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날來

싱긋
- 작성일
- 2024.6.30
행복의 기원
- 글쓴이
- 서은국 저
21세기북스
인간이 현재 가진 신체적 모습과 생각, 감정. 이는 우연히 갖게 된 특징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모두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보유하게 된 특성이다... 행복에 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왜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가? ... 특히 행복은 ‘비움’ ‘감사’ ‘느림’이라는 공허한 지침들에 지친 이들과. [곰곰이 긴히 생각해보고자 한다] (69-70)
◎생존이 되려면 사회학보다는 생물학에 가까워야 해서 이해에 혼선을 빚을 수 있겠다. 진화생물학의 경계 자체가 연계 학문이라 인간은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존 기계’라고 외치는데도 문학 전공자인 나는 딴생각이 끼어든다. 수학을 못해 생물학을 택하고, 수학이 싫어 건축학을 택하는 차선책이 자구책이 되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그 길에서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교육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는 듯하다.
흥미-진진한 3장에 비해 다소 힘빠지는, 장맛비에 식은 아스팔트 같은 4장이다. 하우! 어떻게에 치중하던 심리학이 이제 와이? 왜냐고 묻기 시작했다. 할 말 없을 줄 알았는데 거니 땜에 머리에 스파크가, 끊겼던 시냅스까지 붙네 붙어. 내가 당신 땜에 모르고 싶었던 암흑세계를 많이 들추고 알게 된다. 위험 경고등, 아직 안 켜졌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70)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조형shaping’이라는 원리를 이용해 비둘기가 탁구를 치고, 개가 피아노를 치게 만든다. (72)
◎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덕분에 인간은 생물학적 생존 기계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십년 전과 일반인의 이해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체감하시는지 궁금하다. 말은 이리 해도 인간이 애완견이나 동물 실험에 투입되어 쌍벽을 이룰 때 당황하고 곤욕스럽다. 늑대에서 스누피까지 개보 ㅋㅋ 어, 나 동물! 인정 힘드러. 애써 사회적 동물
그러면 개는 왜 그토록 새우깡을 먹으려고 했을까? 새우깡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먹을 때 개의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혹은 즐거움 때문이다. 개는 이 쾌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새우깡을 계속 원하게 된 것이고, 그 과정의 누적이 (훈련대로) 서핑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한마디로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강화물’)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쾌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 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력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했다. (73-74)
◎이렇게 한국인의 최애 과자를 보내버리십니까. 새우깡은 죄가 없당. 행복감도. DNA 캐리어. 이 말 유 작가가 했던가요, 가물가물ㅋ 나도 비위 마니 조하졌네, 새우깡 안 먹겠다는 소리 안 하는 걸 보니. ‘월간김어준’의 가발 절대주의도 배꼽 빠지지만 주얼리 편도 자막과 이미지 제공해 둘리의 짝 줄리의 쇼핑 쾌감과 흑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다시 봐도 재미짐
내가 하고픈 말은 동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다. 새우깡에 ‘아 좋아, 행복해’ 하는 중독증 환자들은. 원래 필 굿~은 좋은 감탄사인데 “완전 굿”은 짱나. 저 빕스가 유전자는 남기지 않아 다행인가 싶다가 패밀리 조작단이라 에휴 한다. DNA 본투비 난ㄴ. 걸쳤던 빽-들이 생존 유지에 알맞춤인거니.
나이테를 사랑한 남자의 말로 ㅜㅜ 다른 서사 리플레이 절실. ‘낚시아카데미’도 물비린내가 아닌 술 술~ 이 화면 뚫을 태세라.. 새끼 경고. 천박하고 저질의 퉁수권자 만나 요즘 새끼 베이비들 수난시대다. ♪ 사랑이 술을 가르쳐
지금까지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포함해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을 너무 로맨틱하고 관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이런 ‘행복 신비주의’가 탄생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그는 행복이 최상의 선이라고 규정하고 존재의 최종적인 이유와 목적이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상당히 인간 중심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아아- 주목. 인간과 벌, 특히 인간. 모든 생명체의 최종 목적은 행복도 꿀도 아니란다. 오직 하나, 생존이다.” // 그렇다.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선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것을 행복과 연결시키면 당연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75-76)
◎왜 자꾸 물어, 행복감은 다 “생존, 그리고 번식”을 위함이라니까. 저자는 스티븐 호킹의 확성기를 빌려 와 공표한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생존”입니다. 행복이 생존을 위한 정신적 도구라는 거 이제 안으세요.
