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리뷰

pulchrus
- 작성일
- 2024.5.1
페이스
- 글쓴이
- 이희영 저
현대문학

게다가 ‘이희영’ 작가의 책이잖은가. 이희영 작가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매력적인 작품 ‘페인트’를 시작으로, ‘나나’, ‘보통의 노을’, ‘테스터’, ‘챌린지 블루’, 그리고 최근 읽은 ‘소금아아’와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까지, 매력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이희영 작가는 청소년들의 성장과 아픔, 상처를 다뤄왔는데, 페이스’에서는 작가가 들여다보는 그 깊이와 은유에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페이스>의 주인공 ‘시울’이는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깨닫는다. 자기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시울이의 얼굴을 보지만, 정작 시울이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거울만이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 모두에 해당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안과와 정신과를 다니지만, 시울의 증상은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시울이는 큰 결심을 한다. 딱 한 사람만 속이자고. 그건 바로 자신이다. 이때부터 시울은 자기 얼굴이 보이는 척하며 살아간다.
시울이는 매일 아침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그 얼굴은 매일 바뀌는 바탕화면, 만화경, 현대미술, 자연 경관이다. 딱 얼굴만 뭔가 이상한 것으로 보이는데, 하루는 예술작품이었다가, 폭풍이 치며, 모자이크였다가, 낙엽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한다. 어떤 패턴이 있지도, 기분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랜덤이다. 그러나 오늘 내 얼굴이 어떠냐는 시울이의 질문에, 남들은 거울 보면 알 거 아니냐고 쉽게 얘기하지만, 시울이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 척 살아간다.
그런 시울이에게 작은 사건이 하나 생기는데, 묵재가 던진 농구공이 머리를 쳐서, 사물함에 이마가 찢어지는데, 스무 바늘이나 꿰맨다. 꽤 응급상황이었고 흉도 진다고 하는데, 며칠 후 시울에게 엄청난 일이 생긴다. 얼굴은 늘 그렇듯 수묵화지만, 밴드를 떼어낸 자리에 남은 흉터만은 또렷히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흉터만 선명이 보인다니!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청소년 시기에 경험하고 고민할, 자아에 관한 깊이 있는 암시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얼굴을 들여다 봐도, 정작 봐야 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우리가 타인을 볼 때 얼굴 너머의 것을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또 타인에게서 타인의 얼굴이 아닌 우리의 얼굴을 발견하면서, 타인을 나의 타인으로 대하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이 암시는 무척 적절하다.
사람은 상처로 성장한다. 새겨진 흉터가 우리의 진짜 모습이며,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이 우리를 만들어간다. 상처와 흉터, 고통과 아픔은 하얀 도화지에 뜬금없이 떨어진 먹물 한 방울, 물감 한 조각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옅어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색깔로 서서히 채워야 할 뿐. 행복과 따뜻한 관계로 칠할 때, 상처는 비로소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 그곳에 함께 있음을. 그리고 함께 성장할 것임을.
설정의 재미보다 더 큰 상징과 의미가 숨어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들에게 읽고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선물할 거라 생각한다. 함께 읽는 어른이 있으면 더 좋을 작품이다. 그 사람이 부모이면 더 좋겠다.
2024.05.01
#페이스
#이희영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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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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