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ㄴ아무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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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아무튼, 헌책
글쓴이
오경철 저
제철소
평균
별점9.3 (8)
흙속에저바람속에
그러거나, 헌책(방)
<아무튼, 헌책>을 읽고


  어느새 온라인 ‘중고’서점도 굵든 얇든 나름의 뿌리를 내린 터라, 요즘은 헌책방을 갈 일이 거의 없다. 수능시험을 치르자마자 (앞에 몇 단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깨끗한 『수학의 정석』과 『성문 기본영어』를 들고 처음 헌책방을 찾았고, 아내의 생일선물로 김영희 작가의 『마스카』, 이소영 작가의『모델』 등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 골목을 누볐던 게 마지막으로 기억한다. 헌책을 읽는 것과 헌책을 좋아하는 것은 같은 쪽을 향하고 있지만, 헌책을 읽는 양이나 좋아하는 정도는 저마다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헌책을 대하는 다독가와 '애서가'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다독가보다 애서가로 여기는 한 사람이 독서가 아닌 '수집'의 대상으로 '헌책'을 좋아하고 사랑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헌책이 되고야 마는) '새책'에 담아내었으니, 바로 <아무튼, 헌책>이다.
  헌책에 관한 책이라 그런지 책을 읽기 전부터 체크(check)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 정확히는 엉뚱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과연 저자는 이 책이 독자에게 (새책으로 가닿기 바라겠지만) 헌책으로 읽혀도 괜찮을까. 아무튼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난 헌책(중고)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새책으로 구했음을 밝히는 바이다. 무릇 어떤 물건이든 새것과 헌것의 경계는 모호한 법인데, 새책은 어느 순간부터 헌책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그러거나(라는 단어가 글과 글 사이에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인지하고 있으려나. 나에게 ‘그러거나’는 ‘아무튼’으로 읽힌다) 글쓴이는 계속해서 자신으로 하여금 헌책을 고르고 사들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이러한 행위 자체가 자기 삶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궁리한다.
  저자는 책의 내용보다는 외적인, 곧 작가와 책에 얽힌 '서지적(書誌的)'인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갖고 헌책을 수집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기준이 굳게 선 건 아니다. 고교시절, 숨막히는 학교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우고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던 곳이 다름 아닌 헌책방일 정도로 헌책이라는 사물보다는 헌책방이라는 공간을 헌팅하는 데 몰두했다. 대학에 가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젠틀 매드니스(Gentle Madness)', 즉 책에 '곱게' 미친 사람들의 존재를 깨닫고부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책방과 헌책 둘 다에 중독되어 '단단히' 미쳐 가는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토록 헌책방을 드나든 시간과 노력은 헌책을 바라보는 저자의 안목으로 자라났다. 살 만한 헌책을 알아보는 눈보다 사들이지 말아야 할 헌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길 바라 마지않으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헌책을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인연이 다한 책을 팔지 않고 쿨하게 버렸다는 어느 작가의 결단이 그저 부럽지만, 저장공간의 압박과 불시에 고개를 드는 '책 싫어증' 때문에 그는 책을 내다 파는 일을 멈출 수 없다. 헌책을 팔고 받은 돈으로 다른 헌책을 사거나 술을 사 마시면서 팔아버린 책들을 잊었다고 덧붙인다. 조선 최고의 책벌레로 불린 박제가가 『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은 뒤 유득공을 찾아가자 유득공이 『좌씨전』을 팔아 그에게 술을 사줬다는 일화는 예나 지금이나 헌책 애호가의 습관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그는 과거에 가지고 있었거나 현재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또 사들이기도 한다. 특히 그에게 초판본(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판 1쇄본)은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책 중 하나다. 그 역시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속물이라고 부르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역설적이지만 책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책을 모을 수가 없다.(116쪽)"고 자기를 변호하는 그를 보면서 독자의 책꽂이에도 읽은 책보단 그렇지 않은 책이 더 많다는 사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해주는 작가들을 소환시킨다. 이를테면 "책의 정말 중요한 기능은 전시되는 것이다. 꽂혀 있는 것. 왕궁의 근위병처럼, 놀이동산의 꽃시계처럼, 책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117쪽)"는 소설가 김영하,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언젠가 읽게 될 책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죠. 서재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죠. 그것들을 영원히 못 읽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119쪽)"라고 말하는 움베르트 에코가 그들이다.
  여기서 저자를 포함한 애호가에게 헌책은 취미 생활의 대상이지만, 그것을 사고파는 헌책방 주인에게는 생계의 문제라는 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헌책이 새로운 주인에게로 가기 전까지는 모두 헌책방 주인의 소유물, 재산, 장서(藏書)이기에 대개 헌책방 주인들이 다가가기 힘든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어느 일본인 작가의 관찰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헌책방에 손님이 드나들거나 헌책의 값을 매길 때 그곳 주인의 표정이 무심해 보인 까닭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또한 「목마와 숙녀」를 쓴 박인환 시인이 서점도 경영하면서 구입한 책마다 표지나 비닐커버를 씌웠을 만큼 헌책을 새책처럼 대우했다는 일화는 헌책방 운영자로서의 태도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커버(덧싸개) 얘기가 나온 김에, 아무튼 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커버를 씌운 책이 <아무튼, 헌책>임을 독자들은 알고 있는가. 북디자이너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보자면, 비록 헌책을 주제로 한 책이지만, 박인환 시인의 마음을 받들어 독자들에게 언제까지나 새책으로 남기를 바라며 제작한 건 아닐까 싶다. 그러거나 앞으로 출간될 다른 책에도 적용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제는 헌책의 조건을 갖춘 책을 덮고 나니 마치 헌책방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나온 기분이 든다. 저자가 '책속의 책'과 같은 구성으로 현재와 과거의 유명 작가들과 그들이 남긴 책들을 넘나들면서 헌책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연결지어 글을 펼쳐나간 덕분이리라. 헌책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나아가 그 삶을 얼마나 넉넉하게 변화시키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혹시 저자처럼 헌책(또는 어떤 사물) 수집가임에도 어째서 본인이 그것을 좋아하고 수집하는지 모르거나 자문했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면 이에 대한 작고도 큰 영감을 전해줄 이 책을 헌책(獻策)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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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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