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부터 쭉 읽고 있어요

꿈에 날개를 달자
- 작성일
- 2024.5.29
안티 사피엔스
- 글쓴이
- 이정명 저
은행나무
평소 큰 녀석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큰아이와는 어떤 주제로든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냉정하고 냉철한 분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에게 얼마 전 나는 말했다. 혹 엄마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엄마의 의사대로, 그리고 평소 엄마가 얘기했던 대로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가능하면 내가 살았던 흔적을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죽음이 다가온다면 미리 흔적 지우는 일을 할 것이고, 화장하면 납골당보다는 바다에 뿌려주면 좋겠다. 세상에 미련하나 없이 사는 동안 열심히 사는 것. 나는 이런 생각인데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을 것. 내가 죽어도 내 생각 그대로 할 수 있는 AI가 있다면 그건 축복일까 재앙일까?
뛰어난 IT 기술자이자 사업가. 남편은 뛰어나고 유능한 사람이지만 말기 췌장암이다. 의사는 18개월 정도 남았다고 말한다. 아내 민주는 남편을 살려내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연구실에 처박혔다.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마인텔 시리즈를 뛰어넘는 차원이 다른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리고 남편은 사망했다. 남편이 사망하고 6년이 흐르고 아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거액의 유산은 포기했지만, 남편과 함께 살던 집을 포기할 수 없어 이곳에 산다. 그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죽은 남편의 서재 전등이 켜져 있는가 하면 시키지 않은 피자가 배달되기도 한다. 집 안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전남편의 흔적들. 전남편이 비밀로 개발한 자가 학습 프로그램과 인간의 두뇌를 연동시키는 인지 혁명. 남편의 모든 기억과 회상, 사고가 그가 개발한 인지 시스템 앨런에게로 향하고 앨런은 남편 케이시 안에 내재되어 있던 원초적이 악까지도 학습하게 되는데...
앨런의 문제 해결 능력은 지적으로, 경험적으로 나를 압도했다.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했고, 나보다 먼저 결과를 예측하는가 하면 내가 스쳐 간 구절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했다. (147)
의식만 존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길가에 존재하는 돌멩이만큼이나 무의미해. 육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의식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도구야. (150)
세상에 얼마나 미련이 있으면 죽어서도 자신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걸까? 육체는 사라졌지만, 의식, 정신은 그대로이며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누군가를 고용할 수도 있다니. 내가 몰랐던 심연 저 깊은 내 안의 악마저도 일깨울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원초적인 ‘악’을 표현하며 사는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나 학습을 통해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 안에 ‘악’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극단적인 일이 발생하면 내가 몰랐던 다양한 감정이 깨어나기도 한다. 살면서도 몰랐던 내 안의 나. 그걸 AI가 깨운다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죽었지만 죽지 않은. 육체만 없을 뿐 기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는 건지.
신작으로 돌아온 이정명 작가의 책. 상상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인간의 무서운 욕망과 과학 기술이 만나면 어떤 것이 생성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선한 영향력이 선한 마음이 충만한 미래를 꿈꾸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세상은 올 것 같지 않다.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탐하고 욕심을 내는 건지. 이런 미래가 오기 전에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과연 ‘미래는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은 없는 걸까’를 생각하게 되는 소설.
- 좋아요
- 6
- 댓글
- 1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