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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선비
- 작성일
- 2024.7.3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 글쓴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저
갈라파고스
"추위란 얄팍한 겉모습에 불과하고, 우리 저 안쪽 알맹이는 여전히 여름이다. 까마귀가 울고 수탉이 홰치는 소리, 등허리에서 내리쬐는 따스한 햇발이 바로 그 여름이다."(p.13)
이 문장 하나를 건진 것만으로 <소로의 일기:영원한 여름편> 책의 소임은 다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글귀다. 추운 겨울 아침에 두텁게 쌓인 눈을 바라보며 '여름'을 기억하다니, 대단한 관찰력과 상상력이 아닌가. 우리라면 추워서 나갈 엄두도 내지 않겠지만, 소로는 겨울 아침 풍경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고 애정있게 표현하며 현존하는 성자처럼 자연과 일상을 누리고 있다.
"밤사이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오전 7시인 지금까지도 내리퍼부으면서 젖은 땅을 10센티 높이로 뒤덮는다. 비 섞인 축축한 눈, 즉 진눈깨비로 거센 북서풍에 휘날리며 나무와 담벼락에 들러붙는다. 이렇게 축축하고 어두운 아침에 세찬 바람을 맞으며 철로를 따라 걸어내려간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폭풍설 한가운데에서도 여느 때보다 밝은 푸른빛이 아른거리며 우리 안에 아직 천상의 빛깔이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p.14)
일기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일기가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소로를 통해 배운다. 일기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소로는 일기에 날씨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을 언어로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애정있게 관찰하며 사색한 결과이다. 날씨에 집중하고 제대로 느낀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순간의 찬란함을 붙잡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상을 찬란함을 아는 사람은 내면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 안에 이걸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자신이 얼마나 뿌듯할까.
나의 일기는 어떤가. 누군가에게 쏟아붓지 못하는 감정을 마구 휘갈려 쓸 때도 많고, 오늘 못한 일을 반성하거나 내일 할 일을 다짐하는 용도로 자주 사용한다. 가끔 감사 제목을 적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도 날씨와 자연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보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이 풍경에 온전히 마음을 쏟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기에도 써볼 생각 자체를 못했다.
나에게 일상이란 무엇인가. 매일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로 구분했고 그 일의 수행 여부에 따라 하루를 평가하기 바빴다. 일상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 중에 오로지 일과 관련된 것만 시선을 두고 있다. 사실 일만 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일상을 돌아보며 일기를 쓸 여력도 별로 없다. 나의 내면은 점점 쪼그라든다. 일상 안에 자연 관찰 일기 쓰기와 같은 이벤트를 넣어야겠다. 한달에 1-2시간이라도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한 줄, 한 문장만 쓰더라도 나를 둘러싼 풍경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소로의 일기에는 가난과 관계에 대한 통찰도 담겨 있다. 자연과 달리 돈과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움과 깨달음이 있고 자기만의 삶의 태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로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월든 호수에서 집을 지어 2여년의 은둔 생활을 한다. 이는 돈과 관계에서 거리를 둔 삶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소로는 이 생활이 "더 높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전한 피조물"로 자라도록 만들고 "값어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삶"(p.237)을 살도록 했다고 강조한다.
"추위에 증기와 물이 얼어붙듯이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가난은 힘과 기운과 흥을 끌어온다. 순결은 천지만물의 영원한 벗이다. 흩어진 안개 같았던 내 삶이 잡풀, 그루터기, 활엽과 침엽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서리가 되었다. 은둔 생활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들 여기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비단결같이 보드라운 막이 번데기를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애벌레처럼 더 높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전한 피조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전에는 어수선하고 아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난이라 부르는 단순함 덕에 마음을 가다듬고 값어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삶을 살 수 있었다."(p.237)
<소로의 일기:영원한 여름편>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일상의 쉼과 사색의 시간을 얻게 된다. 이 책 자체가 일상을 누리는 일이며 가치 있는 일에 힘을 쏟는 게 아닐까 싶다. 자연과 날씨를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과 자신의 신념을 담은 담백한 글귀, 크고 작은 에피소드까지 소로만이 풀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풍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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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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