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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글쓴이
김지원 저
유유
평균
별점7.7 (60)
애기토끼햄져
이번 금서의 부름 과제도서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최신 베스트셀러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별로 치열하지 않은 경합을 벌인 끝에 선정되었다. 사실 몰표였다. 이 책은 도서관에 들어와 있지를 않았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예약이 꽉 차 있어 도서관 서가에 있을 틈도 없었다.

그리고 7월 생일을 기념해서 이북리더기 (오닉스 리프3)를 구매했고, 첫 책으로 이걸 읽었다. 밀리의 서재에 있었다.

책의 첫인상은 '짧다'였다. 손바닥만한 이북리더기 화면으로 읽었는데도 200여페이지에 불과했다. 실제 책으로 보면 더 작았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호흡 역시 굉장히 짧았다. 3챕터와 14 서브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문과 판권장, 참고문헌을 빼고 나누면 한 서브챕터 당 이북리더기 기준 열 페이지를 조금 넘는 것이다. 종이책으로 보면 딱 열 페이지가 될까말까다. 길이라는 요소 때문에 오히려 뉴스레터나 신문사의 오피니언과 같이 느껴졌다. 다만 차이점은 (저자가 말했다시피) 중간에 광고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정말 별 것 없다. '책만이 가치가 있는 텍스트인 것은 아니지만, 책은 집중할 수 있고, 다듬어졌으며, 출처를 명시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인터넷 콘텐츠와 구별된다. 책에 과한 권위를 부여하지는 말되 이것이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는 기회로 삼아라.' 이 외에도 작가로서의 직업병인지 읽기 쉬운 글과 쓰기 쉬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책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신경쓸 만했다. 책은 본질적으로 물리 세계에 존재해서 무게도 있고, 뜯어질 수도 있고, 닳을 수도 있고, 귀가 접힐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과 이웃할 수도 있다. 책상 공간이 허락하는 한 여러 책들을 동시에 펼쳐 둘 수 있다. 인터넷 텍스트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 

작가가 원하는 것은 이 책의 텍스트를 물고 뜯고 자신에 대해 알아내고 텍스트를 박박 닦아 금칠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텍스트 경험을 되돌아보고 자아성찰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밑으로는 다 내 이야기를 다소 두서없이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한창 정신 없을 때, 나의 텍스트 경험은 양극화되어 있었다. 산업공학이나 ESG에 관한 논문과 트위터나 디씨 글만 읽었다. 뉴스 기사도 단순 독서도 거의 없었다.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야 조금씩 독서량을 늘려갔다. 요즘은 뉴스를 많이 읽는데, 그냥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옴니보어라는 툴을 사용한다. 거기에 뉴스를 임포트하면 하이라이트도 칠 수 있고 메모도 할 수 있고 태그도 달 수 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 수시로 뉴스를 읽고 정리한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점은 사실 거의 없었다. 나의 읽기 습관은 1학년 때 대학 역사 필수 교양 시간에 거의 다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채드 덴튼이라는 교수님이었는데, 읽기 과제를 어마어마하게 내 주고 학생들한테 HTML 코딩을 가르치며 매주 리스폰스 페이퍼를 써 내면서도 중간 기말에 이천 단어짜리 레포트까지 요구해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모두 영어였다. 채드 덴튼 교수님이 할 수 있는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시발' 말하지 마세요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꽤 좋아했다. 깊이 있게 자료와 컨텍스트를 파고 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Reading Outside-In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딱히 널리 알려진 개념은 아니다. 다만 책을 읽을 때 표지-인덱스-목차-나가는글과 판권장-서문-결론-각 챕터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각 서브섹션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각 문단의 첫 문장 순서대로 읽으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책은 필연적으로 저자 및 편집자의 사상과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분투한다. 때문에 책의 형식은 내용을 최대한 작가 혹은 편집자의 의도대로 전달하기 위해 섬세하게 짜여진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이것이 양장본인지 문고판인지, 종이의 질은 어떤지도 책의 타겟 독자나 작가의 의도에 대한 힌트가 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나보코프의 롤리타의 표지를 생각해보자. 최초의 출판본은 녹색에 제목과 작가와 출판사만 적혀 있었다. 기하학적인 무늬도 있었다. 이제 롤리타의 표지는 60개에 달한다 (https://lithub.com/the-60-best-and-worst-international-covers-of-lolita/ 참고. 코멘트는 걸러 듣기). 어떤 출판사는 피해자로서의 롤리타에 집중하고, 어떤 출판사는 '섹시한 여자아이'라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험버트 험버트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원본을  따라 타이포그래피 표지를 제공하는 출판사들도 있다. 이 다양한 표지들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시도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떠들 수 있을 것이다. 
인덱스는 키워드를 파악하는 데에, 목차는 이 글의 흐름을 예상하는데 중요하다. 이것은 전자책의 세계에서도 비슷하다. 나가는글과 판권장, 그리고 서문만큼 이 책이 쓰여진 혹은 출판된 배경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이러한 컨텍스트는 독자의 이해와 책의 가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김동인의 감자가 1925년이 아니라 2025년에 쓰여졌다고 하면 그것은 퐁퐁을 찾아 헤메는 펨코문학과 크게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본문을 읽으면서는 질문을 하면서 읽으라고 했었다. 질문은 육하원칙부터 시작한다. 왜 이 인물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사진이 포함된 경우 누가 이 사진을 찍어서 어디에 보낸 건지... 이런 질문을 하고, 시간을 내서 최대한 답변을 찾아 보면 프로파간다 너머의 진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독해법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도 적용할 수 있고, 특히 예술영화나 역사영화에 효과적인 것 같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방식으로 읽으면 굉장히 빠르게 진상에 도달하고, 또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영화이다. 저 벽은 무엇이지? 왜 꽃을 열심히 기를까? 나치 독일 군인이 동물과 식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열화상카메라를 썼지? 영화를 보면서 잔뜩 질문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아마 인터넷에서) 찾으면 그게 영화 평론이고 해석이고 독해이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고 오로지 덴튼 교수님만이 보여주는 기기묘묘 텍스트 강독의 세계에 빠져서 나는 2021년 1학기에도 그의 강의를 듣게 됐다. 2021년 2학기에도 듣고자 했으나 강의가 없어서 대신 스타일이 비슷한 (엄청난 양의 텍스트와 4번의 짧은 에세이와 한 번의 파이널) 한국 경제사 강의를 들었다. 방금 검색해봤는데 덴튼 교수님 21년 12월에 1학기 때 수업했던 비시 프랑스를 주제로 논문 하나 내셨더라. 기말 에세이 주제를 뭐 비시 프랑스의 이중사고 같은 걸 주나 싶었는데 교수님도 그걸로 에세이를 쓰고 계셨던 거였다. 다 옛날 일이지만...

그리고 방금 내가 3년 전에 쓴 글들을 읽었는데 그때가 더 똑똑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관해서, 일반적인 대화 맥락에서 꺼내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수 있는 주제에 관해서, 조금은 반사회적인 의심을 담고 컨텍스트와 콘텐트를 분석하고, 세계의 석학들이 남긴 과거의 유산이 왜 지금은 맞지 않는지를 따지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니까 잘 쓴 것이다. 5년 전에 쓴 글은 끔찍했고, 고등학생 때 썼던 글들은 힘있고 거칠고 생동감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읽기 쉽게 쓴 글은 아니었다. 그리고 뭔가 둔하다. 인사이트는 좋지만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가 조금 알기 어려웠다. 사람이 발전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금서의 부름 친구들이 자신의 읽기/쓰기 역사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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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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