실수로 쥐 뇌의 시상하부를 미세한 전극으로 자극했는데, 이후 쥐들은 이 자극을 받았던 장소로 계속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곳에서 뭔가 대단히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상황을 다시 분석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쥐들이 되돌아가려는 그 장소에서 뇌의 ‘쾌감센터pleasure center’가 우연히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모든 동물의 뇌가 가진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쾌 혹은 불쾌의 경험을 즉각적으로 구분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이 느끼는 쾌감은 뇌의 여러 부위가 만들어 내는 합작품이지만, ○역시 시상하부가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쥐와 마찬가지로 쾌감과 연합된 경험을 기억 속에 확실히 남겨 놓는다. 첫사랑, 그때 그곳, 그 맛을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든다. 나의 쾌감전구를 켜는 것 중 하나는 평양냉면이다...
쾌의 느낌에 우리가 붙이는 명칭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기쁘다, 재미있다, 통쾌하다, 즐겁다, 신난다, 좋다...... 그러나 모두 쾌가 원료인 경험이고, 이들은 행복감의 가장 기초적인 재료가 된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 과녁을 제대로 못 맞히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왜 모든 동물은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나누는 것일까?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다. 쾌와 불쾌의 신호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기회를 포착하도록 응원한다. ○뱀, 절벽, 사기꾼, 썩은 음식, 치명적인 위협들이다. 이때 우리의 뇌는 두려움이나 역겨움 같은 불쾌의 감정을 유발시켜 ‘위험하니 피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감정은 그 어떤 매체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하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위험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비옥하지만 가 보지 않은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이 가득한 벌집. 지금 당장 손에 쥐지 못한다고 실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이런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의욕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따라서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다. 쾌감을 유발하는 정서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 이런 치명적 매력을 가진 경험을 한번 맛보면 또다시 경험하고 싶어진다. ○그것을 유발시킨 모든 사건, 물체, 장소, 사람을 또 찾아 나선다. 올스와 밀너 실험의 쥐들처럼, 스스로 인식하든 못하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장기적인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간단히 요약하면,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 주는 ‘생존 신호들’이다... 행복한 사람은 쉽게 말해 이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자다. 동전 탐지기의 신호가 아무 때나 울리지 않듯 행복 전구도 선별적으로 켜진다. (78-82)
◎그래야 사람이다. 본능에 충실한 사익 집단이 공직을 누비고 있다. 설치류 쥐박이와 화녀의 조합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따로 안 보고 산다면 모르지만 어떤 앎과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저자는 뇌와 행복의 관계를 단백질로 만들어진 동전 탐지기라 한다. 모래 속 금속을 찾아내는 일과 같다 한다. 쾌감센터에 신호 중독이 생기면 교통정리가 안 되면서 자기 새.끼.를 팽개치고 학대를 일삼는다. 주로 시상하부가 지배하며 ‘경험’ 즉, 아는 맛이 쾌감전구를 켜게 한다. 저자의 논지는 행복 과녁을 정조준할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바로 알기.
여사 주위의 나쁜 기운과 흘러내리는 남상이 그의 화기를 미뤄 짐작하게 한다. 동시에 얼마나 ‘강력한 보상’을 누리기에 저럴까 싶다. 비선 실세인 그가 가족의 ‘장기적 생존 확률’을 높일 수를 쓴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고쳐 쓸 수 없는 사람들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데.. 생존 신호등의 적신호를 감지라도 할까. 웃고 있을 것 같은데. 저 ‘팝콘’ 브레인이 과연 실세라면 어떻게든 원씨가 되겠지. 뭐 한씨도 삼각대로 같이 접힐 신세라는 거 아는 사람들은 아니까. 누가 되든 개판일 테고 그래서 개놀이 삼매경 인 지 도.
오늘도 요괴보다 행복합시다, 김태형의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 눈이 가요, 손이 가요. 읽을수록 김경일 심리학자가 좋아한다는 선배 김정운 님과 저자가 어딘가 많이 닮았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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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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