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4.8.27
오리진
- 글쓴이
- 루이스 다트넬 저
흐름출판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루이스 다트넬의 답이다.
물론 루이스 다트넬은 과학자이고, 과학 커뮤니케이터이므로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는지라는 질문은 과학의 질문이다. 그렇다고 이 질문이 철학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학이 철학의 바탕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거나 무지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면 이 책의 성격이 드러난다. 루이스 다트넬은 지구의 주요 특징들, 그러니까 지구의 대륙과 바다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움직여왔으며, 그리고 그 안의 산맥과 사막, 호수 같은 것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 묻는다. 지구의 과학이 인간의 역사에 미친 영향, 아니 인간의 사회와 문명을 만들어온 과정을 묻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에 영향을 받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고, 이게 무슨 새로운 얘깃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다. 영향이라는 것을 아무런 수사 없이 쓰지 않고, 주된 영향, 결정적 영향 등으로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루이스 다트넬의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영향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듯하다(다른 이들은 어느 정도나 생각했는지 모르니까).

우선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부터 그렇다. 왜 바로 거기서(동아프리카 지구대), 그 시점에(수십 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곳, 그 시점에 벌어진 지구의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판의 활동으로 생겨난 동아프라카 지구대는 원래 숲이 무성했다. 복잡한 자연 환경이었고, 그런 환경은 호미닌에게 다양한 식량원과 자원,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지구는 점점 차갑고 건조해지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특히 동아프리카 지역은 더욱 건조해져 숲이 사라지고 기후가 요동쳤다. 그런 과정 속에서 환경에 적응한 종이 탄생했으니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물론 루이스 다트넬은 이 과정을 보다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동아프리카만의 독특한 특징과 그런 특징이 생겨나게 된 지구과학적 현상들 말이다.
이 밖에도 인간의 모은 역사가 지구의 구조와 환경, 변화와 관련이 깊다는 것은 계속 이어진다. 대항해 시대를 도래케 한 원인도,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재료들의 분포도,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어지고, 현대 문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금속이 바꾸어놓은 인류 사회의 모습도, 실크로드도, 그리고 석탄과 석유도. 이것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커다란 변곡점을 찍으며 현대 사회를 만들어왔는데, 바로 그것들이 지구 환경에 결정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사소하지만(이 책 전체 주제에 비해 사소하다는 얘기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관심을 가질 만한 얘기를 하나 옮겨보자면 미국에서의 투표 성향이 지질학적 특성과 매우 연관이 깊다는 내용이 있다.

2016년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통령이 당선될 때 플로리다주도 트럼프가 승리했다. 그런데 투표 성향을 주 단위가 아니라 카운티별로 보면 묘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투표 성향은 남북 전쟁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는데, 이 이유를 루이스 다트넬은 수천만 년 전의 바다가 남긴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도의 검은 띠 부분은 8600만 년에서 6000만 년 전 백악기 후기에 퇴적된 지표면 암석의 띠다. 바다에 잠겨 있다 육지가 된 부분 중에서도 유난히 어두운 색 토양의 영양 물질이 많은 땅이 이 띠 부분이다. 이 비옥한 토양은 농작물, 특히 목화를 재배하기에 적절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목화 농장은 노예의 노동을 통해 유지되었다.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지역은 여전히 목화를 재배했고 흑인들은 노예가 아니라 임금 노동자 신분으로 계속 일했다. 하지만 목화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많은 흑인들이 북부 주로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역, 원래부터 인구 밀도가 높았던 지역에는 그래도 남았다. 비옥한 토양이 그들을 먹여 살릴 수는 있었던 것이다. 이 지역은 1960년대 민권 운동의 중심이기도 했다. 루이스 다트넬은 경제적 생산성이 높았던 이 지역이 오히려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실업률이 높고, 교육 수준이 낮고, 보건 환경이 부실했고, 이런 사회 환경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발밑 땅 속에 숨어 있는 지질학적 구조가 현재의 정치 상황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예는 영국에서도 드러난다).
루이스 다트넬은 우리의 역사와 삶이 우리의 존재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어 오고 변화해온 지구에 종속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매우 긴 시간 동안 변해온 과정 속에 아주 짧은 시간 존속되는 간빙기에 슬쩍 얹혀져 살고 있다. 많이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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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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