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4.9.2
아름다운 실험
- 글쓴이
- 필립 볼 저
소소의책
정말 아름다운 책.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 ‘아름다운’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분야도 편향되지 않았다. 천체물리학, 고전물리학, 화학, 광학과 양자역학, 생명과학, 동물행동, 심리학 등 과학의 주요 분야를 망라하고 있고, 그것들에 대해 깊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필립 볼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일 듯하다.
교양과학 서적들을 보면, 많은 경우 이론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면 아인슈타인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내고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보어에서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의 이론을 주로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도 마찬가지고, 유전 법칙에 대해서도, 유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험은 부차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입증한 실험이 없었더라면 그 이론들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실험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실험은 이론을 가능케 하고, 이론을 입증하고, 이론을 넘어서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실험은 모든 과정의 시작이자 끝인 경우가 많다. 필립 볼이 보여주는 실험과학의 세계가 바로 그런 실험과학의 세계다.
필립 볼은 ‘아름다운 실험(원제도 Beautiful Experiments다)’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아름답다는 것을 사람마다 달리 보겠지만, 나는 정말 이 실험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의 아이디어로 결정적인 증거를 얻어낸 실험도, 수십 년의 고된 작업 끝에 얻어낸 성과도, 한 사람에 이루어진 실험도,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 끝에 얻어낸 결과도 모두 그렇다. 그것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세상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져오거나, 혹은 그런 이해를 확고히 했다. 그러려니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거나, 직관적인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했다. 이 실험들은 모두 아름답고, 경이롭다.
내 경력 때문이겠지만 특히 아름답고 경이롭게 여겨지는 실험들은, 물론 5장의 생명과학에 관한 실험들이다. 레이우엔훅의 현미경에서 시작해서 크레이크 벤터까지, 이미 내가 매혹되었던 실험들이 여럿 소개되고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것도 있다. 이를테면, 유전 암호가 세 개의 염기로 구성된다는 증거를 찾은 실험 같은 것인데, 교과서에서는 이를 단순히 논리적인 이유로 설명한다. 또한 니렌버그의 유전 암호를 밝히는 실험도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어떤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은 모서리가 예쁘게 깍인 포장된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읽으며 한 가지 계속 눈에 밟히는 것 중 하나는, 노벨상을 ‘함께’ 수상하지 못한 이들이다. 한스 슈페만과 함께 형성체를 밝힌 힐데 만골트(그녀는 폭발 사고로 일찍 죽는 바람에), 알프레드 허시와 함께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밝힌 마사 체이스(나는 로자 프랭클린이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보다 마사 체이스가 받지 못한 것을 부각하는 것이 과학계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셜 니렌버그와 함께 첫 유전 암호를 밝힌 하이리히 마테이(필립 볼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하고 잇다) 등.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객관적이어야 하는 실험 과학에서도. 물론 실험이 늘 객관적이라는 것도 신화이긴 하다.
어쨌든, 과학, 혹은 과학적이라는 것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근거와 과정, 결과를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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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40
- 작성일
- 2024. 9. 17.
@choco072
- 작성일
- 2024. 9. 17.
- 작성일
- 2024. 9. 17.
@알렉세이
- 작성일
- 2024. 9. 21.
- 작성일
- 2024. 9. 21.
@skysjy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