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씨의 책
힐씨쨩
- 작성일
- 2024.4.26
빅 픽처
- 글쓴이
- 더글라스 케네디 저
밝은세상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월가에서 일해 온 아버지의 강요로 로스쿨을 마친 주인공 벤은 월가의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고액의 연봉, 아름다운 아내, 사랑스러운 두 아이, 교외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멋진 집 등 성공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즐겁지 않다. 어린 시절의 꿈은 고가의 카메라와 촬영 장비들을 사들이는 호사스런 취미로 전락한지 오래다. 게다가 아내와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결국 아내가 이웃의 사진작가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추궁하던 중에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이웃 남자를 살해하고 만다. 그가 주인공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꿈꾸던 일을 하나로 합치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말에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2부에서는 벤이 두려워하며 죽음을 각오하는 등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웃남자인 게리의 시체를 처리하고, 자신의 죽음을 꾸며내고, 먼 곳으로 떠나 이웃 남자로 대신 살기로 하는 과정이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게리 서머스다. 나는 사진 작가다.'(p267)
3부의 도입에서 묘사된 모습은 구판 표지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샤워를 했지만 면도는 하지 않았다. 수염으로 조금이나마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야구 모자를 썼다." (p271) 구판 표지의 남자는 문장 속 얼굴이 그려진 사진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변호사로 일했던 시절에 입었을 정장과 사진 속 야구모자가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진을 들고 있는 손의 핏자국이 의미심장했던 표지였다. 구판표지가 직관적이라면 새로 리뉴얼된 표지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지다. 주인공이 3부에서 머물게 된 장소인 마운틴폴스에서 우연히 찍어 유명해진 산불 사진을 메인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와 모자를 쓰고 베낭을 메고 있는 남자의 뒷 모습이 배치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타고 있는 것은 산이 아니라 정장을 입은 남자의 사진이다. 변호사인 벤의 삶을 지워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계곡을 바라다보며 내가 농담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에 젖어 들곤 한다. - p492
500여페이지의 장편이지만 사건의 전개가 빠른 편인데다가, 지루할 틈이 없이 흥미진진한 내용에 몰입하여 금새 읽을 수 있다. 살인을 저지른 벤은 과연 범죄를 숨기고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을까? 주인공 벤이 꿈꾸던 삶이 사진작가의 삶인지라 작가는 사진 촬영 및 현상, 인화에 이르기까지 사진 전문가에 필적할만한 지식을 펼쳐보이는데, 주인공이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는 관점들도 흥미로웠다.
와인 한 잔을 더 마시고 인화한 사진을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그 밖에 다른 사진들에는 이전에 내가 품었던 자의식만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섯 장을 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피사체에 사진작가의 시각을 인위적으로 들이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피사체의 얼굴에 집중하고 그 피사체가 프레임을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모든 게 제대로 굴러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p319
소설 『빅 픽처』 는 2013년에 에릭 라티고 감독, 로맹 뒤리스, 마리나 포이스,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의 프랑스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프랑스판 제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L'Homme Qui Voulait Vivre Sa Vie)>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탁월한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책의 장르가 '심리'스릴러로도 분류되기도 하는 이유려나. 문득 헌사 페이지에 발췌된 이솝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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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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