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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mang
- 작성일
- 2024.8.22
글자들의 수프
- 글쓴이
- 정상원 저
사계절
<글자들의 수프>. 셰프만의 감성이 담겨 있는 듯한 제목에 눈이 갑니다. 정상원 셰프가 정성껏 끓여낸 따뜻한 문장이 담긴 독서일기이자 맛있는 음식을 위한 셰프의 탐독 일기를 담은 책입니다. 다양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 조리법과 식재료에 대한 해설을 담았죠.
탐식 본능을 자극하던 셰프 정상원이 이제 작가 정상원이 되어 탐독 본능을 일깨운다. 셰프의 손에 책이 들리니 놀라운 탐독의 세계가 펼쳐진다. 세상에 이런 금손이 또 있을까. 정상원의 손을 스친 책은 아름다운 요리가 되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무의미했던 단어들이 문법에 맞게 배열되어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되듯, 레시피는 식재료를 개연성 있게 줄 세워 원하는 맛으로 엮어냅니다. 소금과 후추 같은 향신료는 단어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조사처럼 적절한 위치에 콕 들어가 맛의 의미를 단단하게 연결합니다.
P. 5
잘 구워진 요리에서 느낄 수 있는 육즙처럼, 정성을 다해 끓인 수프의 문맥에서는 다정한 향기가 난다고 말하는 작가님. 과연 이 책에는 어떠한 향기가 날까 궁금해집니다. 매일 밤 시, 소설, 철학 역사를 탐독하며 독서일기를 썼던 작가님의 기록을 살포시 열어봅니다.
정상원 작가님 & 셰프님
2018년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프렌치 레스토랑의 셰프였으며, 현재는 ‘맞는맛연구소’ 소장으로서, 국내외 음식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문장을 맛으로 표현한 〈기억의 도서관〉, 화가의 작업을 셰프의 조리법으로 재해석한 〈셰프의 아틀리에〉, 영화 촬영 기법을 통해 맛을 전달한 〈클리퍼를 든 셰프〉 등 여든 번의 문화예술과 연계된 코스로 호평을 받으며 미쉐린가이드, 블루리본서베이, 저갯서베이 등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다양한 지면의 칼럼니스트이며, 《탐식수필》의 저자입니다.

셰프이자 작가로서 글을 담다
유년시절부터 독서가이자 요리사였던 정상원 셰프님은 맛있고 화려한 음식을 뛰어넘어 요리에 인문학의 향기를 입혀 명성을 날렸습니다. 라면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항상 벌크 포장의 라면 스프가 있었고, 그 라면 스프로 음식의 간을 맞추던 소년은 수많은 책을 읽으며 과학과 문학 사이를 탐험했고 어른이 되자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억의 도서관’ ‘셰프의 아틀리에’ ‘클리퍼를 든 셰프’ 등 책, 그림, 영화를 접목시켜 양식 코스 메뉴를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정상원 셰프님은 요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과 제철 식재료에 대해 우리가 알기 쉽기 설명하면서, 해당 작품의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식재료는 물론 서양 식재료와 와인, 맥주까지 말이죠.
하지에 맞춰 수확하는 이 아름다운 감자 품종은 수미(秀美)다. 감자를 강판에 간다. 전분의 찰기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반죽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길이 제일 잘 든 팬을 잡는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아주 얇게 첫장을 부친다. 소금을 염 상태로 팬 위의 반죽에 뿌려야 짠맛이 재료에 천천히 물들며 바다의 함미를 퍼트린다. 소금이 얼룩진 감자전의 맛은 견고하다. 가녘은 모시 적삼의 소매처럼 바삭하고, 가운데는 비단옷 안감같이 졸깃하다. 여름 감자전 맛은 그렇게 단아하며 수려하다.
P. 51 소설가 황순원, 호우시절 중에서
감자전을 부치고, 그것을 입에 넣었을 때의 맛을 표현하는 묘사들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어찌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 이루어졌을까요. 어쩌면 이런 묘사들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유튜브로 보는 영상보다 더 생생하게 감자전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차를 살펴보면 총 33명의 작가에 대해서 해설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작품들의 무대도 천차만별이지요. 현기영의 제주, 조정래의 벌교, 한승원의 장흥, 정지아의 지리산 등등 다양한 지역이 등장하지만, 정상원 셰프님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제철 재료를 찾아나서듯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지역을 현장 답사한 뒤 그 지역의 음식 문화와 역사까지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꼬’는 꼬투리, 꼬마, 꼬맹이의 ‘꼬’처럼 작은 사물을 나타내는 말이다. ‘막’은 오두막, 움막의 ‘막’으로 작은 집을 뜻한다. 꼬막은 결국 ‘작은 것이 사는 작은 집’이다. 작은 조개 주제에 나이를 기록한 윤륵이 마치 기와집 지붕처럼 생겨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P. 71 소서락 조정래, 꼬막톺기 중에서
꼬막 이름의 유래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음식 문화와 역사는 물론 식재료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얻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지금까지 잘 보지 못했던 색다른 종류의 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인문학적인 요소를 담은 책일까, 아니면 요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산하는 에세이일까.
소설에서 홍차와 같이 먹는 마들렌은 가리비 모양의 구운 과자다. 프루스트는 마들렌 모양을 20세기 초 유행한 여인들의 펑퍼짐한 바지에 빗대어 묘사한다. 만연체로 유명한 그다. 이 묘사는 열세 줄에 걸친 단 한 문장이다. 마들렌 모양을 묘사한 문장 하나를 읽는 동안 마들렌 한 알을 다 먹을 수 있는 지경이다.
P. 106 소설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각을 자극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 화려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우리의 머리를 자극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에게 정말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으나, 새로운 표현, 새로운 단어,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기회라 생각하며, 정상원 셰프님만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아, 지금 이 순간은 셰프님보다는 작가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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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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