐오가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나도 저자처럼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위축되지 않고 계속 피곤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더는 ‘드라마 퀸’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끼쳐서 가방 속 아무거나 집어들고 남자와 대치하고 섰다가, 잠시 남자가 한눈 파는 사이를 틈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경찰을 불러 그 남자는 경찰에게 끌려갔는데, 나중에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한다는 말이 ‘자꾸 힐끔거리고 눈이 마주쳐서 같이 술이나 마실까 하고 따라왔다’고 했단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지는 재미로, 흥미로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그날부터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고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일은 몇 년 뒤 직장 상사와 함께 택시를 타고 외근을 나갈 때 벌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끔찍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너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그러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아무도 못 믿겠고요.” 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상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허우대 멀쩡하면 잘해보지 그랬어~”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웃긴 건 그 상사는 여자였고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과연 본인이,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의 원제는 ‘드라마 퀸(Drama Queen)’이다.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의미인데, 여성들이 느끼는 정당한 감정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차별적인 발언이나 정당하지 못한 대우에 화를 내면 드라마 퀸이라고 놀리는 식이다. 왜 권리를 찾고 내 목소리를 내는 일로 비난받고 놀림받아야 하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글로벌 인플루언서인 저자 타라-루이제 비트베어는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다양한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인내를 학습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꼬집는다. 무언가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실제 우리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되는데,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적 편향’ 또는 ‘인지 왜곡’이라고 부른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자리잡은 여성혐오가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셈이다.
저자는 말한다. 가부장제 담론 아래 여성들은 줄곧 억압 속에 살았다고. 여성은 거절할 때도 남성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해야만 했다고. 왜냐하면 최악의 경우 거절의 대가는 목숨이 되기도 하니까. 도대체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우리는 거절하는 행위 그 자체마저도 두려워하게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저자는 여성 혐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여성에 대한 내러티브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란 역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진정 해결책은 없는 걸까?
책을 읽는 동안 명백하게 드러나는 여성혐오보다 일상 속에서 은연중에 나타나는 여성혐오가 그야말로 ‘수도 없음’에 당황하고 놀라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여성으로 바로 설 수 있는 방법은 사회가 만든 정형화된 여성이 아닌 ‘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편함에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용기, 부당함에 참지 않는 용기가 모인다면 어쩌면 내 다음 세대쯤에는 이 만연한 여성혐오가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나도 저자처럼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니?’ 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위축되지 않고 계속 피곤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더는 ‘드라마 퀸’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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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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