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4.9.4
친애하는 슐츠 씨
- 글쓴이
- 박상현 저
어크로스
특성화고, 일반고, 과학고를 다 거친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일반고 학생들의 생기부가 짧은 이유를, ‘결핍의 덫’과 관련지어 설명한다. 넉넉한 환경의 학생들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 실력으로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그럴 때마다 격려를 받는다. 그러면서 인정에 익숙해지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런 기회 없이 자라는 학생들은 자신감 없이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저 ‘노~력’을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얘기도 있다.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이혼 후 소송에서, 이미 조니 뎁이 앰버 허드를 폭행했던 것이 영국에서의 재판에서 결정이 났는데도, 결국은 앰버 허드는 소시오패스가 되고 더 많은 금액을 조니 뎁에게 지불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했다는 얘기다.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가정해놓고, 그에 위배되면 실제로는 상관없는 일에서까지 인정을 받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빈부의 격차가 단지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 흑인들은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중국계는 물론 한국계가 미국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것, 여성들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등등. 우리는 알고 있다. 편견을 나쁜 것이며, 차별 없이 함께 사는 사회가 좋다는 것 말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논외다. 그들은 이런 책이나 여기의 내용을 차분하게, 심각하게 읽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읽더라도 한마디로 무시할 것이다. 그러나 차별과 편견을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은 어떤가? 여기서 우리가 비폭력의 상징처럼 여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글을 읽어본다.
“선의는 있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악의를 가지고 있으면서 완전히 착각하는 사람들보다
더 큰 좌절감을 줍니다.
미온적인 수용은 노골적인 거부보다 더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왜 옳은지, 왜 잘못된 것이 그른 것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알고 있더라도 행동은 그렇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번엔 미국에서 장애인 이동권 쟁취에 혁혁한 역할을 한 주디 휴먼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같은 장애인들에게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했고, 장관 대변인에게는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동의하는 척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좀 그만하혔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은 아닐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 소재를 찾고 있지만,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데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우리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며, 우리가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아픈 질문들이고, 대답하는 데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아니 형식적인 대답은 쉬울지 모르지만, 진짜 대답은 어려운 질문들이다. 해결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해결의 단초도 찾을 수 있다. 찰리 브라운 만화에 흑인 소년 암스트롱을 넣은 슐츠라든가, 체조 선수 바일스,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 트렁크에 들어가 신인 배우에게 조언한 배우 케이트 윈슬릿, 전문가로서 자존심을 지킨 데이비드 케이 박사 같은 이들이 그것을 보여준 이들이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모르고 있다. 그러나 낡은 관습과 편견을 치워버리면 보다 넓고 다양한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진짜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내가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마음 속에 남을 최고의 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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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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