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4.9.30
봄이다, 살아보자
- 글쓴이
- 나태주 저
한겨레출판
봄이다, 살아보자
나태주
한겨래출판/2022.1.21.
sanbaram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마음으로 힘들다. 지쳤다는 것이다. 그 힘든 마음,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고 위로받고 싶다는 거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책은 바로 ‘시’다.(p.104)”라고 이야기하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봄이다, 살아보자>의 서문에서 ‘오늘의 독자들은 시인을 선각자나 스승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웃이 되어달라고 하고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한다. 보다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그러한 청을 시인은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p.105)’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의 시는 너무 어렵게 표현하거나 장황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를 하며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시인의 일생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현재를 살펴보기도 하는 글을 모아 엮었다. 시인 나태주는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출간한 이래 시집, 산문집, 시화집, 동화집 등 150여 권을 출간했다. 그동안 공주문인협회장, 충남시인협회장, 공주문화원장, 한국시인협회장 등으로 일했다. 현재 공주풀꽃문학관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봄이다, 살아보자>는 봄에 대한 말부터 시작한다. “봄은 생명이고 창조이며 출발이고 축복이다. 인생으로 쳐도 유년이거나 소년이다. 봄은 눈부시다. 인생으로 쳐도 유년이거나 소년이다. 봄은 눈부시다. 눈물겹도록 찬란하다. 어찌 봄이 없는 1년이 있고 인생이 있겠는가! 풍덩, 봄 속으로 뛰어들어 볼 일이다.(p.4)”라고 서문에서 말하며 봄과 함께 살아보자고 한다. 봄의 느낌으로 살아볼 일이라고 한다.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도 봄의 느낌으로 살아보자는 거다. 그러다 보면 우리 자신도 생명다운 생명이 되고 창조가 되고 날마다 순간마다 출발이 되고 축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집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엮었다. ‘1부 작은 인연 예찬 : 사람이 봄인 날이었습니다, 2부 작은 시 예찬 : 마음을 빨래하듯 시를 쓴다, 3부 작은 풀꽃 예찬 : 뜨락에서 배운다’가 그것이다. 세상에 그 무엇도 공짜는 없다. 봄 또한 공짜로 오는 봄은 없다. 무언가 분명하고도 커다란 대가를 치르면서 봄은 찾아온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오는 우리에게 오는 봄을 즐길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자꾸만 성격이 모나고 포악해지는 것은 시와 식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는 감정 이입을 가르쳐주고 식물은 겸손과 기다림을 가르쳐 줍니다.’(p.26)라고 시와 식물의 효용성을 말한다. 마음속에 천사를 품고 살자고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천사인 건 아니지만 천사를 마음속에 품고 살다 보면 언제, 누군가에게 내가 천사 노릇을 할 수도 있고,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 또한 나에게 천사로 보일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는 말은 시인이 자주 인용하는 괴테의 말이라고 한다.
시인의 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출간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시인의 시 중에서 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리는 시로 선별한 시집인데, 컬러사진과 그림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 시집이 잘 팔리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로 엮었다는 것이며, 둘째 시집의 제목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설명을 들어보면 시집 이름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의 중심어는 ‘꽃’과 ‘너’, 그리고 ‘본다’ 이다. 나는 뒤에 숨어 있고 ‘본다’란 동사가 ‘꽃’과 ‘너’를 연결하고 있다. 이 문장을 독자들이 읽을 때는 ‘누군가 꽃을 보듯이 나를 보아준다’가 된다. 여기에 심정적 소용돌이, 쾌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시인으로 데뷔했을 당시와 달리 오늘의 독자 대중들은 집단 논리나 시대정신이나 그런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우울과 소망과 비애와 행불행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형편과 어려움을 헤아려달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너’라고 하면 저쪽에선 ‘나’가 된다. 나의 슬픔을 알아주고 나의 고달픔을 위로해주고 나의 힘든 길에 동행이 되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사람은 없다. 온순하게 받아들여 손을 맞잡을 것이다.(p.87)” 그렇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위로와 축복과 응원이 되어주어야 한다.
처음 시를 만나면서부터 시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시를 쓰느냐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문제는 나의 시가 어떻게 하면 개별성을 보장한 가운데 보편성을 함께 갖느냐에 있었다.(p.103)” 개별성과 보편성, 그 둘은 상호 모순 같지만 한몸으로 만난 것. 필연적으로 그래야 하는 것. 우선 문학작품이나 예술품에서 좋은 작품은 특수에서 출발하여 보편으로까지 확대되는 작품이다. 독선이란 말도 한 사람이나 일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을 말한다. 보다좋은 것은 공동선이다. 다 같이 여러 사람에게 좋은 것을 말한다. “김소월의 시가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시건방진 사람들이다.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그렇고, 전체를 읽지 않아서 그렇고, 오래 읽지 않아서 그렇고, 잘 읽지 않아서 그렇다. 아니 그 자신이 먼저 무식하고 무례해서 그렇다.(p.127)”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세상의 모든 가치판단이 진위에 있는 게 아니라 호오에 있는 것 같다.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나한테 좋은가 싫은가부터 따지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문학강연에서 ‘그것에 대해서 쓰지 말고 바로 그것을 쓰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것에 대해서 쓰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고 서술하는 것이다. 묘사하는 방법 가지고서도 모자란다. 그 너머를 써야 한다. 그것 자체를 써야 하고 드디어 그것 자체가 되어야 한다.(p.148)” 말이 쉽지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를 오래 쓴 사람도 잘 안 되는 일이다. 시의 특성은 내용으로서는 하소연과 고백이고, 표현으로서는 짧고 간결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글을 지으면 시인이 된다. 처음부터 시인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따로 선택되는 것도 아닌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는 독자들이 만족할 때까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때까지 충분히 봉사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간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간결하게 <풀꽃>을 썼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p.191)” 24글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 <풀꽃>에서 핵심은 끝 문장 ‘너도 그렇다’이다. 이 부분을 시인은 반전과 변용이라고 부른다. ‘나만’이 ‘너도’로 바뀐 것이다. 이 세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이 세상은 ‘나’ 한사람과 ‘모든 너’로 되어 있다. 물론 소중한 것은 나 한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소중한 내가 잘 유지되고 발전되려면 ‘모든 너’의 지지와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너에게 잘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시인은 시를 쓸 때 “1) 짧아질 것. 2) 단순해질 것. 3) 쉬워질 것. 4) 감동을 담을 것.(p.194)” 등 네 가지를 마음에 담고 쓴다고 한다. 이렇게 쓸 때 많은 독자가 공감해 준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시가 필요한 것이 되고 유용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비록 잡초일망정 나 스스로는 풀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다른 이들에겐 내가 하찮은 풀꽃으로 보였겠지만 나 자신은 나를 소중한 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아니, 꽃이 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길이다. 그것이 나의 길이고 또 너의 길이다.(p.210)”라고 시인의 인생관을 피력한다. 시인은 잡초를 그냥 풀이라고 말하고 싶고 거기에 피는 꽃을 풀꽃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풀꽃은 구체적인 어떤 꽃을 말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닌 풀에 피는 모든 꽃이 풀꽃이다. 풀과 나무들은 정직하다. 말을 할 줄 모르지만 자신의 몸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들의 말 없는 말을 엿듣는 것이 매우 즐겁고도 행복하다. 풀과 나무들 사이에 있다 보면 맑아지는 마음을 느낀다. 풀과 나무들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뿐이랴. 그동안 사람들한테서 받은 온갖 시련과 상처까지 저절로 치유됨을 느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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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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