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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社會/環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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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글쓴이
박상현 저
어크로스
평균
별점8.6 (68)
waterelf

오래된 편견 하나, 주머니[pocket] 


주머니(pocket)가 성차별의 상징이라고?

요새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요즘 나오는 남자 와이셔츠도 주머니가 없어지는 추세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주머니가 성차별의 상징이라는 얘기는 서양의 얘기다. 중세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옷에 주머니가 붙어 있지 않고, 남자는 허리띠에 가깝게 주머니를 차고, 여자는 주머니를 다리 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남성들이 참여한 전쟁과 스포츠 같은 활동을 염두에 두고 남자 옷이 몸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전과 달리 통으로 된 치마 형태에서 두 다리를 따라 감싸는 ‘바지’의 등장이 이를 상징한다. 16세기에 이르면 남자 옷은 바지 안쪽에 주머니가 부착되는 방식, 구체적으로 다양한 물건을 넣고 꺼낼 수 있도록 바지와 재킷 곳곳에 주머니를 붙이는 형태로 진화했다. 반면에 여자 옷은 치마 안쪽에 천 주머니를 매다는 방식을 취했다. 19세기에 여성의 드레스 패션이 바뀌면서 치마 안쪽에 주머니를 매달 공간이 사라지고, 대신 여성 핸드백의 효시라고 불리는 레티큘(reticule)이 등장했다.

이러한 의상의 변화 과정에서 주머니는 남성의 실용성과 호기심의 상징처럼 묘사되기 시작했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않는 한 주머니를 가질 수 없었다. 이는 주머니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 사회의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

~ 중략 ~

주머니가 없는 여자의 옷은 여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게 주머니 문제의 핵심이다.



친애하는 슐츠(Schulz)씨 


20세기 미국 최고의 인기 만화가 찰스 슐츠(Charles Schulz, 1922~2000, 이하 ‘슐츠’)가 자신의 만화 <피너츠(Peanuts)>를 통해 편견을 깨왔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의 <피너츠>는 인종분리 정책이 합법이었던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했고, 따라서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을 다루는 만화에 백인들만 등장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헤리엇 글릭먼(Harriet Glickman, 1926~2020)의 호소에 응답, 흑인 아이 프랭클린 암스트롱(Franklin Armstrong, 이하 ‘프랭클린’)이 등장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를 ‘토큰 블랙(token black)1)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흑인을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나 범죄자로 묘사하던 당시를 감안하면 ‘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장면에 흑인 아이가 끼어 있게 되면 훗날 흑인 아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날이 온다 해도 이를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흑인이 여분의 캐릭터로 등장할 때는 대개 교도소 같은 불행한 상황입니다. 흑인들이 평범하게 생활하고 사랑하고 걱정하고 호텔이나 회사 건물의 로비에 들어가는 모습,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는 풍경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화와 TV, 잡지, 만화 같은 업계에서 이렇게 묘사하는 습관은 교활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즉, 슐츠는 프랭클린이라는 여분의 캐릭터를 통해 백인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흑인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와 같은 인종에 따른 편견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는 교조화된 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처럼 노골적으로 ‘편견 극복’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지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이는 <이솝 우화>에 실린 ‘해와 바람’ 이야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나그네의 겉옷을 벗긴 것은 따사로운 햇살을 비추기만 했던 해라는 것을.

슐츠는 인종문제만 아니라 남녀문제에도 관여했는데, <피너츠>에서 가장 운동을 잘하는 ‘페퍼민트 패티(Peppermint Patty)’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여자아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자연스럽게 지지했다. 심지어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 1943~ )이 제안한 여성 스포츠 재단의 이사를 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 슐츠는 자기 남편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여성들이 불평을 하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지, 남성들이 준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본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이 말했듯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니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어크로스’로부터 무료로 도서(가제본)를 받았습니다


#어크로스 #서평단 #박상현

 

1) 토큰 블랙(token black): 대부분 백인인 등장인물 사이에 형식적으로 넣은 흑인 조연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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